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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gie Woogie Jan 26. 2021

재즈의 순간:
마일스 데이비스의 마라톤 세션

재즈의 역사를 파헤치다 보면 마일스 데이비스라는 이름과 친숙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재즈의 변곡점마다 그 중심에 서있던 인물일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해프닝들에서도 마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 중, 1956년에 있었던 마라톤 세션은 마일스 데이비스가 족적을 남긴 재즈 역사의 순간 중 하나이다. 

재즈의 변곡점마다 주인공 역할을 한 마일스 데이비스

마라톤 세션 

거장 찰리 파커 옆의 애송이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처음 알린 지 10년 후인 1955년, 마일스 데이비스는 찰리 파커만큼은 아닐지라도, 이미 자타 공인 재즈계의 거장으로 인식되었다. 때문에 콜럼비아 레코드는 그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했고, 마일스 데이비스는 당시 최첨단을 달리던 콜럼비아 사의 녹음 환경을 보고 계약을 결심했다. 하지만 당시, 프레스티지 사와의 계약에는 아직 네 장의 앨범이 남아 있었고, 이를 이행하기 전에 콜럼비아 사와의 제안을 수락한 것은 이중 계약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결하기 위해, 마일스 데이비스는 네 장의 앨범에 나눠서 수록될 25곡의 곡을 재빠르게 녹음하기로 결정한다.


총 25곡의 곡들이 하룻밤 사이에 녹음되어서 마라톤 세션이라 불린다는 다소 과장된 정보가 국내나 해외에 사실로 둔갑해서 돌곤 한다. 실제로는 마일스  데이비스와 그의 퀸텟은 1956년 5월 11일과 11월 26일, 다섯 달의 간격을 두고 이틀에 걸쳐 앨범들을 완성했다. 과장된 소문들보다는 실망스럽더라도 마일스 데이비스가 프레스티지 사에서 녹음한 마지막 네 장의 앨범들은 여전히 '마라톤'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놀라운 성과이다. 해당 레코딩 세션은 모두 원테이크(One-take)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보통 앨범 제작 과정에서 연주자들은 여러 번의 테이크에 걸쳐 녹음을 하게 된다. 연주 과정에서 실수를 했을 수도 있고, 큰 실수가 없더라도 첫 번째 시도만에 모두가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은 25곡을 모두 단 한 번 만에 아무런 실수 없이,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는 데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틀 동안 25곡을 연주해야만 한다는 부담감 속에서도 말이다. 


마라톤 세션으로 녹음된 작품들은 각각 <Cookin'>, <Relaxin'>, <Workin'>, 그리고 <Steamin'>이라는 앨범들에 나눠 수록되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네 장의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25곡이 아니라, 총 24곡이다. 누락된 한 곡은 Round about Midnight으로 상업적으로 가치가 없거나,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고, <Miles Davis and The Modern Giants>에 수록되었다. 그 중, 1957년 6월, 가장 먼저 발매된 <Cookin'>은 4연작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으로 꼭 소개하고 싶다.





Cookin'

앨범의 제목에 대한 질문에 대한 마일스 데이비스의 대답은 하얀 배경에 트럼페터의 윤곽을 그려낸 앨범 아트만큼이나 거칠고 간결하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결국에는 그게 우리가 한 일이거든 - 와서 조리해버린 거지.("After all, that is what we did - came in and cooked.") 조리해버렸다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다소 추상적인 표현은 앨범을 듣는 순간 구체적으로 와닿을 것이다. 총 다섯 개의 수록곡을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은 자신들만의 향으로 조리했다. 


A 면의 첫 곡인 My Funny Valentine은 많은 재즈 연주자들에 의해 연주되었지만 개인적으로 이 앨범의 버전을 가장 좋아한다. 곡을 여는 청아한 피아노의 선율만으로는 과연 이 곡이 쳇 베이커가 부른 음울하고도 애절한 그 My Funny Valentine 인지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래드 갤런드의 피아노 인트로를 뒤따르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뮤트 트럼펫 소리는 곧바로 곡을 애처로운 발라드로 되돌려 놓는다. 이후로도 마일스 데이비스를 포함한 다른 연주자들은 솔로를 마이너 키로 연주하지만 유독 피아노 솔로는 메이저 키로 연주된다. 래드 갤런드의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선명한 대조적 분위기는 곡에 매력을 불어 넣는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뮤트 트럼펫 소리는 일품이다.

Blues by Five는 마일스 데이비스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연주를 잘 보여준다. Airegin은 B 면의 첫 곡으로 '마일스 데이비스스러운' A 면과는 사뭇 다른 향취를 풍긴다. Airegin은 나이지리아의 스펠링을 반대로 나열한 제목을 가지고 있는 곡인데, 아프리카를 주제로 한 또 다른 곡인 A Night in Tunisia와 그 주제 말고도 유사점이 많다. Airegin에서 마일스 데이비스의 연주는 A Night in Tunisia에서 디지 길레스피처럼 비밥 특유의 빠른 템포와 고음에 중점을 두고 있다. 


B 면의 다음 곡은 특이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Tune Up/When Lights are Low라는 두 곡명이 병치되어 있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겠지만, 한 트랙에 서로 다른 두 곡이 들어있다. 그렇다고 해서 두 곡이 같은 곡은 아니고, Tune Up이 끝나자마자 When Lights are Low가 재생된다. 왜 이런 구성을 취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아마 B 면에 Airegin과 Tune Up 만으로 앨범을 발매하기에는 분량이 부족해서 적당한 길이의 곡을 붙여 넣은 것이 아닐까?) 두 곡의 성향이 극과 극이기 때문이다. Tune Up은 워킹 베이스가 아니라 러닝 베이스(Runnning Bass)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빠른 템포와 잦은 코드 진행이 이루어지는 하드밥의 정수를 담고 있는 곡이다. 그에 비해, When Lights are Low는 차분하고 '쿨'한 분위기의 곡이다. 차라리 Blues by Five와 함께 연달아 수록되었다면 어울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수십 년 동안 있었던 재즈의 변곡점들에서 매번 선도자로서의 역할을 주도했다. 많은 재즈 리스너들이 역사적인 앨범인 <Birth of the Cool>,<Kind of Blue>, <Bitches Brew> 등을 마일스 데이비스의 최고작으로 뽑겠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Cookin'>을 가장 자주 듣는다. 물론 앨범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하드밥과 쿨재즈라는 양 극단을 넘나드는 구성은 리스너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매끄럽지는 않다. 하지만 앨범 아트 속 트럼페터를 표현한 윤곽선과 같이 거칠고 단순한 편집과 선곡은 서투르게 느껴진다기보다는 오히려 일종의 압도적인 자신감으로 다가올 뿐이다. 어찌 되었든, 단 한 장의 앨범에서 젊은 마일스 데이비스의 두 모습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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