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햇 Feb 15. 2024

힘든 나날들 속 힘이 되는 순간


  지난 학기를 되돌아보건대 학기 6주 차 이맘때쯤이 희한하게 가장 힘든 시기였 것 같다. 업무 로딩이 많아서 체력적으로 부담이 크고 힘들다. 퇴근하고 나면 혼이 나갈 것 같다. 개중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신적으로는 아직 여력이 있어서 번아웃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학기에 비해서 정신적으로 한결 편안하고 긴장도가 낮은 덕분에 아직은 여유가 있다.



 무엇보다 욕심을 덜고 스스로 쉼에 대해 너그러워지니, 번아웃 예방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 또 소소하고 짧게나마 기분 좋은 시간을 가지는 것도 한몫했다. 이번 학기는 일과 쉼의 균형을 잡는 법을 조금 더 습득해가고 있는 듯하다. 열일하는 나날과 쉼으로써 균형을 맞추는 일상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먼저, 열일의 현장이다.


   지난번 포스팅에 온통 흐려서 우울하다고 하소연을 했더니, 마법처럼 맑은 날들이 찾아왔다. 볕이 제일 잘 드는 창가로 가서 온몸으로 햇살을 맞으며 공부했다. 보이진 않지만 비타민 D가 합성되는 기분이랄까? 몸도 폼폼-하니 따뜻하고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단과대 건물에서 가장 좋아하는 테라스 공부 스팟이다. 광합성 파워로 과제를 후다닥 해치웠다.



   이곳은 학과에서 배정받은 개인 자리다. 볕이라곤 없어서 좋아라하지는 않지만, 안정적으로 머무를 베이스캠프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공강 시간이나 심리 상담 사이 시간이 뜰 때 주로 애용한다. 이날은 슈퍼비전과 심리 상담 사이 공강이 3시간이나 되어 자리에서 점심도 먹고, 랩 업무도 보고, 과제도 하나 제출하고 나름 생산적으로 보냈다. 오고 가는 동료들과 교수님들과 인사도 하고 안면도 틀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오픈되어 있어 부담스럽기도 하다.




   학과 내에 연구 대가인 교수님들끼리 Writing Group을 일주일에 3시간씩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거다!' 싶어서 동기들과 Writing Group을 조직했다. 중앙 도서관에서 다 같이 모여서 오직 글쓰기만 집중하는 시간을 따로 만들었다. 확실히 도움이 많이 된다. 의무와 지켜보는 눈이 있어야만 하게 되는 심리를 이용해 보았다. 위 사진처럼, 마침 금요일마다 도서관에서 다과와 커피, 피자도 주는 터라 가난한 대학원생들이 Writing Group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빼곡한 서가가 도서관의 분위기를 더해준다. 이날은 할 게 유난히 많아서 친구들 오기 전에 조금 일찍 가서 혼자 시작했던 날이다. 시간을 반씩 나눠 논문 리비전과 2년차 소논문 준비에 썼다. 연구 관련 글쓰기에만 매진할 시간을 만드니 확실히 논문에 시간을 더 할애하게 되었다. 혼자서 '나중에 해야겠다'라고 미루던 것들을 많이 해결해서 뿌듯한 시간이었다.




   이곳은 학부생을 가르치는 수업 강의실이다. 수업 무난히 잘 마치고 한 컷, 아이들 영상 자료 시청하는 동안 또 한 컷을 남겨보았다. 이제 티칭도 많이 익숙해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아서 임기응변도 늘었다. 아이들도 안정감을 느끼는지 참여도 많이 해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나름 잘 진행해나가고 있다. 학기 말까지 무탈하게 잘 가기만을 바란다.




   이번엔 수업을 '듣는' 강의실이다. 아무도 오지 않은 틈을 타서 한 컷! 대학원 수업은 대부분 6명 정도 소규모 세미나 식으로 진행된다. 그 말인즉슨 발표나 토론 참여의 지분이 커진다는 의미다. 식은땀을 흘리며 교수님이 쏟아내는 질문에 머리를 쥐어짜며 대답을 해 본다. 참여 지분이 높은 것은 부담이 되지만 개인적으로 소규모 수업이 더 아늑하고 재미있다. 규모가 커지면 오히려 대답하기가 떨린다.

 




  또다시 공간 이동! 이곳은 심리 상담 센터로 학기 중에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상담실과 기타 내부는 촬영이 불가능해서 스태프들이 미팅을 하는 회의실 밖에 못 담았다. 발렌타인데이 주간을 맞이해서 한 친구가 꽃을 나누어 주었다. 예뻐서 한 컷 남겨보았다. 꽃 한 송이에 기분이 괜스레 좋아지는 하루였다.


  모아서 정리해 보니 아등바등 바쁘게 열심히도 산다. 하루에도 학생 - 강사 - 상담사 - 연구자 역할이 몇 번씩 휙휙 바뀌고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다니다 보면 진이 다 빠진다. 이번에는 바쁘고 힘든 나날들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순간들을 담아보려고 한다.






   외식의 향연이다. 점심은 싸간 음식으로 간단히 먹고, 저녁은 주로 사 먹는다. 요새 지지집단을 하면서 집단원들이랑 같이 일일 감사노트를 쓴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치열한 하루 일과 끝에 파김치 된 채로 남편이랑 푸념을 공유하며 스트레스 풀고, 남이 해준 밥을 먹을 수 있는 저녁 시간의 소중함이었다. 잠시 멈춰서 둘러보면 당연한 일상 안에 새삼스럽게 감사한 것들이 스며들어 있다.





    혼자 쉬는 시간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나나 투어 보면서 전기장판 틀고 아이스크림 퍼먹는 시간이다. 너무 행복하다. 세븐틴은 보기만 해도 유쾌하고, 상큼하고, 기분전환이 되는지, 정말 비타민 같은 아이돌이다. 예쁜 것들. 나나 투어에서 반해서 자체 유뷰트 콘텐츠인 고잉 세븐틴으로까지 넘어갔다. 즈그들끼리 잘 노는 게 그렇게 웃기고 힐링 된다. 정신을 환기하는데 제일 좋아하는 콘텐츠다.




  곧 다가올 봄방학에 여행 갈 돈을 모으느라고 재정이 조금 타이트해졌다.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샐러드나 볶음밥 같은 것을 왕창 해놓고 조금씩 싸와서 먹고 있다. 커피와 점심, 간식을 싸오니 확실히 생활비가 절감된다. 기분 좋게 볕 잘 드는 테라스 자리를 차지하고 점심을 까먹었다.  




   같은 과에 유일무이한 한국인 동지가 있는데, 간식 요정이다. 한국 간식을 계속 두고 가서 웃겨 죽겠다. 어디서 이렇게 골고루 잘 사 먹는지, 참 고마운 일이다. 안 그래도 요즘 떡이 부쩍 먹고 싶었는데 팥이 들어있는 진짜 맛있는 떡을 하트와 함께 주고 가서 행복했다. 크흡....... 삶도 팍팍한데 이런 정이 있는 게 어딘가 싶다.




   힘들어 죽겠는 주 겨우 버티고 맞이한 주말. 밥 중에 제일 맛있다는 남이 해주는 밥이다. 옆집에 밥 잘해주는 친구가 살아서 진짜 복이다. 아는 사람 중에 제일로 부지런한 사람이다. 뜨끈한 해물칼국수에 육전과 김치를 해먹으니 속이 든든하고 따뜻해서 집에 와서 공부를 못했다는 후문이다(?). 동기들이 전부 미국인이지라, 때로 한국인 친구랑 익숙한 음식 먹으며 우리 말로 수다 떨고 노는 시간이 그렇게 편하고 소중할 수가 없다.







   요새 쨍한 날씨가 너무 좋아서 캠퍼스를 구석구석 눈에 담아보았다. 10분, 20분이라도 시간 틈이 나면 캠퍼스를 좀 걸어 다니면서 머리도 비우고, 기분도 환기하려고 한다. 요즘 같은 봄 날씨에 오후에 한 바퀴 돌고 오면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진다. 한적한 시골 캠퍼스가 주는 특권이다.




   원래는 주에 한 번은 테니스를 열심히 쳤는데, 코트 대관이 어려워지면서 운동을 통 못했다. 하여, 큰맘 먹고 남편과 같이 운동을 하러 갔다. 여전히 운동습관 들이기는 잘 안되고 있다. 체력도 계속해서 보강해야 하는데 그냥 귀찮다. 누워있는 것이 제일 좋다. 그렇지만 앞으로 아침에 조금 더 부지런을 떨어서 근력 운동을 더 해보려고 한다. 힘들기로 악명 높은 천국의 계단을 오르며 한 컷 남겨보았다.




  또 다른 친구가 발렌타인데이라고 장미꽃을 나누어 주었다. 하여튼 이벤트쟁이 미국 친구들 덕분에 무료하고 바쁘기만 한 일상이 다채롭고 유쾌해진다. 덕분에 하루 종일 향긋한 생화를 보며 기분 좋게 보냈다. 각박한 일상 속에 이런 소소한 즐거움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유난히 봄 날씨 같았던 날. 근래 지출 절감을 위해 늘 집에서 싸가느라고 다 식고 풍미도 빠진 커피만 마셨더니, 어느 날 정-말 맛있는 커피 한 모금이 간절했던 날이 있었다. 날씨도 좋아서 잠깐 짬을 내어 산책 겸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한 잔 사 왔다. 하늘 파랗고, 날씨 포근하고, 갓 내린 커피에서 향이 폴폴 올라오니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역시 치료 중에 제일은 금융치료다(?).






    해가  조금씩 길어져 출근길과 퇴근길이 비슷비슷하게 느껴진다. 첫 번째 사진은 비몽사몽 출근길, 두 번째 사진은 기진맥진 퇴근길이다. 치열한 나날들과 힘이 되는 순간들을 모두 기록해 보았다. 한 번씩 멈춰 서서 일상을 돌아보며 글을 쓰는 시간이 소중하다. 열심히 살았구나 토닥여본다.


앞으로도 학기가 끝나기까지 남은 일정이 무궁무진하지만, 앞으로도 소소하게 즐거운 시간들을 희생하지 말고 균형 있게 잘 나아가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살이의 단면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