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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희 Nov 02. 2024

구룡성채, "누가 홍콩영화의 자리를 대신하겠어?"

영화 <구룡성채 : 무법지대>를 보고

1989년의 구룡성채


본래 19세기 중반 ‘구룡촌’에 세워진 국경 요새였으나, 홍콩이 영국의 조차지가 된 뒤에도 청나라의 영토로 남겨진 땅. 홍콩 한가운데에 섬처럼 남은 이곳은 치외법권이 되었다. 바로 구룡성채의 이야기다.


신계가 개발되기 이전의 옛 홍콩에서 구룡반도 끝자락의 해안지역. 그곳에 자리한 중국, 영국, 홍콩 모두 애써 외면하는 삼불관(三不管)의 영역. 그저 국경의 요새이자 연락소였던 곳은 난민과 범죄조직들이 숨어드는 악명 높은 슬럼가가 되었고, 나아가 기괴한 모습으로 개증축을 거듭해 가며 무정부 도시의 아이콘이 되어간다. 반대로 그 시간 동안 구룡성채를 외면한 홍콩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다. 구룡성채는 홍콩의 그림자인 동시에, 그 자체로 홍콩의 역사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중국 반환을 앞두고 대대적인 철거작업 끝에 자취를 감춘 뒤, 구룡성채는 이제 어느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할 때나 겨우 소환되는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어렴풋한 도시전설로 남았던 이곳이, 철거 30년이 지난 2024년 영화로 선명하게 돌아왔다. 그렇다면 안 볼 수가 없지.


줄거리는 복잡한 듯 단순하다. 홍콩으로 밀항한 베트남 화교 찬록쿤(임봉). 그는 위조 신분증을 구하는 과정에서 과일도매상(을 빙자한 마약 밀매상)인 미스터 빅(홍금보)에게 속아 가진 돈을 모두 잃는다. 하지만 홧김에 미스터빅의 은신처에 쌓인 돈뭉치를 들고 도망친다는 것이 그만 마약뭉치를 집어든다. 그리고 자신을 쫓는 미스터 빅의 수하들을 피하다 우연히 구룡성채에 숨어든다. 그곳에서도 쫓겨나는가 싶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구룡성채에서 자리를 잡고, 그곳의 실질적인 운영자인 사이클론(고천락)을 아버지처럼 따르며 난생처음 편안한 일상을 보내던 찬록쿤. 하지만 그는 사실 구룡성채를 둘러싼 뿌리 깊은 갈등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인물이었고, 그 사실이 드러나면서 구룡성채 전체가 위기에 휘말린다.




"우리 세대의 일이잖아"

이 영화는 두 세대에 걸친 이야기이다. 시간순으로 보자면 두 세대에 ‘걸친’ 이야기지만, 영화적으로는 두 세대의 이야기가 서로 펀치를 날리듯 ‘교차로’ 진행된다. 조금 정돈해서 한 마디로 표현해 보자면.. 사이클론을 중심으로 한 구세대 4인방이 만들어낸 원한과 갈등 위에서 피어나는, 찬록쿤을 중심으로 한 신세대 4인방의 의리와 복수를 담은 작품이라고 하겠다.


재미있는 것은 각 세대의 주요 인물이 4명씩이라는 것이다. 영화에서도 언급되듯 4는 마작을 하기 위한 숫자이다. 선대의 마작은 사이클론(고천락), 추추(임현제), 타이거(황덕빈), 찬짐(곽부성)으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찬짐의 죽음으로 깨졌던 판은 미스터 빅이 끼어들면서 되살아난다. 그리고 후대의 마작판은 찬짐의 아들인 찬록쿤이 등장해 나머지 세 명의 후대와 우정을 쌓으면서부터 시작된다. 이렇게 영화 안에서는 두 개의 마작판이 돌고 돌면서 갈등을 증폭시켜 나간다.


이를 의식한 듯 영화의 후반부 사이클론은 “우리 세대의 일이잖아”라 말하며 복잡한 원한관계를 끊어내려 한다. 하지만 그가 목숨을 걸고 문까지 닫아걸면서 그 세대의 일로 갈무리하려 했던 과거는, 결국 또 다른 원한과 복수를 낳는다. 그리고 그가 길러낸 후대가 '뒤탈 없는 완전한' 복수를 이룩함으로써 비로소 끝을 맺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살아남은 네 명의 후대는 해가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홍콩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국 이것은 홍콩영화의 지금은 이미 기존의 세대가 아닌, 새로운 세대가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을 은유하는 것은 아닐까. 더불어 홍콩영화는 과거 선대의 마작판과는 다른 게임을 시작했음을 선언한 것은 아닐지.


이렇게 홍콩영화의 세대교체라는 틀로 바라보면 캐스팅도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캐릭터에 따라 당연히 배우도 신구세대로 양분되는데, 고만고만한 신세대에 비해 구세대의 레이어는 상당히 두텁다. 고천락에 임현제부터 시작해 곽부성을 찍고, 그보다 훨씬 윗세대인 홍금보에까지 다다른다. 오복성 시대부터 사대천왕, 나아가 원쿨의 시대까지 아우르는 라인업이다. 비록 그 과정에서 족보가 좀 꼬이기는 했지만 (사실 홍금보는 여기 낄 군번이 아님에도 까마득한 후배인 임현제에게 존대를 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어쨌든 두터운 선배 세대가 후배들이 제대로 놀 수 있는 판을 깔아주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성채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골칫거리야"

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사이클론이 성채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정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듯 저런 말을 한다. 그런데 나는 저 대사를 들었을 때 '어쩜 저 골칫덩이 같은 캐릭터들을 찰떡같이 캐스팅했을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수염 깎는 노인, 사이클론


선대의 중심인물인 사이클론을 연기한 고천락은, 영화를 보고 나니 그 외의 대안이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적역이었다. 비슷한 연배의 남자배우들을 대입해 봐도 고천락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본인이 그 자체로 하나의 (좋은 의미로) 구룡성채 같은 원쿨을 이끄는 수장이기도 하고, 끊임없이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설정이나 싱글이라는 점도 고천락 본체가 가진 아우라와 묘하게 어우러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내가 영화를 보기 전부터 알고 있던 몇 안 되는 사전정보 중 하나는 고천락이 연기한 사이클론이 장국영을 모델로 한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덕분에 처음에는 '장국영을 모티브로 한 인물에 고천락이라니?'하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 워낙 다른 선을 가진 배우들이라 장국영 - 사이클론 - 고천락이라는 연결고리가 별로 탄탄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어떤 부분에서 장국영을 모티브로 했는지도 수긍이 되고, 그것을 자기화한 고천락의 연기도 수긍이 되었다. 장국영의 팬인 나로서는 굉장히 새롭고도 즐거운, 그리고 감사한 경험이었다.


또 개인적으로 무척 인상적이었던 것은 고천락의 꼿꼿하되 묘하게 구부정한 노인 자세였다. 자세가 좋은 사람이 늙었을 때 나오는 바이브를 기가 막히게 잘 살려내서 감탄하며 보았다. 비슷한 자태를 영화 <매염방>에서도 살짝 본 것 같은데, 이 작품에서 완전히 꽃을 피운 느낌이다. 그리고 흰머리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심지어 잘 어울린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고천락의 데뷔 즈음을 실시간으로 보았기에 내 마음속의 그는 여전히 신세대에 가까운데 말이지.



전대를 찬 노인, 미스터 빅


반면에 진짜 노인이라고 할 수 있는 홍금보는 노익장이라는 표현을 우습게 뛰어넘은 무언가를 보여준다. 1952년생이니 일흔을 넘긴 나이임에도 그의 액션은 여전히 날카롭고도 묵직하다.


내가 어릴 때에는, 체구가 크면서도 몸이 날쌘 사람들을 ’날으는 돈까스‘라 부르곤 했다. 그 시절 내 눈에 비친 홍금보는 그 ’날으는 돈까스‘의 현신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가 여전히 녹슬지 않은 ‘날으는 돈까스’로 활약해 줘서 반갑고 또 기뻤다.


그리고 그가 출연한 작품은 국내에 꽤 많이 소개되었지만, 나에게는 영화 <오복성>에서의 첫인상이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있다. 멜빵바지에 더벅머리,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날렵한 액션을 보여주지만, 늘 조금씩은 손해를 보는 어수룩한 캐릭터. 거기에 한국식으로 발음하면 조금은 코믹한 홍금보라는 이름까지. 사실 그는 <오복성>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고, 수많은 작품의 무술감독을 맡아왔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속의 홍금보는 멜빵바지를 입은 더벅머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셈이 느린 더벅머리가 나이 든 악당이 된 것도 모자라 비열한 방식으로 구룡성채를 장악한 점령군이 되었다는 사실이 조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홍콩 사람들이 느꼈을 소회 역시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홍콩을 상징하는 구룡성채의 점령군이 그 누구보다 낯익고 정겨운 얼굴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잘 생각해 보면 영화의 모든 사건은 빅보스로부터 시작된다. 그가 찬록쿤에게 갔어야 할 싸움판의 판돈을 가로채지 않았다면, 추형에게 찬록쿤의 정체를 폭로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가 구룡성채를 욕심내지 않았더라면 영화는 제대로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빅보스가 모든 갈등의 시작점에 존재하는 교활하고도 낯익은 얼굴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역할은 그 누구보다 무게감 있고 연륜 있는 홍콩의 원로배우가 소화했어야 했을 것이다. 이걸 생각해 보면 아주 절묘하고도 적절한 캐스팅이다.



"광야지성" 장발버전 뮤비의 곽부성 + "금수지"와 "동성서취"의 양조위 = "구룡성채"의 오윤룡


그런가 하면 영화의 최종 보스 격인 킹을 연기한 오윤룡은 처음 보았을 때부터 '저 양조위와 곽부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같이 생긴 배우는 누굴까' 싶었다. 그런데 극이 진행될수록 이 생각은 더욱더 굳어졌다. "광야지성" 장발버전 뮤직비디오 속 곽부성에게 영화 <금수지> 양조위의 레트로 선글라스를 씌운 다음, 영화 <동성서취> 구양봉의 (정신 나간) 웃음소리로 화룡점정한 것 같은 캐릭터라니. 그래서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음에도 첫 등장부터 꽤 중요한 역할이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곽부성을 닮은 외모 덕분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곽부성의 아들 역에는 임봉보다는 오윤룡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정말로 오윤룡이 찬록쿤을 연기했다면 어땠을까. 분장을 지운 쌩얼굴을 보니 너무 선하고 순한 얼굴이라 어울리지 않았을 것 같기도, 덜 불쌍해 보일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궁금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에는 임봉이 곽부성을 별로 닮지 않은 데다, 연배 상으로도 다른 신세대 캐릭터들에 비해 연로해 보인다는 것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세대교체의 중간다리 역할을 임봉이 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다소 아쉬운 것은 다른 분들도 여러 번 지적한 것처럼 이름의 번역이 중구난방이라는 점이다. 영어, 북경어, 광둥어가 뒤섞인 이름은 그 의미와 이미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빅보스, 혹은 대(大)사장을 의미하는 大老闆(대로반) 홍금보는 ‘미스터 빅’으로, 유준겸이 연기한 信一(신일)은 북경어 발음을 따라 ‘신이’가 되었다. 산얏 혹은 신일이라는 이름이 원래의 의도처럼 더 강단 있어 보였을 텐데, 어쩐지 여자이름 같아서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런가 하면 四仔(사자)는 AV가 되었다. 광둥어로는 ‘세이자이’로 발음되는데 삼급편보다 더 야하다고 해서 붙은 은어라고 한다. 우리나라 식으로 하자면 '야동' 정도가 될 것 같다. 원작에서는 이 캐릭터의 이름이 AV인데 과거의 느낌을 주기 위해 영화에서는 세이자이로 바꿨다고 한다. 그런데 이걸 다시 AV로 원상복귀 시킨 것은 많이 아쉽다.

악당 王九(왕구) 역시 중국어에서 꽤 수위 높은 욕인 王八蛋(왕팔단)의 8에 하나를 더해 ‘왕바단보다 더한 나쁜 놈’을 의미한 게 아닐까 짐작되는데 (짐작뿐이지 사실과 다를 수 있지만) 그냥 킹이라고 번역해 버리니 그 촌스럽고도 짜친 악당같은 느낌이 사라져서 아까운 마음이 든다.




”누가 내 자리를 대신하겠어?”

<구룡성채>의 또 다른 재미는 우리가 익히 아는 홍콩영화의 흔적과 80년대의 홍콩이 영화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내 심금을 울렸던 그 시절 홍콩영화와 홍콩의 흔적들을 정리해 본다.


무엇보다도 액션신이 '이것이 바로 홍콩영화다' 외치는 것 같았다. 호쾌하면서도 언뜻언뜻 떠오르는 영화들이 많았다. 하지만 액션이 너무 길어서 나중에는 집중력이 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조금만 더 완급을 조절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홍금보가 선보이는 수제액션도 멋졌다. 아시다시피 홍금보의 액션에는 기합이 들어간다. 헛! 핫! 으앗! 박자에 맞춰 추임새처럼 기합이 들어가는데, 이제는 아무도 넣지 않는 올드스타일의 기합을 들으니 무척 반가웠다. 그 특유의 기합을 따라 하던 어린이가 중년이 되는 세월을 건너오면서도 여전한 그의 액션에 경의를 보낸다.


그런가 하면 극 초반 마약이 든 꾸러미를 든 찬록쿤이 왕구 일당에게 쫓기다 2층 버스에서 격투가 벌어지는 장면은 성룡의 <폴리스스토리>가 연상됐다. 성룡 쪽이 코믹액션이라면 <구룡성채>는 감독의 컬러가 입혀진 진지하면서도 꽤 과격한 액션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여담이지만 이 장면에 등장한 버스는 86년식 데니스 드래곤이라고 한다. 영화의 배경인 1984년과 시기는 다소 맞지 않지만, 영국의 자동차 회사인 데니스 사가 오직 홍콩만을 위해 제작한 데니스 드래곤 시리즈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오래 운행한 버전이라고 한다. 덕분에 홍콩사람들은 저 버스만 보고도 향수에 젖지 않았을까.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앙숙지간인 조직의 소속임에도 절친한 사이인 찬짐과 사이클론. 두 사람은 둘만 남은 마지막 결투에서 차마 서로를 해치지 못하다가 눈을 가리고 싸우기로 한다. 이 장면에서는 왠지 <첩혈쌍웅>이 생각났다. 안대로 눈을 가리면서 서로에게 자신이 떠난 뒤를 부탁하는 찬짐과 사이클론의 모습은, 80년대 <첩혈쌍웅>적 감성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서로가 적이 분명함에도 깊은 우정을 나누는 사나이들과, 그들의 지독할 정도로 낭만적인 우정. 익숙한 홍콩영화의 맛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반면에 여성 캐릭터의 수난은 여전했다. 신세대 4인방이 친해지게 되는 계기는 정말 '구렸다'. 사나이들의 우정도 그대로지만, 그 대단한 우정에 여자를 이용하는 패턴 역시 그대로였다. 여성 캐릭터를 이용하고 내다 버리는 대목에선 익숙한 분노와 짜증을 느끼기도 했다. 기둥서방의 뜬금없고도 잔인한 폭력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와 그 과정을 여과 없이 지켜보며 혼자 남겨진 어린 딸. 과거 배경의 영화라 설정도 진부한가 싶은 마음마저 든다. "감히 여자를 때려?"라는 대사는 극 중 기둥서방이 아니라 이 영화 자체가 들어야 할 말이 아니었을지. 이럴 거면 차라리 여성캐릭터의 존재를 없애버리는 게 맞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홍콩영화를 이끄는 차세대 여성배우 중 하나인 요자여의 분량이나 역할도 아쉽기 그지없다. 홍콩영화의 세대교체를 은유하는 작품이라 이런 아쉬움은 더하다.


극 후반에 홀로 왕구와 맞서는 찬록쿤 앞에 신이, 십이소, 세이자이가 나타난 장면에서는 어쩐지 <동방삼협>이 떠올랐고, 왕구에게 몰려 난간에 쓰러져있던 찬록쿤이 '사이클론'에 실려 천막을 타고 다시 옥상으로 비상하는 모습은 홍콩영화 특유의 '뻥'이 여기서도 나오는구나 싶어서 혼자 피식 웃었다.

그리고 마침내 왕구를 쓰러뜨리고 최후의 일격만이 남았을 때, 찬록쿤이 신이에게 칼을 건네는 장면에서는 <영웅본색>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형 송자호가 악당 아성을 직접 처단할 수 있도록 총을 건네던 송자걸의 모습이. 두 번을 보았는데 볼 때마다 다른 영화가 떠오르는 걸 보면, 아직도 숨은 그림은 더 많이 남아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무척 기대했던 것은 극 중에 장국영의 히트곡 Monica가 등장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고천락이 이 노래를 부르는 줄 알고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부르는 걸까 무척 궁금했었는데, 알고 보니 자의식 폭발 직전의 왕구가 가라오케로 부른 거였다. 게다가 "누가 당신의 자리를 대신하겠어?"라는 그 유명한 가사를 "누가 내 자리를 대신하겠어?"라고 대체한 대목에선 실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영화를 두 번째 보면서 이 노래를 다시 듣는데 문득, 이 노래가 "누가 홍콩영화를 대신하겠느냐"는 말로 들렸다. 감독은 별 뜻 없이 넣었을 수도 있지만, 나는 이 가사가 <구룡성채>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홍콩영화가 건재하다는 것을 한 줄로 요약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홍콩영화가 아니면 누가 이런 재미를 이렇게 말아주겠는가.



여담.

글에도 썼듯 영화를 두 번 보았는데, 두 번째는 엄마와 함께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엄마가 의외의 말을 했다. "오토바이 타는 애, 눈매가 장국영 닮았더라?"

나는 유준겸과 장국영이 그렇게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영화 <매염방>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엄마가 대듬 저런 말을 해서 의외였다. 아무래도 닮긴 닮았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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