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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gie Woogie Jan 29. 2021

재즈의 순간: 바흐의 악기로 펑크를 탄생시키다

오르간과 지미 스미스의 <The Sermon!>  (1959)

대중음악이 클래식 음악의 순수한 연장선으로 발전했다 상상해본다. 우리는 지금 드럼과 베이스가 만들어 준 신나는 리듬감을 믿고 자신 있게 치고 나오는 기타 소리보다는 질서 정연한 박자 위에서 울리는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의 선율을 듣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흑인 음악이 있었기에, 음악의 역사는 달라졌다. 흑인 음악인 블루스와 재즈는 클래식 음악과 결합해 형태, 박자감, 코드, 그리고 사용되는 음까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블루스와 재즈가 아니었더라면, 오늘날의 음악은 어땠을까?


대중음악사가 오늘 글의 주제는 아니기에, 지나친 요약과 과장을 섞는다면, 대중음악은 서양의 클래식 음악과 미국 흑인 음악의 결합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요약과 과장을 한 숟갈씩 더 뜬다면, 오늘날의 대중음악은 서양의 악기로 미국 흑인들의 음악을 연주한 것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지미 스미스의 <The Sermon>의 경우에는 그 말이 들어맞는 것 같다.




오르간, 신성한 악기가 신나는 악기가 되다

바흐는 작곡가이기 이전에 오르간 연주자이다.

오르간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성당의 전면을 꽉 채운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을 생각할 수도, 혹자는 초등학교 교실 뒤편에 있던 낡은 풍금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오르간과 가장 많이 연관 지어지는 음악가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다. 바흐는 수많은 오르간 연주곡을 많이 남겼으며, 생전에는 독일 전역의 교회들에 있는 오르간을 조율하는 역할을 도맡아 하기도 했다. 바흐에게 오르간은 단순히 그와 유년 시절부터 함께한 악기라는 것 이외에도 큰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평생을 오르간에 바쳤다.


" 라틴 교회에서 파이프 오르간은 전통적인 악기로서 크게 존중되어야 한다. 그 음향은 교회 의전에 놀라운 광채를 더하고, 마음을 하느님께 드높이 힘차게 들어 올릴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악기들은, 제22항 2)와 제37항과 제40항의 규범대로 관할 지역 권위의 판단과 동의에 따라, 거룩한 용도에 적합하거나 적합해질 수 있고, 성전의 품위에 알맞고, 참으로 신자들의 교화에 도움이 된다면, 하느님 예배에 받아들일 수 있다. "

-"전례현장 120", 제 2회 바티칸 공의회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있었던 제2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 중에는 악기와 신성함에 대한 논의를 찾아볼 수 있다. 전례헌장 120은 파이프 오르간만을 전통적인 신성한 악기로 내세우고, 교회 음악에서 그 이외의 악기에 대한 사용은 조건부로 허용한다. 1960년도에 열린 논의가 이러할진대, 바흐가 살던 종교의 시대에는 오르간의 위상을 가늠하기도 힘들 정도이다. 물론 바흐는 가톨릭 신자가 아닌, 개신교 신자였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오르간에 대한 탐구에 전념한 것으로 보인다. 초기 개신교는 루터의 개혁 의식에 따라 가톨릭에 비해서 소박하게 의전을 치렀지만, 훌륭한 작곡가이기도 했던 마틴 루터는 음악의 중요성만은 끊임없이 강조했다. 바흐는 오르간이 "교회 의전에 놀라운 광채를 더하고, 마음을 하나님께 드높이 힘차게 들어 올릴 수" 있는 성스러운 악기임을 인지했고, 따라서 개신교의 성음악을 더 오랜 역사를 가진 가톨릭의 그것과 경쟁하는 데에 오르간을 사용했다.


"Light My Fire"에서 레이 만자렉의 오르간 소리는 몽환적이다.

이렇듯, 오르간은 역사적으로 성스러운 악기였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 오르간을 가장 애용하는 장르는 락과 펑크이다. 특히 오르간이 사이키델릭 락에서 가장 애용되는 것은 음악사의 아이러니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더 도어스의 "Light My Fire"를 들어보자. 해당 곡에서 더 도어스의 키보디스트, 레이 만자렉의 오르간 연주는 우리의 영혼을 몽환적인 종교적 체험으로 이끈다. 비록 바티칸이 원하는 방향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전자 오르간의 베스트셀러인 해먼드 오르간 B3

현대에 쓰이는 오르간은 엄밀히 말하자면, 바흐의 오르간과는 다른 악기이다. 파이프 오르간은 거대한 크기와 천문학적인 가격 때문에 가톨릭과 개신교 양측에서 맡고 있는 중요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당장 수많은 성당과 교회가 있는 국내에만 해도, 파이프 오르간이 100여 대 정도밖에 없는 것으로 파악되니 말이다. 악기 개발자 로렌스 해먼드는 더 저렴한 가격에 오르간을 보급하기 위해 '전자 오르간'을 개발하고 자신의 성을 붙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해먼드 오르간은 파이프 오르간의 저렴한 대용품으로 미국 교회 등지에 팔려 나갔다. 재즈 연주자들이 해먼드 오르간에서 피아노의 대용품으로서의 가능성을 보기 시작한 것은 아마 흑인 교회들에서 해먼드 오르간을 가스펠 반주용으로 사용한 것을 듣고서일 것이다. 그리고 지미 스미스가 <The Sermon!>을 이후로 세간의 오르간에 대한 인식은 신성한 악기가 아니라, 신나는 악기로 바뀌게 되었다.



신나는 설교! 펑크를 탄생시키다

<The Sermon!> (1959) - Jimmy Smith

재즈 오르간 연주자, 지미 스미스의 앨범, <The Sermon!>은 설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왜 <The Sermon>이 아니고, <The Sermon!>일까? 제목의 느낌표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무언가 열정적으로 설파하는 목사를 연상시키는 앨범 커버 속 지미 스미스를 보면, 느낌표의 의미는 종교적 열정을 담은 강조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앨범을 들어보면, 그 느낌표는 흥(興)의 표현임이 확실하다.


이 세 앨범 모두 1959년에 발매되었다.

지미 스미스의 <The Sermon!>은 1959년에 발매되었다. 1959년은 재즈의 역사에서 수많은 걸출한 앨범이 탄생한 해이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Kind of Blue>를, 찰스 밍거스는 <Mingus Ah Um>을, 그리고 오넷 콜먼은 <The Shape of Jazz to Come>을 세상에 내놓았다. 각자의 개성이 독특한 세 앨범들은 모두 기존의 하드밥에서 벗어났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950년대 말, 많은 재즈 연주자들은 하드밥은 이미 장르로서의 최정점을 찍었고, 그 어법 내에서 더 이상의 모험은 힘들다고 생각했다. 연주자들은 하드밥의 대체재를 모색했고, 그 사유의 결과물들이 가지처럼 각자의 방향으로 뻗어나간 것이 1959년의 재즈계였다. 지미 스미스의 <The Sermon!>은 위의 세 작품만큼 과격하진 않더라도, 하드밥을 대체하고자 하는 시도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지미 스미스의 노력은 어쩌면 저 세 작품보다도 음악계에 큰 변화의 돌풍을 불어왔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지미 스미스는 저물어가는 하드밥에 대해 '소울'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숨넘어갈 듯이 빠른 박자와 코드 진행은 하드밥의 매력이자 단점이었다. 하드밥은 재즈 연주자들이 자신들의 음악에 대한 이해도와 악기의 숙련도를 자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지만, 동시에 대중들에게는 기교로 가득 찬 난해한 장르로 변화하고 있었다. 지미 스미스는 하드밥 시대의 연주자와 대중과의 거리감을 '소울'로서 해결하고자 했다. 이렇듯, '소울 재즈'는 일종의 대중친화적이자 복고적 운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 소울은 초기 흑인 음악인 영가와 블루스에서 느낄 수 있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흑인 영가와 블루스 모두 흑인 노예들의 시련을 표현해내는 곡들이니,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恨)과 유사한 개념이지 않나 싶다. 그러니 우리가 그들 고유의 감정을 어찌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The Sermon!>을 듣다 보면, 소울을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그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는 있다. 앨범의 타이틀곡인 "The Sermon"은 20분의 방대한 곡이지만 장황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교인이 아닌지라, 피상적으로 상상할 수밖에 없지만, 순서대로 연주되는 솔로들은 체계적인 종교행사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목소리부터 신도들을 압도하는 지미 스미스 목사, 자신의 솔로를 끝마치고, 화려한 라인업의 간증인들을 한 명씩 소개한다. 지미 스미스의 해먼드 오르간의 페달을 이용한 베이스와 아트 블레키의 드럼을 믿고 기타의 케니 뷰렐, 테너 색소폰의 티나 브룩스, 트럼펫의 리 모건, 그리고 알토 색소폰의 루 도널드슨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솔로를 내보인다.


4:30, 6:30분에 알람 같은 소리에 주목하자.

두 번째 곡 "J.O.S.", 지미 (오스카) 스미스, 자신의 이니셜을 제목으로 붙인 곡으로 열정적인 하드밥의 색채를 느낄 수 있다. "The Sermon"과는 리 모건을 제외하고는 다른 연주자들이 등장한다. 리 모건은 이 곡이 녹음된 1957년 당시 20살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었는데도, 전혀 꿀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린 트럼페터의 자신감은 넘쳐흐르고 있다. 곡에서 두 번 등장(4:30분과 6:30분)하는 경보음 같은 소리는 연주자들이기 이제 그만 솔로를 마치라고 지미 스미스가 지시하는 소리인데, 이 소리를 듣고 자신에게 바통을 바로 넘겨준 알토 색소폰의 조지 콜먼과 달리 리 모건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연주한다. 다급해진 지미 스미스가 네 번이나 신호를 주는데도 무시하고 분량 욕심을 포기하지 않는 리 모건의 패기가 웃음을 짓게 한다. 너무나도 인간미가 넘치는 부분이다. 이때의 일 때문인지, 앨범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곡인 "Flamingo"에서, 1년 만에 리 모건과 재회한 지미 스미스는 리 모건이 자신의 역량을 마음대로 보여줄 수 있도록 한 발자국 멀리서 그를 지원할 뿐이다. 그 결과물은 "J.O.S."와 상반된 분위기의 차분한 발라드이다.


지미 스미스의 연주는 혁신이었다.

워낙 리 모건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보니, 정작 지미 스미스의 연주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 지미 스미스가 보여준 오르간 연주는 그야말로 혁신적인 것이었다. 앨범의 연주자 리스트를 보면, 무언가 다른 점을 느낄 것이다. 베이시스트가 없다. 이는 지미 스미스가 해먼드 오르간으로 베이스를 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먼드 오르간은 페달을 밟으며 저음을 연주할 수 있는데, 앨범 내내 그는 손발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테크닉 이외에도 지미 스미스의 오르간에 대한 이해도를 볼 수 있다. 지미 스미스는 오르간만의 매력인 무한한 서스테인(음이 지속되는 정도)을 호기롭게 포기하고 박자를 자유자재로 타면서 건반을 짧게 긁어댄다. 이러한 박자감은 해먼드 오르간의 꽁꽁 대는 음색과 울부짖는 듯한 고음과 합쳐져, 음악사의 한 획을 긋는다. 그것은 바로 펑크(Funk)의 탄생이다.


"This cat is the eighth wonder of the world."
이 놈은 8번째 세계 불가사의요.

- 마일스 데이비스, 지미 스미스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대답하며


펑크는 흑인 특유의 체취를 뜻하는 비하적인 단어였지만, 재즈에서는 강렬한 소울과도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었다. <The Sermon!>에서 지미 스미스가 보여준 펑크적(Funky)인 박자감과 음색은 놀라운 것이었다. 때문에 블루스와 락 밴드들은 그의 연주를 따라 했고, 해먼드 오르간을 도입하기도 했다. 지미 스미스의 신나는 박자감과 음색만을 따서, 즐기기 쉬운 장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펑크의 탄생이다. 펑크가 1960년대부터 황금기인 70년대를 지나, 지금까지 대중음악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 보면, 이것은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악기가 만들어 낸 효과라 믿기 힘들 만큼 실로 놀라운 업적이다. 사실 지미 스미스의 혁신적인 오르간 운용을 들으면 바흐 같은 거장도 놀라지 않았을까. 일단 거장 마일스 데이비스는 지미 스미스를 보고 크게 놀랐다. 그는 그를 두고 "8번째 세계 불가사의"라고까지 추켜세웠다. 하지만 지미 스미스라는 거인의 연주와 그가 남긴 족적을 보면 너무 심한 과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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