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친구가 100억번썰 푼다.txt
…친구가 100억을 벌었다, 친구가 100억을 벌었다 X 10
몇 번 읊조렸는데, 말할 때마다 너털웃음이 나왔다. 처음에는 진심으로 기쁜 마음에 웃음이 나왔다는 사실을 말해둔다. 하지만 거참 희한한 일이다. 시간이 거듭될수록 마음 한 구석에서 일종의 허탈감과 말하자면, 불안감이 함께 엄습하는 것이었다.
친한 친구가 소위 ‘대박’난 적 있나? 보통 멘탈로는 즉시적 수용이 쉽지 않다.
나는 ‘부러움’이라고 포장되는 이 일련의 복잡한 감정들은 마치 애도반응 처럼 하나의 과정을 통해 소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좋고 안좋고의 감정이 아니다. 놀라운 사건을 목격하고 나서 느껴지는 여운 같은 것이다. 가까이 지내던 동료의 퇴사 소식. 뭐 그런 거랑 비슷한 거다. 한 동안은 끈적하게 내 머릿속에 붙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되돌아오는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다.
물론 모두 이러한 사건에 대응하는 방법이 다르겠지만, 나는 이랬다. 일단은 횽식이의 20대. 그리고 나의 20대가 교차되어 마치 주마등처럼 우리의 과거가 끊임없이 눈앞을 아른거렸다.
100억의 사나이, 내 친구 횽식이는 나와 15년지기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해 기타를 전문가 수준으로 쳤다. 작곡도 곧잘 했다. 한때 음악을 전문적으로 해보겠다고 대학도 휴학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원래의 전공이던 컴퓨터공학과 음악을 접목시켜 “뭔가”를 해보고자 연구자로서의 길을 선택했고, 전공은 달랐지만, 나와 같은 대학원에 진학해 시도 때도 없이 만났다.
나는 미국유학을 고민했지만 접었고, (노는게 제일 좋아서.. feat 뽀로로) 대신 세상에 있는 모든 미드를 다 보는 불굴의 미드덕후가 되었다.
횽식이는 미국유학은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의외로 미국인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나는 영어과외와 컨설팅 회사 인턴을 병행하며 효과적인 채용의 방식에 대한 논문을 썼다.
횽식이는 ‘융합’, ‘기술’같은 단어가 마구 들어간 연구실에 들어가 ‘AI음악’이라는 당시 생소한 분야의 개척자가 되었다.
그러다 걔가 어느날 이런걸 들려줬다.
횽식: (핸드폰을 들이대며) 이거 소리내서 읽어봐.
나: 아이 돈 노 후 유아…
그러자 갑자기 리암 니슨 목소리가 나왔다.
나: 오올! 왕신기!
횽식: 낄낄.
나: 원래는 노래에서 목소리만 추출하는 기술 연구하지 않았나?
횽식: 그랬지
나: 아이유 목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서?
횽식: 그랬지
나: 이제 변조도 돼? 대박스
횽식: 낄낄.
이후 나는 인턴을 하던 회사에 취직해 K직장인이 됐고,
횽식이는 바로 그 신기한 리암니슨 기술로 K박사과정생이 됐다.
나는 ppt에 엄청난 애증의 감정을 가진 ppt마스터가 되었고,
횽식이는 음성을 손쉽게 변조하는 알고리즘을 더더 개발했다.
나는 농업적 근면성으로 노동력을 팔았고,
횽식이는 음성을 손쉽게 변조하는 그 알고리즘 기술을 팔았다.
대단한 게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별게 없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게 바로 그 대목이었다. 되돌아보면 중요한 마일스톤이었던 몇가지 사건이 막상 당시에는 일상적 권태의 일부로서 별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던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모든 순간, 횽식이는 너.무.나.태.연.하.게 이른 성공의 길을 걸어나가고 있었고, 나는 그러한 신호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평균에 머무르는 데에 급급했다. 그건, 나는 나대로 작은 성장을 계속해서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작은 성공에 갇힌 나는, 횽식이가 인구의 대부분이 범접하지 못하는 거대한 성공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는 내가 당분간 이룰 성공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보지 못하는 실수를 범했다. 후술하겠지만, 나는 이후 이것 하나만은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성공은 비극만큼이나 '침묵'하며 다가온다는 것.
성공은 오르막길로 오지 않고, 계단으로 온다더니. (아빠가 한말이다)
실제로 그 대박, 이라는 것이 발생하기 전까지 나는 횽식이와 나의 나날들이 많은 부분에서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둘 다 같은 “평지”에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우리는 전혀 다른 20대를 보냈음을 생각하면 정말 아이러니하다).
이는 앞으로도 우리의 삶의 수준이 유사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
그리고 올해초, 드디어 그 믿음은 보기 좋게 배신당했다.
횽식이는 지도교수님과 함께 법인을 세워 본격적인 경영을 시작하더니, 설립 2년이 안 되어 티비에 AI대 인간! 이런 식의 컨셉으로 한두번 노출이 되다가 코로나와 메타버스, 가상인간 열풍을 타고 대형 프로젝트들을 줄이어 수주했다. 그리고 마침내 대형 엔터테인먼트사에 인수되며 정점을 찍었다.
이제 횽식이의 유일한 걱정은 미국에 있는 여자친구를 보러 9월에 갈까, 10월에 갈까 하는 것이다.
석사과정의 고통이나 15년 간의 술자리를 공유하며 다진 찐한 우정 없이도 횽식이가 정말 훌륭한 친구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다른 사람이 아닌 횽식이가 잘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할 정도로 그는 잘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또 그만큼 내가 애정한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런저런 불순한 감정이 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매우 훌륭한 역량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돈을 강하게 원한 적도, 특별하게 처절하게 노력하진 않았다. 그런 점에서 약간의 위화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오히려 내가 난리였다. 무슨 주식을 사라는 둥 올웨더 포트폴리오 어쩌구. 그를 만날 때마다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런 순간들이 지금의 나로 하여금 더 자책의 마음을 갖게 했다. 쥐구멍을 찾고 싶기도 했다.
가장 큰 위화감은, 우리가 석사생활을 나름 함께했으며, 꽤 유사한 패턴과 강도로 고통받았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내가 ‘문돌이’라는 원죄를 안고 살고 있긴 하지만 나는 노력으로는 그에게 크게 뒤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던 것이다. 무자비한 야근을 일삼는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전액장학금을 받으며 석사졸업장을 따는 것은 약간의 과장을 보태, 뼈를 깎는 노력을 수반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깨달았다. ‘아,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 많구나’
그리고, 이는 내가 다섯가지 새로운 다짐을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말이다.
자. 우선 가장 쉬운 첫번째. 나의 노력에 심취하지 말 것.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주변을 돌아보고, 내가 잘 가고 있는지 점검하겠다.
경영학에는 ‘경로의존(path dependence)’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건 보통은 기업에게 쓰는 개념인데, 현재의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선택하기 보다, 과거에 계속 해오던 비효율적 방식 계속 유지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즉, 한번 발을 들인 경로에서 이탈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부터 의식적으로 경로의존 아닌 “경로독립”을 선언하는 바이다. 단순히 계속 해오던 것이라서 지속하지 말고, 과거의 경로를 계속해서 의심하고 업데이트 해나갈 것이다.
내가 잘 가고 있는지 점검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스토리’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것은 나의 스토리인가. 그리고, 멋진 스토리인가. 고생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스토리인가. 동시에 그 스토리는 전략적으로 ‘납득’이 가야한다.
횽식이의 성공은, 그가 가장 잘하는 두 가지를 접목하고, 본인의 욕망 뿐 아니라 시장의 욕망을 읽어,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냈고, 무엇보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반면, 나는 여태 유망한 전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없이 일반적인 전공과 직무를 선택해, 한순간에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것을 맹목적으로 열심히하는 것만이 정답일까? ‘너가 하고싶은게 뭐야’만 외치는 수많은 서적들과 사람들에 들러싸여 '전략적 선택'을 도외시한 것의 결과는 혹독했다. 나는 나의 직업을 좋아하고, 나름 인정을 받고 있지만, 이대로는 소위 부의 추월차선을 통한 성공은 불가능하다. 인생 전체로 보면 큰 패착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두번째, 성공을 좇는 것을 포기하지 말 것
횽식이의 성공이 나를 불안하게 한 원천은 바로, 여태 나의 모든 계획과 전략과 성과가 무가치한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그러자 묘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왜 엄마 아빠가 나 돈 관심 없다, 세상에 돈이 전부니? 하며 애써 돈의 가치를 무시해왔던 이유 말이다.
인생의 척도를 ‘돈’으로만 두고 나니, 친한 친구가 거대한 성공을 이룬 이 순간, 스스로가 열등한 사람처럼 여겨지는 경험을 했다. 내가 평생 모을 자산의 가치는 횽식이의 자산에 미치지 못할 것이 꽤 높은 확률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솔직히, 매우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국내 최고 공대에서 학/석/박사과정을 졸업한 아빠는 지난 40년을 동안 무수히 많은 동기들의 성공을 목격해야 했다. 반도체 설비 회사를 차려 조단위의 자산을 소유하게 된 친구, 치과 스캐닝 회사를 차려 유명 사모펀드사에 매각한 친구 등. 내게 알려준 사례만 해도 수십개다. 이러한 사건들을 접하다보면, 대다수는 엄빠처럼 애써 올라가지 못한 나무를 쳐다보며 “저거 저거 쳐다볼 가치도 없어”라고 이야기할 할 지도 모른다. 오를 수 없는 나무를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다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럼에도, 그러한 고통을 외면하지 말자는 것이다. 회피는 남는 게 없다. 이를 묵묵히 견뎌 횽식이보다 금전적으로, 사회적으로 ‘열등하게’ 되는 가능성을 그냥 수용하자. 그리고 이를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위한 동력으로 활용하자.
세번째, 무조건 목표를 이룰 것.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친구를 위해 순수하게 기뻐하지 못하고 약간이나마 자아분열의 시간을 가졌더 이유는, 전적으로 나한테 있었다. 바로 내가 스스로 목표한 바로부터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이다. 이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도 목표를 이뤄야한다. 무조건. 그렇지 않으면 횽식이 뿐 아니라 그 누구의 성공과 행복도 진심으로 기뻐해줄 수 있을까 싶다.
때문에 나를 위해서, 엄빠를 위해서. 우정을 위해서. 나는 무조건 꿈을 이룬다.
네번째, 결과가 아닌 과정을 부러워할 것.
횽식이 뿐 아니라 주변의 다른 성공사례를 들을 때마다 느낀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친구의 성공사례를 알게된 이후 하루 이틀 정도는 갑자기 과도하게 과감해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위험한 코인에 돈을 넣는다거나 가지고 있는 현금 비중을 축소한다거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작용하는 것 같다. 하나는 갑자기 고수익을 원하게 되는 불순한 마음이 생김과 동시에 고수익을 얻기 위해 고위험에 투자해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돈을 빨리 벌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바로 친구에게 찾아온 성공이, 행.운.때.문.이라고 축소해서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다. 횽식이의 노력은 간과하고 나에게도 그런 ‘운’이 찾아오지 않을까라고 성급하게 생각해, 도박심리가 생기는 것이다.
며칠의 자기성찰 결과,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는 결국 성공의 과정을 소중히하지 않고 결과만을 탐하려는 욕구 때문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는 반대로 해보면 어떨까 싶다. 앞으로 나는 결과가 아닌 과정을 탐하고, 과정 때문에 부러워하겠다. 횽식이는 뭔가에 도전했고, 그것을 인내했고, 스스로에게 성공을 선물했다. 그 노력과 인내와 성취가 부럽다. 과정에 대한 부러움은 당장이라도 해결할 수 있다. 목표를 더 뾰족하게 세우고 스스로 더 노력하는 것으로. 과정과 목표가 없이, 부자가 되겠다는 목적은 나를 성공과 더욱 멀어지게 할 뿐 아니라 남의 행복에 순수하게 기뻐해줄 수 없는,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을 즐길 수 없는 불행하고 못난 욕망덩어리가 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마지막, 절대로. 친구를 잃지 말 것
앞서 간략히 이야기했지만, 같은 동네에 살고, 같은 고등학교와 유사한 대학과 직장을 거치며, 나는 나의 친구들과 언제까지나 같은 유형의 고민과 같은 수준의 생활을 하며 살아갈 것이라는 환상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30대가 되자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격차가 슬슬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횽식이처럼 큰 성공을 이룬 몇명의 “지각변동”으로 인해, 간혹 몇 친구들은 그것 때문에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이상해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쯤 되니, 친구의 성공은 비극만큼이나 관계에 많은, (가끔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됐다.
본질적으로는 이런 느낌 때문인 것 같다. 함께 나란히 걷던 친구들이 마치 멀리 달아나버린 느낌.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생긴 느낌. 우린 이제 상황이 다르니, 더이상 친구가 되면 안되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드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물론 나도 한때 잠시나마 그런 과정을 ‘애도반응’의 일부로서 거쳤다. 하지만 이젠 안다. 그것처럼 어리석은 짓이 없다는 것을. 주변사람이 잘되어야 나도 잘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물론, 100억의 사나이 횽식이 앞에 펼쳐진 그의 인생은 과거와도 많이 다를 것이고, 지금의 나와도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관계에서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작년까지는 내가 밥을 샀고, 이제는 횽식이가 밥을 산다는 것 외에는. (아마 평생…)
돌이켜보니 웃음이 나온다. 말도안되는 이유로 우정을 잃어버릴 뻔 했다.
정말이지,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오로지 나 한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