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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던킨다나스 Mar 15. 2023

애증의 모둠

일년에 한 번은 기업에서 진행하는 코딩이나 인공지능 관련 프로그램을 중1을 대상으로 6교시 내내 진행한다. 올해는 LG에서 파견 온 2-3명의 사람이 각 반에 투입되어 데이터를 이용한 앱을 개발하는 프로그램을 했다. 이 날을 위해 아마도 넷씩 모둠구성을 해 두라고 했었는지 내가 코티칭으로 들어갔을 땐 넷씩 모여앉아 뭔가를 하는 중이었다.


오랜만에 모둠구성의 책상배열을 보니 예전에 어떻게든 모둠을 꾸리고 협동수업을 이끌어가던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지금도 간간히 여럿이서 한 모둠이 되어 하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대대적으로 결속력있게 하지는 않는다)

내가 모둠을 구성하는 방법은 주로 내가 리더를 뽑고 리더사 자신을 도와줄만한 사람으로 한명을 더 뽑고 나머지 절반은 원하는 곳에 선택하여 가는 식이었다.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결국 잘 굴러가지 않는 모둠이 나오기 일쑤였고 의외로 재밌게 도와가며 활동하는 모둠도 있었다. 나는 이 4인체제의 모둠구성을 수년간 지켜보면서 “쌤, 쟤 아무것도 안해요.”란 말을 늘 들어왔다. 영어실력이 좋아도 남을 도와주지 못하는 아이가 있고 이끄는 능력이 부족한 아이도 있고 그 반대의 아이도 있었다. 어쩌면 이 4인 구성이 진부한 비유이지만 사회구성원의 축소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수한 A그룹의 학생은 본인이 과제를 할 능력도 있다. 이 중 일부는 남들을 도와줄 의향도 있고 헤매는 멤버를 붙잡아줄 영향력도 있고, 영 아닌 멤버에겐 과제를 쪼개서 줄 수도 구슬려 할 요령도 있다. 이 정도는 거의 천상계이고 본인 몫을 하고 과제를 쉽게 설명해서 전달하는 역할만 해고 매우 우수한 축이다. B그룹은 협조적이고 성실하다. 실력이 아주 우수하지 않아도 A가 하자고 하면 같이 하고 체제가 무너지지 않는 역할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모둠의 흥망의 키는 C가 가지고 있다.  C가 B에 붙느냐 D에 붙느냐에 달린 일이다. 마지못해서라도 역량은 안된다해도 B하자는 대로 모둠 과제를 하자.는 쪽이면 쉽게 끝낼 것이고 의지가 없든 역량이 없어서 무관심한 D에 붙는다면 A,B는 사기가 꺽여서 혼자할 땐 너끈히 할 일도 하기 싫어진다. D는 우리가 안고 가야 할 멤버이다. 동기가 낮은 D멤버를 위해서는 어떤 틈을 줘야 한다. 옆 모둠의 내용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오던가, 크게 팀 구호를 외치는 역할이나,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해서 일종의 소속감을 갖게 한다.

날 것의 나의 생각은 25프로 정도는 사회 안에서 자신의 몫도 하면서 남에게까지 도움을 주는 그룹, 또다른 25프로는 질서와 규칙을 지키며 본인의 몫을 성실히 히는 그룹, 또다른 25프로는 사회의 질서라는 것이 나에게 딱히 유리하지 않아 맘에 들지 않지만 여차저차 지내는 그룹, 마지막 그룹은 필요하다면 내 몫의 50-80프로 정도를 하며 주변의 도움으로 사는 그룹.


그 날의 수업에서도 여지없이 망한 그룹에서는 한 명의 학생이 4인분의 과제를 하고 발표까지 해가며 애를 먹고 있었다. 그 팀의 다른 한명은 엎드려 자고 있었고, 나머지 두명은 서로를 비난하며 싸우고 있었다. 어떤 모둠은 하기는 하지만 리더가 없어 과제를 이해를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아이디어가 없어 어쩔줄 몰라하기고 했다. 역시나 강력한 능력자(실력과 인성을 겸비한)가 한 명 있고, 그의 조력자가 있는 모둠은 성과가 가장 좋있다. 그런 저런 시끄러운 꼴을 보더라도 주제가 있으니 서로 얘기를 해서 조금이라도 의견을 진척시켜 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망한 모둠은 전체를 위한 일종의 희생양일까? 갑자기 그런 질문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럼에도 가끔이라도 모둠으로 활동을 하며 좌충우돌하는 경험을 할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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