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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다반사 Apr 11. 2020

중요한 것은 편한 것 보다는 즐거운 것!

<즐거운 생활이 있는 풍경> - 코카지 미츠구(小梶嗣)


'즐거운 생활이 있는 풍경'은 여러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도쿄 사람들의 일과 직업, 그리고 자신의 생활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인터뷰 기획 입니다. 때로는 진지할수도 때로는 유쾌할 수도 있는 '즐거운 생활이 있는 풍경'을 통해 많은 분들이 휴식과 회고 없이 달려온 일과 생활에 새로운 관점과 시선, 그리고 한 템포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즐거운 생활이 있는 풍경'의 첫번째 인터뷰이는 종합일간지 신규사업부에서 근무 중이신 코카지 미츠구 씨 입니다. 1980년대 일본의 경제적 부흥기인 버블경제 시기에 대학시절을 보내서 경제와 문화의 변화를 목격하고 경험했으며, 신문사 재직으로 미디어의 변화도 경험했습니다. 미디어의 신규사업 프로듀서 외 편집자, 대학 강사라는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코카지 미츠구 씨의 일과 생활에 대한 생각을 만나보세요!


중요한 것은 편한 것 보다는 즐거운 것!

인터뷰이: 코카지 미츠구 (프로듀서 / 편집자 / 대학강사)


Q: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코카지 미츠구(小梶嗣)라고 합니다. 나이는 54세. 스스로는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벌써 초로(初老)에 접어든 아저씨에요.(웃음) 아이들은 두 명이 있습니다. 미국에 본사가 있는 기업에서 일하는 26세의 아들. 올 가을에 노르웨이의 대학교에서 유학을 할 예정인 22세의 딸이에요. 아, 자랑이 아니라 저와 아내가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위기감과 불신이 배경에 있다 보니 그걸 아이들에게 들켜버린게 아닐까 싶어요.

코카지 미츠구 씨

하고 있는 일이 몇 개 있습니다. 본업은 일간지인 신문사에서 일하는 샐러리맨입니다. 취재 기자는 아니에요. 1989년에 입사해서 주로 광고부서에서 일해왔습니다. 어느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무려 31년간이나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더라고요. 이미 일본에서도 이렇게 같은 회사에서 줄곧 일하는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있어서 제 존재가 “20세기의 화석”이지 않을까 합니다.(웃음)


신문사의 신규 사업 개발부 프로듀서

제가 샐러리맨 스타일의 사람이 아니여서일까요, 몇 년 전부터 신규 사업을 개발하는 부서에서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신문사도 ‘종이 신문’의 판매가 감소 경향을 보이고 있고, ‘온라인판’도 종이와 같이 커다란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있어서 신규 사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가 기획한 사업 중 하나로 3년 전에 라디오 방송국, 출판사, 광고대행사와 함께 ‘궁극적인 방재 용품 판매와 올바른 방재 지식을 확산해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조합(究極の防災グッズ販売と正しい防災知識をひろげていくことを目的とした事業組合)'을 세웠습니다. 신문사는 민간의 영리 기업이지만 수익을 창출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은 핵심 역량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었어요.



편집자

다른 일로는 ‘종이로 만들어진 책’의 편집자 일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작업은 1990년대에 ‘시부야계(渋谷系)’라는 음악 무브먼트를 이끌었던 피지카토 파이브(ピチカート・ファイヴ)라는 밴드의 리더를 해왔던 고니시 야스하루(小西康陽)씨와의 작업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2008년에 나온 ‘나는 산책과 잡학을 좋아했다. 고니시 야스하루의 칼럼 1993-2008 (ぼくは散歩と雑学が好きだった。小西康陽のコラム1993-2008)’과 작년에 나온 ‘나의 비틀즈, 고니시 야스하루의 칼럼 1992-2019 (わたくしのビートルズ 小西康陽のコラム1992-2019)’ 이렇게 두 권이에요. 방대한 내용의 저서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어서 각각 다른 한 명의 편집자에게 협력을 구해서 만들었어요.


‘나는 산책과 잡학을 좋아했다. 고니시 야스하루의 칼럼 1993-2008'과 ‘나의 비틀즈, 고니시 야스하루의 칼럼 1992-2019'의 표지와 내부 (제공: 코카지 미츠구)

보시면 아시겠지만 페이지 단의 구성이 복잡하고 많은 도판이 들어간 호화본이에요. 이는 1970년에 쇼우분샤(晶文社)라는 출판사에서 '일본의 서브컬쳐의 원조격인 할아버지'인 우에쿠사 진이치(植草甚一)의 '나는 산책과 잡학을 좋아한다(ぼくは散歩と雑学がすき)'의 책의 오마쥬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이 두 권의 책은 '인터넷 상의 에디토리얼 디자인(Editorial Design)'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에요. 인터넷의 영향으로 세계적으로 '종이로 만들어진 책'의 출간이 감소하고 있지만 2010년 대 이후의 종이책의 편집자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 종이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살려저 작업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권은 한국어로 번역되어서 문화를 좋아하는 한국 분들도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램도 있습니다. :)



대학 강사

아직 제 소개가 끝나지 않았어요! (웃음) 3번째 일은 대학교 강사 입니다. 인연이 되어서 2년 전부터 한 미술 대학교에서 ‘현대 문화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학교 2학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필수 강의인데요, 여기에서 받은 다양한 자극은 본업인 프로듀서 일과 편집자의 일에 영향을 주고 있어요.

이 내용도 말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아서요 이쯤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웃음)



Q: 다양한 일을 하고 계신데요, 학생 시절 가졌던 꿈이나 장래희망은 무엇이었나요?


1965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1980년대에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녔습니다. 일본의 1980년대는 고도 성장기의 경제도 끝나고 사람들의 생활에도 여유가 생긴 시대였어요. 즉, 경제와 정치의 계절이 아닌 ‘문화의 계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의 계절' 속에서 영향을 받은 세이부 세종 문화(西武セゾン文化)


그러한 무브먼트를 이끌었던 하나로 독특한 백화점 경영자인 츠츠미 세이지(堤清二)가 만들어 낸 ‘세이부 세종 문화(西武セゾン文化)’가 있었습니다. 그 백화점이 있던 이케부쿠로(池袋) 옆 동네에서 지냈던 저는 세종문화에 푹 빠져버리게 되었고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츠츠미 세이지는 경영자이기도 했지만 츠지이 타카시(辻井喬)라는 필명을 지닌 소설가이기도 했고 시인이기도 했답니다.


(좌) 세이부 백화점  (우) 파르코의 광고 (제공: 코카지 미츠구)


그는 ‘백화점은 단순히 물건을 판매만 하는 장소가 아닌, 문화를 발신하는 장소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해서 백화점의 최상층에 현대 미술을 취급하는 미술관을 만들거나, ‘맛있는 생활(おいしい生活)’이라는 슬로건의 바탕으로 생활의 질적 향상을 제창했던 독특한 광고 선전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학생 시절 어느 날 제 자신의 장래에 대해 상상한 적이 있는데요 제가 임원이 되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평범한 회사에 들어가서 총무와 경리와 영업을 하는 모습도 떠오르지 않았고, 또 공장에서 묵묵히 무언가를 조립하는 모습도 상기되지 않았어요. 예전부터 공작과 미술과 국어 등 물건을 만드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만이 제 꿈이었어요.


1980년대 후반에 물건을 만드는 크리에이터를 목표로 한다는 것은 매스미디어와 광고대행사와 기업의 홍보부에 들어가서 CM 기획자와 카피라이터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Q: 그럼 학교를 다니면서 배운 것들 중 지금의 자신에게 영향을 끼쳤던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대학생 때의 저는 철학적인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미대 입시에서 낙방을 하고 ‘미술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려고 생각하고 고민했기 때문이에요.


이 역시 1980년대의 일인데요 일본에서는 프랑스 현대 사상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젊은 학자들에 의한 ‘뉴 아카데미즘(ニューアカデミズム)’이라는 무브먼트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거기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사고의 방식은 끝나고 앞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인데요, 근저에 흐르는 문제 의식이 현대 미술과 같기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뉴 아카데미즘을 배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가운데 당시 수업을 듣으면서 친해진 ‘법의학’ 교수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다소 현실과 떨어진 공부만 하고 있어. 한번 내 법의학 교실에서 사법 해부(司法解剖)를 도와주러 오게나. 틀림없이 인식이 변할테니깐."


자세히는 언급하지 않겠지만 스무살이 갓 지난 제가 거기에서 눈으로 봤던 것은 ‘누군가에게 살해된 무언의 시체와 살해한 범인을 과학적으로 찾아내려고 하는 선생님의 진지한 모습’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어려운 이론은 없고 ‘압도적인 절망과 서늘한 현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날부터 현실과 마주하며 살아가기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계기로 저의 좌우명은 ‘백문이불여일견(百聞は一見に如かず)’이 되었습니다.



Q: 지금의 일을 선택한 계기와 이유가 무엇인가요?


방금 전 질문인 ‘학창 시절의 꿈’을 실현시킨 것 뿐이에요. 운이 좋았던 것인지 어떤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요. (웃음)



Q: 지금의 일을 선택해서 좋았다고 생각이 들었던 일화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간단히 말하면 20세기 후반은 ‘매스미디어의 시대’였습니다. 따라서 신문사라는 근무처의 이름으로 30년간 무명, 유명 관계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만들 수 있었던 인간 관계는 지금의 저에게 귀중한 자산이 되고 있어요.


중요한 것은 만나고 난 다음부터!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고 싶은 것은 ‘중요한 것은 만나고 난 다음부터다’라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유명인과 만나서 좋았다!’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 첫 번째의 만남에서 어떻게 지속 가능한 관계성을 그 사람과 구축할 수 있을지가 중요해요. 이건 연애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Q: 지금 하고 계시는 일이나 직업을 목표로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는 분들에게 해주실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방금 전에 이야기한 ‘20세기 후반은 매스미디어의 시대였다’는 말을 기억해주세요. (웃음) 혹시라도 이 분야에 강한 마음이 있다면 다른 이야기겠지만 추천은 해드릴 수 없습니다. 적어도 제 두 아이들에게는 ‘그만두라’고 조언해주고 있어요. (웃음)


시대는 지금,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Digital Transformation)’의 한 가운데에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처럼 성장이 멈춘 나라의 내부에서 성립되는 일이 아니라 유동성이 높은 나라, 다시 말해 변화가 심하고 자금, 인재, 정보가 움직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에서 한 번은 일을 해보는 것을 추천해드려요. 음,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어학 능력’이겠네요.



Q: 혹시 현재 일을 계속하면서 목표로 하고 있는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현재, 지금의 프로듀서 일을 계속하면서 ‘종이책의 편집자’와 회사의 배려로 ‘대학교의 선생님’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는 없어요.


이런 일들을 하면서 생각한 것은 ‘부업’과 ‘취미’라는 것은 본업과 연결되어 있다고 실감하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과 같은 크리에이터와 젊은 세대들은 계속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더욱 더 깊이 파고 들어가야한다고 생각해요.


‘즐거워서 비교적 스트레스가 없는 일’은 자연스럽게 잘 나아가지 않을까요


그리고 한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그 분야에 밝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분명히 그것이 자연스럽게 ‘본업’으로 되어가지 않을까요. 금전적인 부분 때문에 무리하게 하는 일은 분명 잘 나아가지 못합니다. 한편, ‘즐거워서 비교적 스트레스가 없는 일’은 자연스럽게 잘 나아가지 않을까 해요.


코카지 미츠구 씨가 연재하는 '사적 쇼핑의 변명' 메인 이미지 (제공: 코카지 미츠구)


지금 이야기를 드리면서 떠올랐어요. 질문 주셨던 현재 저의 목표는 지금 일본어로 된 어느 웹 매거진에서 연재하고 있는 ‘사적 쇼핑의 변명(僕的買い物のいい訳)’이라는 칼럼을 스스로 재편집해서 ‘종이 책’으로 출판하는 것 입니다!


처음은 평범하게 출판사에서 내려고 생각했었는데요 지금은 비용은 신경쓰지않고 제 스타일답게 자유롭게 ‘궁극의 종이 책’을 만들어 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인스타그램의 팔로워와 공감해주는 독립 서점에서 판매가 되었으면 하며 구상하고 있어요.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곳 일본에서는 서점이 하루에 한 곳 이상 문을 닫고 있습니다. 또한, 아마존이 보급되었기 때문에 취미 경향이 높은 책은 종래와 같은 서점 유통에 실어보내도 의미가 없지 않을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사적 쇼핑의 변명(僕的買い物のいい訳)’



Q: 일상 생활을 보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포인트는 어떤건가요?


‘편한 것(easy) 보다는 즐거운 것(enjoy)!’ 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즐거운 것’은 ‘편한 것이 아니’에요. 일도 일상 생활도요. (웃음)



Q: 업무 이외에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주로 무엇을 하시나요?


최근에는 ‘영화관에서 영화 감상하기’ 입니다.


담당하고 있는 음악가 고니시 야스하루 씨의 영향으로 작년 7월부터 ‘일본의 예전 영화’를 도쿄 시내에 있는 여러 ‘명화 극장(名画座)’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매월 감상하는 영화 편수는 다르지만 올해 3월까지 9개월간 130편을 봤네요. 따라서 한 달에 14편 정도를 보고 있네요. (웃음)


처음에는 ‘양보다는 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많은 명화를 보다보니 그것이 틀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많은 영화를 보는 것으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작)연대에 의한 영화의 톤’이랑 ‘영화사별 색채’라던가, ‘좋아하는 감독과 좋아하는 배우’라던가, ‘좋아하는 영화 음악 작가’ 같은 것이에요. 그런 것들이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것들입니다.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영화 '흐트러지다(乱れる)' 이미지 (제공: 코카지 미츠구)

덧붙이자면 저는 1950년대부터 1960년대의 다이에이(大映)와 토호(東宝)의 흑백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영화 감독은 나루세 미키오(成瀬巳喜男)와 이치카와 곤(市川崑). 나루세의 작품으로는 ‘흐트러지다 (乱れる)’(1964년)를 많이 좋아해요. 한국어 자막판이 있다면 꼭 보셨으면 하네요.


아, 맞다 맞다! 저는 한국 영화도 좋아해요. 물론 ‘기생충’도 좋아하지만 2010년 일본에서 개봉했던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의 엄청난 팬이에요.


한국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일본에서는 35mm 필름을 상영하는 영화관이 이미 사라져 버렸습니다. 다시말해, 지금 현존하는 필름이 노화한다면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는 작품이 상당해요. 명화로서 평가되어지고 있는 작품은 국가에서 디지털 보존을 하잖아요. 한편 인기 작품은 인터넷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영화사에서 디지털화 작업을 합니다. 저희와 같은 예전 일본 영화 팬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그 사이에 있는 작품들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사실은 영화관에서 밖에 볼 수 없는 작품이 많습니다.



Q: 일상 생활을 보내는 지역에서 좋아하는 장소가 있으신가요?


저는 ‘신주쿠(新宿)’를 좋아해요. (웃음)

명화극장은 없지만 멀티플렉스가 몇 곳 있을 뿐 아니라 단관 극장도 있어요!

키노쿠니야 서점(紀伊國屋書店)이라는 대형 서점도 있고요!

디스크유니온(ユニオン)이라는 중고 레코드 전문점도 몇 곳이나 장르별로 있어요!

세카이도(世界堂)라는 도쿄 최대의 미술 용품 전문점이 있어요!

이세탄(伊勢丹), 타카시마야(高島屋), 오다큐(小田急), 케이오(京王)라는 백화점이 4곳이나 있어요 (이세탄 남성관을 추천합니다)!

DUG 등의 재즈킷사(ジャズ喫茶)가 있어요!

BEAMS JAPAN 등의 독특한 셀렉트샵이 있어요!

신주쿠 골든가이(新宿ゴールデン街)라는 ‘영화 세트장’과 같은 바와 스나쿠(スナック)의 거리가 있어요!

신주쿠2쵸메(新宿二丁目)라는 세계 최대의 게이 문화 타운이 있어요!


그리고 맛있는 식사를 내주는 가게들이 무수히 있습니다!


술집으로는 여러분에게는 꼭 신주쿠 알타(ALTA) 뒷 편에 있는 ‘이글(イーグル)’에 가보시길 추천드려요. 거기에서 반드시 하이볼(ハイボール)을 주문해보세요.



Q: 지금까지 구매한 물건들 중에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 있으신가요?


'물건' 자체로 본다면 사실 없을지도 모르겠는데요? (웃음)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동일본대지진은 저 스스로의 ‘물건에 대한 집착이나 소유욕’을 크게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해안가로 날아간 '한 장의 사진', 중요한 건 '소중한 사람과 지낸 즐거운 기억'


그 대지진에 의한 쓰나미(津波)로 가족과 집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먼저 찾은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그건 물건이 아니라 해안가로 날아간 ‘한 장의 사진’이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중한 사람과 지낸 즐거운 기억’이었던 것이에요.


그렇다고는 해도 굳이 이야기하자면 매일 물을 끓일 때 쓰고 있는 ‘아리츠구(有次)의 알루미늄제 주전자’일까요. (웃음) 이 주전자도 단순한 물건으로서의 소중한 것은 아니에요. 즐거웠던 추억이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Q: 물건을 사거나 고를 때의 기준이 있으신가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사진만 보셔도 괜찮으니 웹에 연재하고 있는 ‘사적 쇼핑의 변명(僕的買い物のいい訳)’을 봐주셨으면 해요. (웃음)


보시면 아실 것 같아요. 저는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입니다.

하지만, 이 연재에서 제가 몇 번이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생활필수품이 일단 갖춰진 현대에 있어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은 어딘가 ‘자신의 아이덴티티’와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식이에요.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격언이 있잖아요?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물건을 구입하는 기준은 ‘과거의 자신의 기억’에 결합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뭔가 관념적인 대답이라서 죄송해요.


물건을 구입하는 것은 자신의 아이덴티티와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요



Q: 오래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는 책을 추천해주세요.

그림책 '구룬파의 유치원' 표지 (제공: 코카지 미츠구)

일본 그림책인데요 니시우치 미나미(西内ミナミ) 글, 호리우치 세이이치(堀内誠一) 그림의 ‘구룬파의 유치원(ぐるんぱのようちえん)’을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있습니다. 제가 태어난 1965년에 출판되어서 반세기 이상이나 롱 셀러로 자리하고 있는 명작이에요.



이야기의 내용은 단순해요. 구룬파라는 이름의 고독한 코끼리가 자신이 살아갈 곳을 찾기까지의 스토리 입니다. ‘인생에서 쓸모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한국어 번역판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인생에서 쓸모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Q: 즐거운 생활을 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지금 세계는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요, 저는 어떤 때라도 ‘희화와 대화’가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즐겁지 않은 것’은 대체적으로 불완전한 커뮤니케이션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그것이 국가 간에 발생하고 서로 싸우는 상태가 되면 전쟁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해도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존재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마음은 바깥에 대해 ‘열려있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타인의 마음은 밖에서는 알 수 없잖아요. 그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줘서 그 사람의 입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말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코로나19도 그렇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정말로 공포스럽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것을 가능한 ‘눈에 보이는 형태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로 즐거운 생활을 보내는 비결은 평범한 이야기겠지만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당신의 두뇌 속이 쾌락 물질인 도파민으로 가득차지 않을까요? (웃음)




꽤 긴 내용임에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본의 경제적, 문화적 부흥기에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을 보낸 코카지 미츠구 씨의 이야기 어떠셨나요?

즐거운 생활이 있는 풍경을 위해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셨던던 점, 그리고 물건 그 자체가 아닌 의미와 즐거움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코카지 씨의 생각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더불어 미디어 산업에서의 오랜 기간의 경험과 통찰에서 나온 조언들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분도 나 자신의 일상과 삶에서 '즐거운 생활이 있는 풍경'을 만들기 위한 회고와 계획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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