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y Jun 02. 2022

나는 창업을 하고 싶었다

강한 확신이 생길 때까지 노력하며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나는 창업을 하고 싶었다. 내가 만든 서비스로 세상에 큰 임팩트를 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의 기저에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망을 초월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오히려 명예욕, 또는 성장에 대한 욕구에 가까웠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고 싶었고,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를 위한 수단으로 창업을 꿈꿨다. 나는 나의 신념과 존재가 틀리지 않았음을 사업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꽤 오랜 시간 그 생각을 품어오면서 창업은 내 간절한 꿈으로 자리 잡았다.




작년 이맘때쯤, 꽤 좋은 기회가 한 번 찾아왔었다. 대학교 때 알고 지내던 친구 한 명이 동업을 제안한 것이다. 함께 알고 지내던 대학교 후배 2명과 만든 창업팀이었고, 인간적으로 신뢰가 가는 친구들이었다. 사업 아이템도 뚜렷했고, BM도 확실해서 작지만 매출도 이미 발생하고 있었다. 초기 투자도 확정된 상태였다. 똑똑하게 실행을 잘하는 팀이라서 투자사들의 호응도 좋았다. 빠르게 성장할 준비를 마치고, 로켓 엔진에 한창 예열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 나에게 제안이 왔던 것이다.


초기 투자가 확정되는 시점쯤 나에게 네 번째 멤버로 합류를 제안했다. 굳이 직책으로 보면 CPO 정도의 제안이었는데, 초기 스타트업이다 보니 이것저것 함께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게 부담이기도 했지만, 좋은 성장의 기회로 느껴지기도 했다. 당장의 현금 흐름이 좋지 못해서 월급을 많이 받을 수는 없었지만, 대신 꽤 많은 스톡을 제시받았다. 현재보다는 3년 후 미래를 봤을 때 굉장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실패할 수 있다는 위험이 따르는 제안이기도 했다.


고민 끝에 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사업 도메인이 내가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또, 아끼던 친구ᐧ후배들과 갑자기 일로 엮이게 된다는 것도 뭔가 좀 껄끄러웠다. 그런데, 사실 그런 이유들은 다 핑계에 불과했다. 제안을 거절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사실, 겁이 났다. 회사의 성장을 위해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압도적으로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 겁났고, 일을 위해 내가 사랑하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할까 봐 겁이 났다. 또, 내가 회사의 성장 속도에 발맞춰서 계속 성장하지 못할까 봐, 그래서 결국엔 나의 실력 없음이 드러나고 뒤쳐지게 될까 봐 두려웠다. 나는 창업을 하고 싶었지만, 막상 그 기회 앞에 서니 꿈의 무게를 책임지고 견딜만한 자신이 없었다. 그 정도로 간절하지는 않았던 게 원인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렇게 기회는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친구들은 열과 성을 다해 회사를 키워갔다. 그 결과, 1년 만에 참 많은 성과를 만들어냈다. 국가, 지자체와 주요 벤처 투자사들이 주최하는 각종 스타트업 경진대회에서 수상을 하기도 하고, 언론에도 여러 차례 조명되었다. 서비스는 빠르게 고도화되어갔고, 비례해서 사업은 J커브로 성장했다. 추가 투자에 대한 얘기도 들렸다. 수많은 스타트업들의 사례들과 비교해봐도 이례적인 성과였다.


친구들이 만들어내던 성과를 한 발짝 물러 지켜보면서 솔직히 후회를 많이 했다.


'내가 그때 그 팀에 합류했다면 어땠을까? 내가 바라던 명예욕과 성장욕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지 않았을까? 그때 제시받았던 스톡을 받았으면 1년 안에 벌어들인 금전적 가치가 몇 억이 됐을 텐데...'


근무 중인 회사 업무에 염증을 느낄 때마다 그런 후회는 더 커져만 갔다. 기회 앞에서 내가 견뎌야 했던 압박감은 무서워서 피했으면서, 되려 그들이 만들어낸 성과만 탐을 냈던 것이다. 도둑놈 심보가 따로 없었다.


큰 기회는 위기를 피하지 않고 도전한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반대로, 위기를 피해 가기만 하는 사람은 절대로 큰 기회와 마주칠 수 없다. 용기 있게 도전하고, 부딪히는 것은 기회와 마주할 자격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자격 미달이었다. 아직은 그만한 기회를 손에 쥘 수 있을만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꽤 긴 시간 미련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얼만 전에 그 스타트업의 CEO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서 얘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지난 1년가량 동안 어떤 생각으로 팀을 이끌었고, 사업을 키워왔는지 뒷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표면으로 보이던 엄청난 성과들 뒤에는 역시 엄청난 부담과 압박감이 있었다. 1년 사이에 50명까지 늘어난 팀원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모습도 보였고, 주말도 밤낮도 없이 사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고뇌하는 모습이 보여서 일면 안쓰럽기도 했다.


그런데, 그 과정을 통해서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열정과 희열을 느끼고 있는 것이 보이기도 했다.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하고, 그저 꿈만 꾸고 있는 이상 속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두려워서 발 들이길 망설이는 그 성역에서 그 친구는 한참을 앞으로 뛰쳐나가 있었다. 1년 사이에 그 친구와 나의 간격이 훨씬 더 벌어졌구나 생각이 들면서, 나 스스로가 너무 작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서, 1년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초기 창업팀에 합류해달라는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을 거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그 친구의 모습은 분명 나의 두려움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려움에 대한 확신과 반대로 강한 동경과 존경의 감정 또한 동시에 끓어올랐다. 복합적인 감정이 차올랐다. 그러한 감정이 여운으로 괜히 길게 남아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그 생각들을 잘 정리해두려고, 두서 지만 이런 글을 작성하게 된 것이다.




나는 아직도 창업가의 삶을 동경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삶을 두려워한다. 동경하면서 또 두려워하는 그 일에 발을 들이기 위해선 굉장히 큰 결심을 해야 한다. 원체 신중하고 조심성이 많은 성향인지라, 확신이 거의 없는 게임에 베팅을 하는 건 내키지가 않는다. 그래서, 아주 미세하게라도 '사업을 시작해야겠다'라는 확신이 드는 시점이 언제인지 분별을 하고 싶었다. 그런 이유에서, 내 나름의 기준을 만들어보았다.


첫째, 반드시 풀려야만 한다고 확신하는 시장의 문제를 찾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끝가지 포기하지 않고 밀고 나가려면 강한 확신이 필요하다. 이 문제를 풀면 많은 사람들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 그 확신을 단단하게 다질 때까지는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 확신이 생기기 전까지는 절대로 창업을 시작하지 않고, 웅크려서 시장의 문제들을 하나하나 탐색한다. 만약에 확신이 있는 시장의 문제를 찾았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인생을 건다. 창업을 본격적으로 가시화하는 시점은 아마 이때가 될 것이다.


둘째, 솔루션을 찾는다. 이 지점에서는 빠르고 많은 실행이 필요하다. 본격적인 창업 시작 전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는 최대한 조직에 소속된 상태에서 돈과 시간을 적게 들이는 방식으로 솔루션을 찾기 위한 여러 실행들을 해야 한다. 작고 실현 가능한 가설들을 빠르게 많이 세우고, 가용한 범위 내에서 적극적으로 실행한다. 그 작업을 '이 방법을 좀 더 제대로 각 잡고 해 보면 문제가 풀리겠다'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반복한다. 만약에 '이거면 되겠다'라는 단서가 데이터로 보이게 된다면, 그 시점에선 망설이지 말고 실행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창업을 결정하게 되는 두 번째 단서가 될 것이다.


셋째, 함께 문제를 풀어나갈 사람을 찾는다. 팀으로 함께 할 사람의 기준은 세 가지다. 첫째, 풀고자 하는 시장의 문제에 충분히 공감하고 동의하는가. 둘째, 선한 마음과 성실함을 갖고 있는가. 셋째, 충분히 똑똑하고 자신의 전문 분야에 뛰어난 전문성을 갖고 있는가. 이 세 가지 기준 모두를 충족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사실 천운에 가깝다. 혹시라도 하늘이 도와서 그런 사람과 연이 닿는다면,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붙잡아야 한다. 그런 사람과 함께라면, 그때는 진짜 시작해도 되는 때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이렇게 세 가지(시장의 문제, 솔루션, 함께할 동료)에서 확신이 생겼더라도, 사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따로 있다. 바로, '용기'다. 아무리 위대한 꿈을 꾸고, 혁신적인 솔루션을 찾았더라도,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이유에서, 두려운 마음을 붙잡고 반드시 넘어야 할 허들은 바로 '실행'이다. 그 실행의 영역이 참 넘기 힘든 언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길에 들어서는 순간 분명 힘들고 외로운 길이 시작될 것이다. 그 사실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힘들고 외로운 길을 묵묵히, 끝까지 잘 걸어간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가치가 있음을 기억하자.


그 가치를 얻어내기 위해서, 나는 반드시 창업을 할 것이다. 그것이 오늘 밤 내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들의 결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에게나 때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