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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rsona Feb 15. 2023

꽃보선

- 영원한 그 이름


 임인년(壬寅年) 2022년 12월 초, 3년 만에 싱가포르를 경유해 호주로 날아왔다. 우리나라는 겨울을 향해 달리고 호주는 봄의 희망으로 부풀어 봄꽃이 피기 시작한 때이다. 

 호주 브리즈번에 온 이유는 가족들과 만남이 첫째이고 자연을 음미하고 더불어 지냄이 둘째이다. 가족들과 만남은 행복이고 공원이나 강변을 거닐며 꽃들의 향연을 누림은 기쁨이다. 가로수 나무가 웅장하여 풍성한 느낌을 주고 꽃잎의 양도 많은 ‘자카란타’는 딱 우리나라의 벚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연보라색 꽃잎이 아름답게 흩날리는 모습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멋있는 풍경 중 하나다. 그밖에 호주동백 하얀꽃, 호주매화 붉은꽃, 화려하지 않은 듯 화려한 ‘프랜지파니’ 꽃향기가 코를 찌른다. 많은 꽃들의 향기에 취하려 오늘도 딸내미 집을 나선다. 

 ‘라일락꽃 향기 흩날리던 날 교정에서 우리는 만났소’라는 가사처럼 지난날 우리의 이야기가 향기에 취해 솔솔 떠오른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 교실 창문에서 교정 앞 큰 튤립나무 아래 스탠드 벤치를 바라본다. 여학생들 여럿이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들 속에 보름달같이 환하고 눈동자가 유난히 커 보이는 여학생이 눈에 들어온다. 그 여학생은 늘 예의 바르고 티없이 맑은 미소에 양갈래 머리를 곱게 땋아 묶었다. 그 여학생의 모습에서 나는 한국의 전통 여인상을 보았다. 그 여학생에게 마음이 향한 것은 내 책상 위에 놓인 꽃병에 꽃이 시들 때마다 생생한 계절의 아름다운 꽃으로 갈아 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컴퓨터의 한컴 바탕체와 같은 손글씨로 쓴 안부 인사 편지를 내 책상 서랍에 두고 가는 사실을 알고 나서다. 그때마다 나는 감사의 마음과 기대감으로 그 여학생을 눈여겨 보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이후로 꽃보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곤 했다.

 브리즈번 강 따라 걷는 산책길과 브리즈번 시티에서 살짝 멀어져 초록으로 뒤덮인 곳, 도심 속 정원인 ‘보타닉 가든’과 ‘자연 식물원’으로 향한다. 쭉쭉 뻗은 나무들의 시원시원함과 대나무숲의 울창한 모습, 많은 야생초와 허브 식물들, 인공적이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경탄하고 숙연함을 느낀다. 자연의 혜택이 주는 놀라운 형형색색과 아름다움에 나는 작고 경건한 마음일 수밖에 없었다. 달리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 나도 저들처럼 달리고 싶다. 하지만 욕심이다. 희망사항이다. 나이 들어감에 건강한 상태는 나빠지지는 않았지만 그냥 현상 유지만 하는 정도이기에.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이 여리고 연약한 마음 때문일까. 나약한 마음을 접고 유쾌한 상태로 한 걸음 한 걸음 산책을 겸해 속도를 높여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이 나의 인생에 의미가 되었다. 세월은 흘러 꽃보선은 나에게로 와서 진정한 꽃이 되었고 의미가 되었다. 졸업 후 나에게 날아온 연민의 손편지에 또다시 감사와 기대감으로 흔들리면서 그에게로 달려갔다. 그에게 나도 꽃이 되고 의미가 되고 싶었다. 스승과 제자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내 모든 것을 그에게 던지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는 이제 선하고 아름다운 내 아내가 되었다. 

 내 모든 일상을 이해하고 연약했던 나를 감싸주면서 40여 년의 시간을 동고동락하며 지낸다. 손주들을 선물한 딸내미 하나로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 지금까지도 나를 뒷바라지하면서 몸과 마음을 헌신하는 여인이 되었다. 항상 함께 세상살이 어려움 없이 보람되게 살아가고 있다. 참으로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서 큰 사람이 되었다. 더 나아가 주님과 교회에 충성하고 봉사하는 사역자가 된 것이다. 주어진 직분과 사명을 다하는 모습에 나도 경건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10여 년을 매해 호주 브리즈번에서 2, 3개월 머물다 가는 이 계절에 자연에 매료되는 일상이 한두 번은 아니었다. 코로나로 인해 3년 만에 다시 오니 딸내미 집이 파킨슨에서 시티로 이사 온 상태이다. ‘보타닉 가든’과 ‘싸우스 뱅크’ 가까운 곳에 안주하고 있기에 누리는 행복과 기쁨이다. 오늘도 브리즈번 시티 강변을 산책하며 꽃향기와 커피 한잔을 마신다. 칠십이 지난 지금 주어진 삶의 굴레 안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려 한다. 값진 선물로 주신 보배롭고 선한 향기의 꽃보선과 함께 지혜와 깨달음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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