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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히 Oct 15. 2020

18 한국까지 2개월, 자가격리 작전 짜기에 돌입했다


지난 일요일 이후로 집 밖을 나간 기억이 없다. 평소라면 주 3일은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칠흑 같은 새벽어둠을 뚫고 어학원에 갔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가을방학이니까. Efterårsferie. 말 그대로 가을(efterår) 방학(ferie)이다. 매년 42주 즈음 학교 전체가 한주를 쉰단다. 내가 느끼기엔 한국의 봄방학 같은 느낌이다. 물론 학교에 '일'을 하러 가는 사람은 못 쉰다. 예를 들면 나와 같이 사는 사람 같은 사람들. 연구실에 출근했더니 어린이집이 따로 없었단다. 자녀가 있는 교수님들이 모두 아이들과 출근을 해서. 희한한 건 집에 와서 이 말을 하는 그의 표정과 그 말을 듣는 내 표정이 어딘가 흐뭇하면서도 씁쓸했다는 것. 종종 한국도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상황을 겪을 때마다 이런 표정을 짓는다.


나도 이제 덴마크어를 조금 읽는다. 출처 : ugenr.dk


이곳에 살고 있는 지인 말에 따르면 아주 오래전, 감자 캐는 일이 덴마크의 주요 노동이던 시절 아이들을 포함한 집안사람들 전체가 감자를 캐야 해서 쉬는 주간을 만들었단다. 나는 감자 캐러 가는 대신 감자를 삼겹살 기름에 구워 먹으며 행복한 방학을 즐기고 있다. 고작 일주일 학원 안 나간다고 행복할까 싶었는데 웬걸, 수면바지를 입고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너무 재밌고 짜릿하다. 방학이 시작되면서 10도 언저리로 뚝 떨어진 기온도 한몫했지만 그냥 집에 있는 게 너무 좋다. 귀찮아서 안 나가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집이 좋아서 안 나가는 게 더 크다. 손짓 발짓해가며 우리 힘으로 처음 구한 아파트가, 땀을 뻘뻘 흘려가며 곳곳에 채워 넣은 가구들이 볼 때마다 미소 짓게 한다. 아직 안 죽고 테라스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식물들과 왜 이딴 걸 바닥에 깔았나 싶었던 숨 쉬는 나무 마루도 나의 하루를 기분 좋게 한다. 꾸며놓은 집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케아 테스트를 무난히 통과한 우리의 저력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 이사를 다 하고 아까 그 이곳에 사는 지인에게 들은 말이다. 동거 문화가 전반적인 덴마크에서는 커플이 집을 구하면 이케아를 수시로 드나든다. 풀옵션이라는 개념이 없는 건 물론이고 천장에 등도 안 달려있기 때문. 우리나라처럼 얼마 이상이면 무료로 배송된다거나 오늘 주문하면 내일 바로 도착한다거나 하는 배송 시스템이 갖춰져있지 않기 때문에 차나 자전거를 몰고 이케아에 가서 몸집만 한 가구를 들고, 싣고, 나르고, 조립까지 셀프로 한다는 얘기. 우리의 경우 내 몸무게와 맞먹는 소파를 집까지 질질 끌고 올 때 큰 고비가 왔지만, 그날 밤 모든 조립을 끝내고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대화로 해결했다. 4년간 만나고 6개월 가까이 같이 살면서 보지 못했던 같이 사는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본 것도 사실이다.


(또) 이케아에 가서 안방에 놓을 독서실 책상 같은 걸 샀다. 공부하러 방에 들어갈 땐 "나 독서실 다녀올게" 하고 들어간다.


집에서는 주로 한국에 들어가면 시험을 보려고 신청해 놓은 토플 공부와 어학원에서 왕창 내준 방학 숙제를 한다. 비행기표를 끊은 후부터는 성공적인 자가격리를 위해 한국에 있는 부모님과 전화로 미팅하느라 바쁘다. 혼자 있는 게 제일 안전하겠지만 2주 동안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고 생각하면 우리 집만 한 곳이 없다. 그래서 처음 자가격리 얘기가 나왔을 때도 나는 당연히 같이 사는 사람을 데리고 본가로 가려고 했다. 다리 뻗고 누울 방도 있고, 화장실도 별도로 쓸 수 있고, 무엇보다 정원이 있다. 


사실 덴마크에 오기 전까진 부모님이 정성스레 가꿔온 정원이 가치를 잘 몰랐다. 인스타용 사진 찍기 좋은 스팟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뭐만 하면 밖에 나가서 하자고 하고, 뭐만 먹으면 밖에 나가서 먹자는 아빠의 말이 귀찮기만 했는데. 이곳에 온 뒤로는 우리 엄마, 아빠가 본인들 인생에 있어 제일 성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모진 세월 일만 하면서 앞만 보며 살아온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다 계획이 있었다. 행복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주말에 숲에 다녀온 사진을 보내면 다음날 아빠는 더 많은 우리집 정원 사진을 보낸다.


깨달음의 계기는 한순간이라기보다 누적된 결과에 가깝다. 직접 보고 느끼고 또 들으면서 집을 보는 기준이 높아졌다. 다시 예전에 살았던 원룸 같은 곳에서 살 수 있겠냐 묻는다면, 살 수는 있겠지만 최후의 보루로 남기겠다 말하고 싶다. 곧 죽어도 서울에서 버티며 살아야 한다는 마음 가짐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거 같다. 나뿐만이 아니다. 대중교통이 워낙 엉망인 데다 자전거도 한계가 있어 "덴마크에서는 차가 있어야 돼"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같이 사는 사람도 학교 기숙사를 벗어나 이 집으로 이사를 온 뒤로는 "덴마크에서는 집이 제일 중요해"라는 말을 매일같이 한다. 한국에 있을 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집이 주는 에너지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사실 한국에 들어감과 동시에 시험도 시험이지만, 무수히 많은 고민과 선택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 지금 여기서 고민해봤자 답이 나오는 것도 대비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부딪혀야 하는 순간이 오면 제대로 부딪혀 보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남은 시간은 후회 없이 보내야 한다. 몸도 정신도 기초 체력이 탄탄해야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 법. 남은 두 달, 내가 사랑하는 이 공간에서 열심히 갈고닦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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