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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히 Dec 13. 2022

단발머리의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약 2년 전, 일하던 책방에서 언니에게 선물로 줄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무루 지음)를 구매한 적이 있다. 언니에게 주기 전 내가 먼저 읽어봤는데(?) 꽤나 인상 깊었던지 블로그에 '좋은 책을 읽으면 글이 쓰고 싶어 지고, 정말 좋은 책을 읽으면 독후감이 쓰고 싶어 진다'며 독후감을 썼다. 


20대 후반에 진입할 무렵부터 나이 듦이란 무엇인지 생각하며 주변에 가장 가까운 어른, 부모님부터 시작해 중장년층을 전보다 주의 깊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늙는 것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늙어야 하는가와 같은 책들을 장바구니에 많이 담아두기도 했다.


한국과 다른 환경에서 살며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귀여운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날 때면 흐뭇한 미소를 감출 수가 없다. 특히 하얗게 흰머리를 단발로 똑 자른 할머니나, 영화 '업'에 나오는 할아버지와 똑같은 생김새를 하고는 나에게 온화한 미소를 지으시는 할아버지를 만날 때면 사랑스러움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루는 카페에서 노트북을 하고 있었는데, 아주 가까운 옆 테이블에서 단짝 할머니 둘이서 와인을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똑같이 하얗게 흰 똑 단발을 하고는. 구석진 자리만 보면 몸이 먼저 반응하는 탓에 끝 테이블 자리가 나자 짐을 주섬주섬 챙겨 자리를 옮겼다. 어디선가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옆을 보니 옆 테이블 할머니들이 나를 보며 뭐라뭐라 말하고 계셨다. 덴마크어를 잘 못한다고 하니, '혹시 우리가 너무 시끄러워 자리를 옮긴 게 아닌지 우려된다'며 영어로 바꿔 말해주셨다. 나는 손이 안 보일 정도로 손사래를 치며 절대 그런 게 아니라고 했고 할머니들은 안심한 얼굴로 다시 대화로 돌아가 귀여운 머리를 하고는 귀엽게 와인잔을 부딪쳤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있었냐면, 기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흰머리에 중단발을 한 할머니가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이번에도 덴마크어를 잘 못한다고 하니, '털모자가 너무 예뻐서 그러는데 혹시 어디서 샀냐'며 영어로 바꿔 질문하셨다. 나는 또 손이 안 보일 정도로 흔들며 덴마크에서 산 게 아니라 한국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답했다. 과연 뜨개질의 나라에서 털모자 칭찬을 받다니. 북유럽이라는 단어에 압도당해 출국 직전 티몬에서 5천 원 주고 산 모자가 그 순간 그렇게 특별해 보일 수가 없었다. 할머니와 나는 기차 문이 열리자 좋은 하루 보내라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어렴풋이 떠올렸던  '멋진 할머니'의 모습이 조금씩 그려지고 있는 것 같다. 이쁜 외국인 아가씨가 한 액세서리를 보고는 어디서 샀냐고 영어로 물어볼 수 있는 할머니, 젊은이들과도 이질감 없이 어울리며 배려와 겸손을 잃지 않는 할머니가 '멋진 할머니' 리스트에 올라와있다. 물론, 세상엔 아름다운 면만 존재하지 않는 법. 이방인으로서의 설움을 가끔 마주하는 귀여움으로 달래며 살고 있다. 멋진 할머니에 귀여움까지 장착해야 하니 머리숱 관리도 소흘히하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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