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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씨당 김소영 Mar 06. 2023

예술, 그거 돈이 됩니까?

예술은 편리하지 않다. 빠르지도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예술을 해야한다.


유행하던 드라마에 나오는 명대사다. “그거 돈이 됩니까?”



예술이라는 분야는 활동 자체가 돈으로 직결되는 것이 아니다. 재능이 있거나 순수하게 좋아서 지속하는 것이기에 많은 예술가들이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생업에 뛰어들 것인가. 예술을 지속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어가는 이들을 우리는 예술가라 부른다.



요즘은 예술에도 증명이 필요하다. ‘예술활동증명’. 예술인복지법상 예술을 ‘업’으로 하여 예술활동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제도다. 최근 일정 기간의 공개 발표된 예술활동 혹은 수입 내용으로 신청할 수 있다. 이 제도는 일회적인 시혜성 지원이 아닌 복지-창작의 선순환을 유도하는 사회적 투자로 예술인이 예술계를 이탈하지 않고 창작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전망이다. 연초라 예술인 관련 사업도 많고 이것을 증명해야만 신청자격이 있기에 필자는 신청한 예술활동 증명이 완료되기를 꽤 오래 기다렸다. 작년 여름에 신청했는데 이제야 완료됐으니 반년 이상 걸렸다. 중간에 한번 서류 검토가 있었고 그걸 감안하더라도 굉장히 오래 기다려야 하는 건 분명하다. 홈페이지 들어가 보니 검토를 기다리는 사람이 2만5000명이었다. 예술활동 증명을 검색해 보니 신청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글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기존 3.5년 유지 기간이 5년으로 연장됐다. 듣던 중 기쁜 소식이다. 이렇게 신청자가 많고 예술인들에게 분명히 필요한 서비스를 왜 부족한 인력으로 운영하는지 도통 이해되지 않으나 오래 기다린 만큼 증명서가 값지게 느껴진다. 증명을 위해 지난 전시회 당시 각종 포스터와 사진, 활동 관련 보도자료를 취합하면서 분야에 임하는 본인의 정체성도 다시 확인하게 됐다.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어떤 한 분야에서 정체성을 만들기까지 어떤 행보가 필요한지도 자료와 결과에 따라 명확하게 알게 됐다. 이 제도의 장점은 일정 기간 내에 예술활동을 얼만큼 업으로 삼아 살았는지 정량적 지표로 평가·인증한다는데 있다. 15개의 예술 분야 중 필자의 신청 분야는 미술로 일반, 디자인, 전통 세 가지다. 이게 뭐라고 ‘증’ 하나 받았다고 창작 욕구가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다.



사실 소위 ‘팔리는 예술’을 하는 것이 더 힘들다. 업이란 생계 유지를 위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 기간 계속 종사하는 일이다. 예술이 밥먹여 주냐는 비아냥을 너머 이제는 예술도 업이 되는 세상이다. 그에 맞게 요즘 예술가들은 사업자등록증도 필수다. 예술가랍시고 고상하게 폼만 잡으면 손가락 빨기 딱 좋다. 누가 그랬다. 매일 앉아서 그림 그리고 글씨만 써서 좋겠다고. “아냐, 서서 쓰기도 해.” 실없는 장난으로 받아쳤지만 홀로 모든 것을 다 해야 하는 것이 자랑할 일은 아니기에 굳이 말하지 않을 뿐. 그 누구보다 하루가 바쁘다. 기능하며 살아야 하는 예술가는 필연적으로 두개의 타이틀을 동시에 갖는다. 사업가이자 예술가. 의미 없는 단골 질문이 있다. ”대표님이세요? 작가님이세요?“ 작품 활동은 기본이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콘텐츠를 구상하고 쓰면서 제작하고 기획하고 영업까지 해야 한다. 소통 능력은 덤이 아닌 필수다. SNS 없는 홍보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 모든 것을 다 소화하는 예술인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그걸 안 해도 되는 예술인은 얼마나 될 것이고. 대표이고 작가인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결국은 업이고 돈이 오가는 일에서. 순수하고 고결하게 기능하지 않아도 되는 무용한 아름다움만 그리고 살아도 되는 축복 받은 예술가는 극소수다.



요즘 세상엔 기술로 기계를 따라가기 힘들다. 그림을 잘 그려봤자 카메라보다 빠르고 정교할 수 없고 글씨를 잘 써봤자 폰트 입력 속도와 정확성을 따라가기 힘들다. 배우와 가수도 AI가 대체한다는 글이 심심찮게 눈에 띄고 뉴스 댓글엔 판검사를 얼른 AI로 대체하라는 말도 있다. 물론 공정을 원하기에 그렇겠지만 사람들은 그렇게도 서둘러 AI에게 이 세상의 모든 의사결정과 어려움을 해결할 능력들을 내어주고 싶은가 보다. 그럴싸한 모양새의 AI 사진들이 떠돈다. 아주 매력적인 이성, 미래 제품 모습까지. 리포트며 대본까지 대신 쓴다는 챗봇이 개발되어 대형 포털들이 서로 차지하겠다고 뛰어들어 경쟁하는 세상인데 뭘 더 바랄까. 인간이 기술을 연마하지 않고 모든 노동을 기계에 의존하고 AI에게 떠넘기는 세상은 값싸고 편하다. 그 세상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술 발전은 필요에 의한 편리를 향한 끊임없는 욕구 덕분이다. 결국 기술이 극에 달하면 인간에게 필요해지는 것은 기능성을 따지지 않는 무용한 아름다움과 정신의 평화가 되지 않을까?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할까. 예술은 편리하지 않다. 빠르지도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예술을 해야한다. 예술은 인간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지는 본질. 이 사회가 인간다움을 지켜내야 할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급변하는 이 세상에서 결국 우리 자신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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