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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니 May 01. 2020

죽음을 떠올리며 사는 삶

엄마가 암 선고를 받았다

2019년 10월 프랑스 여행을 갔다. 내생에 가장 행복한 열흘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왔다. 언니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빨리 집에 오라 했다. 서울에 엄마 아빠가 올라와 계셨다. 엄마가 암에 걸렸다고 했다. 동생의 여행기분을 망치기 싫어 일주일간 혼자 울었을 언닐 보니 가슴이 미어졌다.


스물아홉의 가을, 내생에 가장 행복했던 시간과 가장 슬펐던 시간이 함께 한 계절이었다.


어릴 적부터 유달리 주사를 무서워 한 엄마는 국민학생 때 예방접종이 맞기 싫어 냄새나는 변소에 하루 종일 숨어있다 나오곤 했다.

주삿바늘이 무서워 건강검진도 멀리하던 엄마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진작에 끌고라도 갔어야 했다. 후회가 크다. 모두들 나처럼 뒤늦은 후회 말고 부모님 건강검진 꼭 모시길 바란다.)


작년 가을부터 엄만 배가 더부룩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린 위나 장쪽의 문제 인줄로만 알았고, 난 계속 위내시경 받아보라고만 했다. 시골 작은 의사는 발견을 못했고, 큰 병원에 갔더니 난소암 소견이 보인다고 했다.


운이 좋게도 신촌 세브란스에 빨리 입원할 수가 있었고, 이미 복부 내 암세포가 퍼져 복수가 가득 차 있었다. 양쪽 배 두 곳, 가슴 두 곳에서 복수와 흉수를 3리터가량 빼냈다.


수술 전 3차 항암을 하고(표준 항암), 19년 12월 27일 수술을 했다.

수술실에 엄마를 배웅할 때,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라는 성경구절이 여기저기 보였다. 베드에 실려 옮겨지는 환자에게도 보이도록 천장에 까지 적혀있었다.

자궁과 난소, 맹장, 복막, 림프절을 떼냈다.


병실에서 언니와 함께 엄마를 기다리는데, 수술실에서 연락이 와 보호자분들 수술실로 내려오라고 했다. 무슨 큰일이 난 줄만 알았다. 이유도 모른 채 간 거라 수술실 앞에서 위생복 입고, 모자 쓰고, 소독하던 그때의 긴장과 두려움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난소암 명의로 유명하신 김영태 교수님은 언니와 나에게 수술 잘 됐으니 어머니 깨어나시면 맛있는 거 많이 먹이고 잘 위로해드리라고 했다. 천에 덮인 채 호흡기로 숨 쉬는 엄마와 떼낸 엄마의 장기들이 보였다. 김영태 선생님의 친절에 굉장히 감사했다. 어린 두 딸이 엄마를 지키고 있던걸 기억하셨는지, 미리 불러 잘 됐으니 걱정 말라 당신의 입으로 직접 위로를 해 주신 것 같다.


난소암은 조기발견이 굉장히 드문 암이고, 이상 징후를 느껴 병원을 찾았을 땐 대부분이 3-4기이다.

수술과 조직검사를 통해 확진받은 엄마의 병기는 4기 a이다.


수술 전 3차 항암과 장기적출 수술, 이후 6차 항암(총 9차) 후 0기 판정을 받는 것이 현재 우리 목표다.

현재까지 8차 항암을 받았고, 마지막 항암과 최종 검사를 앞두고 있다.


지난 10월 입원 이후 7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아빠 언니 나 동생. 자신과의 싸움에서 끝까지 의지로 이겨낸 엄마까지.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8차까지 세브란스와 적십자병원을 오가며 항암과 요양을 병행했다. 마지막 한 번의 항암을 남겨놓고 적십자병원이 코로나 지정병원이 되어 원래 입원하고 있던 환자 모두가 나가야 했다. 지금 있는 홍은동 동신병원으로 옮긴 지 약 보름이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급히 병원도 알아보고 면회시간도 제한되어 힘든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희한하게 또 재택근무 명령이 떨어져 이틀에 한 번꼴로 엄마 옆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항암으로 입맛이 뚝 떨어진 엄마는 그래도 우리가 옆에서 같이 먹어주면 잘 먹는다. 매일 엄마와 함께 밥 먹고, 점심시간엔 병원 앞 홍제천을 걸을 수 있어 참 감사하다.


평생을 쉼 없이 바쁘게 달려온 엄만, 평생에 쉴 거 다 쉬고 평생 볼 텔레비전 다 봤다고 한다. 누구보다 밝고 에너제틱하고 건강하던 엄마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아무도 몰랐다. 고속엔진처럼 질주하던 엄만 이번 기회에 스스로의 삶을 다시 돌아보았고,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어 앞으로의 삶을 새롭게 계획함에 늘 감사하다고 한다.


죽음을 떠올리며 살아갈 때, 우리 삶은 더욱 농밀해진다.


오는 5월 4일, 마지막 항암을 받고 MRI, CT 등 종합검사를 다시 한다.


몇 년 후 웃으며 다시 이 글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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