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T 앱을 평소에가끔 사용하곤 하는 나는 택시를 호출하기 직전에 등장하는 '택시 종류 고르기' 창에서 항상 별 고민도 없이 가장 저렴한 차를 부르던 사람이었다.
운전이나 말이 거친 택시 기사들에 그다지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 성향 탓에 '택시는 그냥 도착지까지 잘 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부가 서비스와 편안한 탑승을 운운하며 일반 택시보다 비싼 택시는 내게 사치에 불과했다.
며칠 전 데이트 끝에 살짝 알딸딸한 상태에서 잘못 누르는 바람에 일반 호출 대신 카카오 블루를 부르게 되었고, 뜻하지 않은 불상사(?)는 평소에 관심 갖지 못했던 카카오 블루가 택시 업계에 가져온 혁신과 플랫폼 노동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호출하기 직전, 탑승할 택시고르기 [출처: 구글 이미지]
'이왕 탄 거 제대로 알고나 가자'라는 마음에 운전사분께 대뜸 카카오 블루가 일반택시와 무엇이 다르냐고 여쭈었던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심야 시간임에도 눈에 띄게 사근사근하셨던 그 운전사 분은 '적적했는데 마침 잘됐다'라는 표정으로 할아버지가 이야기보따리 풀 듯 술술 말씀해 주셨다.
우선적으로 사납금 없이 고정급여를 받는 부분이 경제적으로 삶을 윤택하게 한다고 말씀하셨다. 1일 매출에서 회사에 꼬박꼬박 지불해야 하는 기존의 사납금 제도는 손님잡기가 갈수록 힘들어지는 택시기사들에게 굉장한 부담이었다고 한다. 승차거부 관행, 일부 기사들의 불친절한 태도가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하셨다.
이에 반해 카카오 T 가맹택시의 경우, '완전 월급제'를 통해 기사들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앱 알고리즘을 통해 끊임없이 일감들이 주어지고 그중 일정량에 고정급여, 쉽게 말해 월급이 주어지며 추가로 일하는 만큼 추가급여가 주어진다고 한다.
택시업계-모빌리티 업계 갈등의 산물인 여객운수사업법 개정안으로 결국 일반 법인택시들도 올해 1월부터 사납금 제도를 폐지하기에 이르렀는데 카카오가 택시업계에 가져온 큰 혁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전의 법인회사에서도 우수 운전자였던 기사님은 카카오 T 가맹택시로 전환 이후 열심히 일한 만큼 더 받을 수 있는 구조에 만족하신다고 하셨다.
그분 왈 일반 대기업 못지않은 급여에 어느 날 안사람이 통장을 보다 깜짝 놀라며 투잡을 뛰는지 묻더란다.
고정급여와 더불어 또 하나 크게 변화를 실감하는 것은 근로에 대한 자율 보장이라고 하셨다. 잠시 커피 마시고 싶을 때는 앱을 비활성화해두고 막간의 휴식을 즐기는 등 노동강도와 시간에 대해 스스로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에 아주 만족하신다고 하셨다. 2교대, 3교대가 일상이었던 이전에 비하면 삶의 질이 훨씬 상향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세상이 좋은 쪽으로 바뀌긴 하나 봐요, 점점 바뀌는 걸 느껴요.
목적지에 다다를 무렵 이야기 말미에 덧붙인 말씀이 개인적으론 굉장히 인상 깊었다. 한창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택시업계와 모빌리티 업계 간 갈등에 익숙한 탓이었을까, 무의식 중에 모든 택시기사들은 카카오 T와 같은 모빌리티 업계와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카카오가 택시 가맹사업에 뛰어들면서 법인택시회사 측에는 미운털이 박혔을지언정, 노동자인 기사들에게는 노동여건 개선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사님은 카카오 T가맹 택시기사와 비가맹 택시기사들이 느끼는 격차를 언급하시며 점점 더 많은 택시업계 종사자들이 혜택을 누렸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만한 딸을 두셨다는 기사님은 이야기를 나눈 15분간 정이 드셨는지 가랑비가 흩날리자 우산까지 주시겠다는 걸 겨우 만류하고 나서야 택시를 내릴 수 있었다.
유독 친절하셨던 이 기사님의 미소의 배경에는 플랫폼 산업이 불러온 택시업계 종사자들의 노동여건 개선이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플랫폼 노동이 무엇인지, 나아가 노동이란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플랫폼 노동 : 웹 사이트나 모바일 앱 같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그때그때마다 일감을 얻어 고용계약을 맺지 않고 일의 수행에 대해서 보수를 지급받는 것 [출처: 국가인권위원회 플랫폼 노동 종사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온-오프라인을 매개하는 플랫폼 기업과 플랫폼 노동의 등장은 기존의 정규직, 비정규직의 이분화된 노동 패러다임에 대전환을 가져왔다.
비물질 문화인 제도가 새로운 물질문화에 따른 사회 변화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것은 시대초월적인 현상인지라 플랫폼 노동자들의 법적 지위는 아직 불분명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일부 플랫폼 노동자들은 사회로부터 안전망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만나 뵈었던 기사님, 혹은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플랫폼 기업의 혜택을 누리는 노동자라면 그 이면에 배달업체 기사들과 같이고용형태나 복지가 불안한 플랫폼 노동자들이 바로 그러하다.
4차 산업혁명과 공유경제의 확산으로 앞으로 플랫폼 노동이 보다 더 보편화될 텐데 무엇보다 열악한 환경에 놓인 이들을 위한 법적 지위 확립이 우선되어야 함을 깨닫게 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