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자 May 08. 2020

내가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확증편향의 '나비'가 불러올 참혹한 결과를 생각하며.

현대 사회에서 내 생각을 갖기란 쉽지 않다.

수많은 매체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기하급수적인 정보의 양과 속도에 압도된 나머지, 우리는 정보를 접한 이후 내 생각을 재구성하기 위한 이 귀찮은 사고 작용을 흔쾌히 포기한다.


항상 시간에 쫓겨 사는 현대인들에게 주관을 갖는 것은 일종의 비효율로 치부되기도 한다. 단순히 곳곳에서 모은 정보를 대충 보기 좋게 짜깁기하여 '이게 원래 제 생각입니다.'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해외 유명 전문가의 논문이나 격언을 첨부하면 격식 있는 사람이라 칭송받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내 생각'이 부재한 말들의 향연은 대학에서든 직장에서든 사실 아주 흔한 풍경이라 오히려 그것이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여러 언론에서 '확증편향'이라는 말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어려운 말 같지만 쉽게 말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들으며' 기존의 내 생각이나 신념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확증편향에 대해 경고하는 글들은 개인의 취향을 고려하여 선별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디지털 알고리즘을 언급하며 정보의 편식이 이뤄지는 상황을 기술 탓으로 돌리곤 한다.


                                                                           [사진출처: 문화일보]  

                                             

개인적인 견해지만 사실 확증편향에는 알고리즘이라는 기술 자체보다 현대인의 심리가 더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기술의 혁신으로 우리의 뇌가 인식하기 힘든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 뭣하나 검색하면 물밀듯이 쏟아지는 정보들, 그 모든 것을 일일이 참고하여 내 생각을 정립하기엔 시간과 심적 여유가 부족한 현대인의 상황,  비대면적 상호작용이 늘어나며 짙어지는 현대인의 근원적인 외로움 등이 파편화된 현대인으로 하여금 진위를 파악하기 힘든 정보에도 쉽게 기대게끔 한다.


 '나의 주관을 갖는 것이 밥 벌어먹는데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 ', '귀찮다'는 등의 이유로 우리는 대개  내 행위의 옳고 그름의 기준을 여타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의 행위에서 찾곤 한다. 그런데 다수를 내 행동의 판단기준으로 삼고 다수의 인정으로부터 심리적 위안을 얻는 태도는 사실 굉장히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수백만 명의 무고한 희생을 초래한 나치의 만행 그 자체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나치의 명령에 대해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은 채 맹목적으로 수행한 다수의 '아이히만'이다. 역사는 역사에 불과하고 내 인생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잠재적 아이히만은 우리의 일상에 상존하며 당장 내가 될 수도 있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든 100여 년 전 비극을 겪을 수 있다.


사실 이렇게 몇 마디 적는 것도 굉장한 사고 작용을 요하는 일이며 솔직히 귀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새벽에 다른 과제들을 제쳐두고 무거운 눈꺼풀을 부여잡으며 이 글을 적는 까닭은 단순하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