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2월 - 서유영 (You Yeong Seo), 1984-
코로나 19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오랫동안 집에 머물며 생활하고 있다. 이제 집은 우리에게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일(職), 주거(住), 놀이(樂) 즉 ‘職·住·樂’ 이 모두 공존하는 ‘복합 생활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매일 당신의 삶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는 어디인가요?’라는 질문을 하게 되면, 아마 대다수의 사람은 자신의 ‘집’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작년 영화계에서 엄청난 찬사를 들었던 영화 <노매드랜드>는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영화 속 주인공 펀은 차에서 살면서 이곳저곳 거처를 옮기며 살아가는 노마드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이다. 그런 그녀가 남긴 말 중, “I’m not a homeless, I’m just houseless”라는 대사는 우리 모두에게 ‘집’이라는 공간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질문한다. 지금 내가 사는 공간은 ‘Home’일까? ‘House’일까?
오늘 우리가 만나 볼 작가 서유영은 ‘집’이라는 공간이 한 사람의 가치관을 담아내는 장소라 이야기한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집은 단순한 주거생활을 위한 ‘House’ 가 아니며, 편안한 정서적 휴식을 취하기 위한 ‘Home’의 의미를 뛰어넘는다. 작가 서유영의 작품 속에 그려진 집은 한 사람의 정체성이 담겨 있는 ‘나’를 발견하는 공간이다. 집에 있는 시간을 통해 자신을 찾고,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찾아가기 위해 새로운 탈출구(Exit)를 발견한 작가 서유영. 오늘은 작가 서유영의 작품 속 울퉁불퉁한 캔버스 위에 올곧게 서 있는 집들 안에 담겨있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통해 나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에 올라보자.
Q. 안녕하세요 서유영 작가님, 처음 뵙겠습니다. 저희 독자분들께 작가님 소개 부탁드릴께요.
안녕하세요. 저는 사람들 간의 관계를 로프와 집으로 표현하는 작가 서유영입니다.
Q. 조금 전 소개에서 로프와 집으로 사람들 간의 관계를 표현해주신다고 하셨어요. 어떻게 로프와 집이라는 소재로 작업을 시작하게 되신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네 좋습니다. 먼저 집에 관해 이야기 하자면, 제가 맨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던 때로 돌아가요. 제가 그림을 처음으로 시작할 때를 생각해보면, 당시 제 뇌 구조에는 집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때는 육아에 집중하던 시기였는데, 온종일 아이 둘을 키우며 생활하다 보니 집 그리고 육아 외에 다른 것들은 생각할 여유가 없었거든요.
Q. 아, 육아하면서 집에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집이라는 소재가 작업에 활용되게 된 걸까요?
음… 아마 시작은 육아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제가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자연스레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생각이 이어졌던 것 같아요. 제 작가 노트에 제가 써놓은 말 중 하나가, ‘사람의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제1차적인 공간이 집’이라고 적혀있거든요. 사실 우리는 사람을 사회적인 존재라고 이야기하지만, 사회적인 존재가 되기에 앞서 맨 처음 세상에 태어나면 모든 인간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아래 부모의 보호 아래에서 생활하게 돼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가 물론 의사소통을 한다고 하지만, 특정 시기까지는 부모가 아이의 모든 것들을 결정하게 되어 있거든요. 예를 들면, 아이가 무슨 옷을 입는지, 어떤 분유를 먹을지 혹은 이유식 순서를 먹는 것도 다 엄마가 결정하게 돼요. 조금 더 자라서 유치원에 갈 때가 되면 아이가 같이 가보고 결정하긴 하지만 결국 최종 결정은 엄마가 대신해주죠.
저는 아이를 연년생으로 낳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임신을 하고, 육아하는 동안 집에 있는 시간이 굉장히 길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며 제가 집에서 하는 역할 그리고 제가 아이들에게 하는 가정 교육이 한 사람의 성장에 있어서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몸소 체감한 거죠. 그래서 그때부터 ‘집’이라는 공간이 한 사람의 가치관을 담아내는 장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Q. 육아하시면서 작업 활동을 시작하셨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작가님 말씀을 듣다 보니, 집이라는 공간이 외적으로 그리고 내적으로 한 사람의 가치관을 보여준다는 게 많이 와 닿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집에서 누구와 어떻게 생활하는지에 따라서 집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예를 들면, 아이가 있는 집과 싱글로 사는 사람의 집은 구성이나 분위기부터 굉장히 다를 테니까요. 결국 한 사람이 그 집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가 그 사람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겠네요.
그렇다면, 로프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어요. 로프는 언제부터 그리고 어떻게 사용하게 되셨나요?
로프의 경우는 제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그림에는 하나의 집이 아닌 여러 채의 집이 등장해요. 저는 이 집들을 저마다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한 명의 사람들로 표현하고 있는데요. 여러 집, 즉 다수의 사람 사이의 관계성을 표현하면서 집의 색깔이나 구조로만 표현을 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점들이 많이 남았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제가 흔글이라는 필명을 사용하시는 조성용 시인의 ‘끈’이라는 시를 보았는데요. 당시 제 머릿속에 맴돌고 있던 생각을 글로 표현해줬던 시라서 지금도 외우고 있어요.
Q. 그렇군요! 어떤 시인가요? 궁금합니다.
‘끊어지지 않는 끈이라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관계는 아님을, 오히려 끊겨진 끈보다 더 어렵게 얽히고 꼬여있을 수 있음을’이라는 짧은 시인데요. 이 시를 보고 뇌리에 딱 스친 게, 왜 우리가 삶 속에서 인연의 끈이라는 표현을 참 많이 사용하잖아요?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옛날부터 관계를 끈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표현해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오, 저도 공감합니다. 어떻게 보면 엄마와 아이가 탯줄로 이어져 있는 것도 떠오르고, 또 사람들이 빨간 실로 맺어진 인연이라고 해서 운명의 붉은 실이라고 말하는 것도 결국 서로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관계를 말할 때 ‘끈’을 사용하고 있었네요.
네 맞아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보니, 집 한 채가 각각 개인의 가치관을 나타낸다면 각각의 개인이 연결된 관계는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하는 고민 끝에 저는 로프를 작업에 활용하게 된 거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꼭 로프를 세세한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안 하는 과감한 방식을 시도해보면 어떨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로프를 작업에 붙이는 형태까지 발전이 되었어요.
아, 그리고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미술 전공자가 아니예요. 그러다 보니, 꼭 그림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기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게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제가 가진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도전하는 용기가 있기도 해요. 그리고 지금도 어떤 새로운 방식으로 제가 가진 생각들을 표현해 나갈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작업을 이어나가는 중입니다. (웃음)
Q. 와, 멋집니다! 사실 작가님에 대해 연구하면서 이 질문은 꼭 드리고 싶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작가님의 약력을 보면 미술 전공이 아닌, 학부랑 석사 모두 다 생명 쪽 공부를 굉장히 오래 하셨던 게 눈에 띄었거든요.
어머, 보셨군요! 네, 제가 박사 학위를 하던 도중에 수료하고 그만뒀어요. 당시에는 과학자가 되기 위해 부단히 공부했었는데, 당시 저희 교수님께서 공부를 계속 할 생각이 있다면 결혼을 일찍 해서 아이를 일찍 키워야지 진짜 공부해야 할 시기에 공부에 매진할 수 있다고 조언해주셨거든요.
그래서 당시 교수님께서 해주신 조언을 듣고, 결혼도 하고 첫째 아이를 낳고 또 이어서 둘째 아이도 낳아서 연년생 아이 두 명의 엄마가 된 거죠. 그런데 막상 엄마가 되니, 공부할 여력도 시간도 없고 또 저는 주변에 육아를 도와주시는 분이 없어서 집에서 육아만 전념하게 되는 상황이 되고 말았어요. 제가 성격상 하나를 하면 완벽하게 해야 하는 완벽주의 기질이 있다 보니, 공부도 완벽하게 해야 하고 육아도 완벽하게 하려 하는 과정에서 결국 진짜 열심히 하던 공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당시 저희 교수님께서도 굉장히 많이 속상해하셨던 게 아직 기억에 남아요. 교수님께서 저에게 장학금 지원도 해주시고 제가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도를 아끼지 않으셨는데, 육아로 인해 학업을 중도 포기 하게 되니까 많이 안타까워 하셨거든요.
Q. 아, 그런 과정이 있으셨군요. 좋아하는 공부를 포기하고 육아를 결정하는 게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역시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혹시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에 육아가 맞물려 있는 것일까요?
굉장히 크죠. 저에게는 육아가 작가 활동 시작하게 된 계기와 많이 맞물려 있고, 아마 제가 육아를 하지 않았으면 안 했을 수도 있어요. (웃음)
Q. 그러시군요. 육아를 하시면서 굉장히 바쁜 나날들이 계속되셨을 텐데, 어떻게 그림 그리는 것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육아를 하면서도 저희 교수님과 한두 시간씩 꾸준히 유선상으로 연구에 대해 토론을 했었어요. 당시 제가 연구하고 공부하던 주제가 있으니, 교수님과도 연락이 필요한 상황이었거든요. 그럴 때면 교수님께서 조종 “아이들 이제 좀 크지 않았어? 이제 너 할 일 빨리 찾아야지!”라는 말을 계속해주셨어요. 제 교수님이 남자 교수님인데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집에 있는 꼴을 못 보시는 분이셨거든요. 물론 저도 한편으로는 ‘당연히 그래야지’ 하는 생각은 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해하던 중에 아이들이 조금 커서 놀이학교라는 곳에 가게 되었어요.
아이들이 놀이학교에 가면 오후 3시까지는 저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데, 이제 그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혼자서 뭐라도 해보려고 이것저것 배워보는데, 결국 그 배움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오래 하는 활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고요. 그러던 중, 친한 언니 한 명이 “유영아, 그림 한번 그려봐!”라고 이야기를 해줬어요. 그리고 그 때 잊고 있던 제 옛날 모습이 떠오르더라고요. 제가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정말 좋아해서,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미술 선생님께서 그림 전공을 권유받기도 했었거든요. 그리고 어린 시절 장래 희망에 화가라고 적었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취미 미술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 거죠.
Q. 와, 주변에 작가님을 아끼시는 분들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꾸준히 뭔가 해볼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는 지인분들 덕분에 작가님께서 그림을 시작하시게 된 것 같네요.
네, 그리고 또 한 명 더 제가 작가로 활동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 제가 찾아갔던 미술학원 선생님이셨어요. 제가 갔던 학원 선생님이 미술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을 전공하신 분이셨거든요. 그리고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서 공부하고 오셔서, 사실상 한국 입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던 분이셨어요. 그러다 보니 미술을 가르쳐주시는 방식도 실제 그림을 그리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마음속의 생각을 자꾸 끄집어내는 대화를 많이 하는 형태로 수업이 이루어졌어요. 예를 들면, 계속해서 하셨던 질문이 어떤 스타일의 그림이 좋은지, 어떤 종류의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지와 같은 것들을 계속 물어보면서 제가 진정 그리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해주셨거든요.
Q. 와 굉장히 색다른 방식의 미술 학원이네요. 보통 한국에서 미술 학원에 가게 되면, 데생부터 시작해서 선 그리는 법부터 연습했던 기억이 있거든요. 저는 그래서 미술학원이 다소 지루하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미술 학원 선생님 수업 방식이 신기해요.
맞아요.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가르쳐주는 미술 학원의 방식은 아니었는데 저는 오히려 이 방식이 더 좋았다고 생각해요. 왜 사람이라면 무의식적으로 다 자기 나름의 무언가가 마음에 있는데 그걸 다 들여다보니 어렵고 그래서 자기 자신을 잘 모를 때가 많잖아요. 근데 이게 타인하고 대화하면서 밖으로 끄집어져 나오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선생님과 대화하면서 그런 시간을 많이 가졌어요. 그래서 항상 무언가를 그릴 때 선생님께서 제안해주시기보다는 먼저 저랑 이야기를 나누고 제가 주제를 정하게끔 도와주셨어요.
그리고 항상 그림 표현 기법에 집중하기보다는, 오늘은 파스텔 내일은 수채화같이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게끔 북돋아 주셨던 것도 돌이켜보면 감사한 기억으로 남아요. 제가 성격이 되게 꼼꼼하고 약간 계획적인 성격이 강하다 보니, 그림도 엄청 극사실화처럼 그리는 경향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그런 그림을 더 극사실적으로 하게끔 도와주시는 게 아니라 제가 꽃병에 꽃이 가득 담긴 정물화를 꼼꼼히 그리면, 갑자기 빨간색 크레파스를 들고 와서 뒤에 막 색칠을 하고 가버리시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제 그림에 난도질을 하시는 건데, 그러면 저는 그 부분을 활용해서 새로운 창작을 이어나가는 방식으로 수업을 계속해온 거죠.
Q. 정말 틀을 깨는 방식의 수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한국에서는 획일화된 입시 교육 위주로 그림을 그리게끔 훈련받고, 그래서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더 사실적으로 그리는 그림을 그리는 것에 많이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그림에는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게 아닌데도 말이죠.
네, 저는 그래서 이 수업을 들으면서 그림 그리는 것에 재미도 많이 붙였어요. 그리고 어릴 때는 왜 나는 남들에 비해서 사실적으로 그리지 못할까? 나는 그림을 못 그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던 저 자신의 편협한 시각을 완전히 깬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꼭 극사실적으로 똑같이 그리는 그림이 잘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고, 그림은 충분히 자기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죠. 요즘 친구들이 쓰는 말로 표현하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 생각을 충분히 표현할 때 고리타분한 그림이 아니라 힙한 그림이 된다는 것을 배운 거죠. (웃음)
Q. 와 정말 멋진 경험이네요. 그런데 작가님께서는 비록 시작은 취미 미술로 시작하셨지만, 취미에서 멈추지 않고 진짜 화가가 되시는 길까지 쭉 걸어오셨어요. 어떻게 보면 생각지도 않았던 길을 걷는 것을 선택하신 것 같은데, 화가가 되기로 하는 것에 망설임이나 두려움은 없으셨나요?
물론 있었죠. 사실 저도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이제부터 작가야! 이런 마음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앞서 말씀드렸던 그 미술학원의 특이점이 공간 한쪽을 실제 작업실이 없는 작가들이 돈을 조금씩 내서 같이 사용하는 공용 작업실 공간이 있었거든요. 한쪽은 미술학원이고 한쪽은 실제 작가들의 작업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실제 작가로 살아가는 친구들의 삶을 보게 된 거예요. 당시에 이제 막 졸업한 신진 작가들이 많은데, 그 친구들이 창작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 저마다 자기 그림을 그리는데 그중 한 명이 전시를 한다고 해서 그 전시에 가서 그림을 보게 되었어요.
막상 가서 전시를 보고 나니, 왠지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생님께 여쭤봤어요. “선생님, 저도 전시를 해보고 싶은데 저런 전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때, 선생님이 그룹전 참여 방법 그리고 개인전 여는 방법과 같은 것들에 관해 설명해주시면서 처음으로 전시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 작품 10점이 담긴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Q. 마침내 새로운 꿈을 꾸게 되신 거네요. 이야기를 듣는 제가 다 흥미진진합니다. 작품 10점이 담긴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과정도 왠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어요. 왜냐면, 제 마음에 들고 저를 표현하는 작업 10점을 만들어내고 또 거기에 스토리도 글로 써야 하니까 엄청난 시간과 품이 들더라고요. 또 저는 계속 육아를 하는 엄마이다 보니, 포트폴리오에만 집중할 수는 없었거든요. 그런데도 작업을 학원에서 완성 못 하면, 꼭 집까지 들고 와서 아이들을 재운 후에 그림을 그렸어요. 학원에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너무나 한정되어 있고, 저는 항상 수업 시간에 새로운 걸 그리고자 했으니, 언제부턴가 집에서 그림을 그리는 날들이 많아지더라고요. 그리고 마침내 제 작품 10점이 담긴 포트폴리오를 완성해서 여기저기 공모에 지원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당연히 수없이 떨어졌는데, 그러던 중 운이 좋게 어느 한 군데서 연락이 온 거예요.
Q. 혹시 그 전시가 2017년 문래창작촌 7Place에서 첫 개인전 ‘The House’ 전시였을까요?
네 맞아요! 알고 계시는군요. (웃음) 정말 운이 좋았어요. 사실 제가 아니라 원래 다른 작가의 스케줄이 있었는데, 갑자기 펑크가 나서 2주 뒤에 전시 가능한 작가를 찾고 있었거든요. 물론 저에게는 엄청난 기회였으니, 저는 당연히 가능하다고 했고 그렇게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어요.
Q.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속담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 거 같아요. 행운이 찾아와도 그 행운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노력이라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작가님께서도 행운을 거머쥘 노력을 꾸준히 하셨던 게 빛을 발하는 순간이네요.
맞아요. 남들은 금액을 지불하고 대관해서 해야 하는 전시를 저는 너무나도 멋진 기회로 얻게 된 거죠. (웃음)
그런데 막상 공간에 가보니 벽에는 못질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고, 페인트칠도 엉망으로 벽도 더럽고….. 저는 전시가 처음인 신진 작가이다 보니 조금 당황스러웠는데, 같이 가주신 선생님께서 첫 개인전인데 이런 공간에 하면 안 된다며 제 개인전에 대한 로망을 담아 공간 보수를 직접 도와주셨어요. 그리고 당시 학원에 저 러닝메이트가 한 명 있었어요. 저와 가깝게 지내며 으쌰으쌰 서로를 응원했던 수강생분이셨는데, 제 첫 개인전 소식을 듣고 그분도 기쁜 마음으로 공간 보수를 도와주기로 하셨죠. 그래서 저랑 선생님이랑 제 러닝메이트 친구랑 셋이서 직접 벽에 페인트칠하고, 전동 드릴 질도 하면서 전시를 설치했어요. 또 제 동생이 디자이너라서, 동생의 도움을 받아 전시 포스터도 만들어서 첫 전시를 열었답니다.
Q. 와, 대망의 첫 전시를 하시게 된 소감이 어떠셨나요?
깜짝 놀랐죠. 사실 처음부터 ‘작가가 돼야겠다!’ 이런 생각으로 시작한 게 아닌데 취미 미술에서 시작해서 작가가 된 거니까요. 저는 정말 감사하게도 첫 전시에서 30호짜리 작품을 2점 판매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거든요.
Q. 여러 채의 집이 그려진 작가님만의 작업 세계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탄생했던 거군요. 저 그런데 저는 작가님 작업을 보면서 한 가지 더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작가님 작업의 배경에는 마티에르(matiere·질감)가 잘 표현되어, 박수근 화가 작품의 배경이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일반적인 캔버스 대신 마티에르 기법을 활용하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저는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제 캔버스는 우리가 사는 사회를 대변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사회에서 우리는 혼자 살고 있지 않잖아요. 제 작업을 보시면 보통 집이 여러 채 들어가는 이유가 우리는 혼자 살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이 다 같이 한 사회 안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즉, 보통 사람들이 각각의 집으로 표현되어 제 캔버스에 그려지면 제 캔버스는 그들이 사는 사회가 되는 것인데 우리가 사는 사회가 항상 순탄하고 평안하거나 하지는 않잖아요?
Q. 네 맞아요. 안 그래도 요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온 세상이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고 있는 것 같아요.
네 맞아요. 그런데 저는 큰 관점에서 보는 사회뿐만 아니라, 작은 관점에서 보는 사회 즉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도 모든 게 다 한 사람이 바라는 뜻대로 이루어지기는 어렵다고 봐요. 그러다 보니, 무조건 힘든 사회는 아니지만, 또 마냥 평탄하지만은 않은 사회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캔버스에 노출 콘크리트의 느낌을 표현하면, 거친 사회의 모습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나이프로 물감을 얇게 부정형의 모양으로 여러 겹 쌓아 올리는 마띠에르를 만들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물감만으로 마띠에르를 만들어 왔지만, 지금은 종이를 붙이고 젤 스톤이라는 모래 느낌의 알갱이를 물감에 섞어 펴바르기도 하고, 그 위에 또 물감으로 여러 겹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마띠에르를 만들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했던 것처럼 저는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관계를 그리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제가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는 되게 평평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그리는 제 붓질이 편하다면, 왠지 모순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캔버스를 울퉁불퉁하게 만들어서 제가 하는 붓질에 제가 바라보는 사회와 그 안에 속해있는 개인들 간의 관계를 담아내고자 했어요. 사실 작업을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제가 그리는 집이 반듯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제가 그릴 때는 울퉁불퉁한 면 위에 반듯한 집을 그리는 게 힘들거든요. 그런데도 저는 이 힘든 과정을 거치는 것 자체가 이 사회에 맞춰가기 위해 노력하는 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며 붓질 하나하나에 진심을 담아내는 것이죠.
Q. 작가님께서는 관계에 매우 많은 애정을 쏟고 계시는 것 같아요. 주변에 작가님을 응원해주시고 도와주시는 조력자분들이 많았던 이유도 아마 여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는 인터뷰 시리즈의 공식 질문 여쭙고 싶습니다. 작가님께 미술 혹은 예술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제 삶에 있어서 예술은 ‘탈출구(Exit)’ 입니다. 다른 말로, ‘나를 찾는 과정 또는 내 이름 석 자를 찾아가는 과정’ 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제 작가 활동의 시작에는 육아가 있었어요. 육아하면서 누구누구의 엄마로만 불리다가 다시 ‘서유영 작가’로 불리는 것이 저에게는 의미가 큽니다. 사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제 이름 석 자를 쓸 일이 아이들 유치원 등록할 때 학부모 이름으로 적는 것밖에 없어요. 심지어 학교에서 문자가 와도 누구누구 어머니로 불리지, 제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 많지 않거든요. 그런데 저는 제 작품 뒤에 항상 제 이름 석 자 ‘서유영’으로 사인을 해요. 또 그림을 그리면서 제가 앞으로 작업에 제 스토리를 담아내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정리를 하는 과정을 거치니까 나를 찾는 과정이 딱 맞는다는 생각을 해요. 조금 재밌게 표현하면, 육아에서 벗어나 저만의 세계로 갈 수 있는 탈출구(Exit) 인 거죠. (웃음)
Q. 와, 그렇군요. 말씀하실 때 엄마라는 자아로부터 떠나서 새로운 자아인 화가의 삶으로 향하는 탈출구를 찾으신 작가님의 표정이 정말 보기 좋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우선 2023년 8월까지 계속 전시 일정이 잡혀 있어요. 올해 6월에는 개인전 일정이 있고, 9월에는 파리에서 전시가 하나 있어요. 그리고 10월, 11월, 12월에도 쭉 전시 일정이 있어서 계속해서 전시 준비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인터뷰를 읽고 계시는 독자분들께서도 발걸음 해주시면 큰 응원이 될 것 같아요! (웃음)
Q. 개인전 시작하시면 꼭! 연락해주세요. 저도 작가님 전시 꼭 가고 싶습니다. (웃음)
긴 시간 동안 너무나 귀한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드리며, 마지막 질문드리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뒤, 작가님은 어떤 행보를 걷고 있을까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오늘’ 인터뷰를 회상하는 날이 온다면, 아티스트 ‘서유영’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사람들이 제 작품을 봤을 때 공감이 많이 되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물론 제 작업 안에는 제 이야기가 담겨 있겠지만, 그 이야기가 저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누구나 다 한 번씩 생각해봤을 그런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제 그림을 보고 너무 어렵게 해석되는 그림이 아니라 마음이 느껴지는 작업을 하는 작가로 사람들 마음속에 남고 싶어요. ‘서유영 작가라는 그림 그리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림이 참 따뜻하고 좋다.’라고 사람들에게 불렸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 자신에게는 ‘서유영, 오늘도 참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건강 관리 열심히 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네요. 제가 진짜 하루살이거든요. 진짜 하루하루 계획적으로 삶을 관리하지 않으면, 모든 일정이 망가지게 되는데 이거는 우리나라의 모든 엄마가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엄마는 아프면 안 돼요. 엄마가 아프면, 아이 스케줄이 다 망가지고, 집이 올 스톱되기 때문에 엄마는 진짜 철인이어야 해서 건강 관리 잘해서 작가 서유영으로서도 그리고 사랑하는 제 아이들의 엄마로서도 ‘오늘 하루도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다'라고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작가 서유영에게 예술은 ‘탈출구(Exit)’ 입니다."
서유영 (You Yeong Seo), 1984-
서유영(b.1984)은 사람들 간의 관계를 집과 로프로 표현하는 작가이다. 그녀는 중국과 영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그림을 전시한 수상 경력이 있는 한국 작가이다. 그녀의 작품에 항상 등장하는 ‘집’은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현대인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집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하는 등 개인의 모든 성장과 변화를 거치는 공간이기 때문에, 작가 서유영은 ‘집’이 그곳에 사는 이의 개성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말하며 그녀의 작업 속 집 한 채 한 채는 고유의 개성과 가치관을 지닌 하나의 인격체의 모습을 대변한다. 그녀는 또한 사회에서 혼자 살아갈 수 없는 한 사람이 내가 아닌 타인과 교류하며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마찰과 갈등을 보다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매체로 로프를 이용한다. 작가 서유영은 작품의 바탕을 거친 마띠에르로 표현함으로써, 우리는 모두 절대 쉽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지만, 각각의 조그마한 집들의 밝은 색채를 통해서 따뜻하고 긍정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개인전
2021 From the Inside (아트컨티뉴)
2020 화이부동(和而不同): 서로 미워하지 말고 바라보기 (갤러리 아트 14)
신진작가 서유영 초대기획전 내 마음을 잇다 (설미재미술관)
2019 Home & Home (갤러리 오누이)
2018 사람과 사람 (카라스 갤러리 더 나눔)
The House: Between Us (JY ART 갤러리 )
2017 The House (문래창작촌 7Place)
단체전
2021 아트프라이즈강남 (논현가구거리)
수호아트콘서트 (세종문화회관)
그저 자연스레 흘러가는 법 (아트필드 갤러리)
서유영 임수빈 2인전 micro & MACRO (비움갤러리)
혼자, 그리고 같이 (갤러리인사아트)
2020 브리즈 아트페어 (안도)
Young Artist 선정작가 5인전 (남송미술관)
KIMI for You 선정작가 기획전 <What's the MATTER?> (키미아트)
BatterSea Affordable Art Fair (Battersea Evolution, 런던)
2019 2019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 (벡스코)
브리즈 아트페어 (노들섬)
Asia Contemporary Art Show (콘래드 호텔, 홍콩)
2018 2018우수작가展 ( 조선일보미술관)
Harbour Art Fair (마르코폴로호텔, 홍콩)
2018 영아티스트전Ⅱ ( 갤러리 두)
A Change of Mind (JY ART 갤러리)
아트부산 (벡스코)
작품소장
2022 갤러리아트14
2021 새로운바이오
수호갤러리
비움갤러리
2020 키미아트
(주)제니스팜
센텀쁘띠클리닉의원
2019 미누현대미술관
2017 역사책방
수록/협찬
2021 사보 <행복한 섬김> 가을호 표지작품 수록 (부산보훈병원)
사보 <살맛 나는 세상> 9-10월호 표지작품 수록 (코오롱 그룹 오운문화재단)
사보 <행복한 섬김> 여름호 표지작품 수록 (부산보훈병원)
5월호 컬럼 <The Story> 작품 수록 (매거진Q)
수상/선정
2021 제14회 수호아티스트 선정 (수호갤러리)
2020 제30회 배동신 어등미술제 입선 (광주광역시 광산구청)
신진작가 초대기획전 선정작가 (설미재미술관)
Young Artist 선정 (남송미술관)
KIMI for You 선정작가 (키미아트)
2019 신진작가 작품구입 <영아티스트> 12월 선정작가 (미누현대미술관)
강의경력
2021 직업탐구: 화가 (담양만덕초등학교)
서유영의 작품세계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기타
2019 SBS 아침드라마 <강남스캔들> 협찬
Cont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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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_ @_youyeongseo_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