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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만복 Aug 04. 2022

님아, 비겁한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김훈,『공무도하』

과연 누가 더 비겁한 사람일까


세상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깨끗하지 않은 공간에서도 결국 피어나기 때문이다. 뇌물 주고. 뇌물 받고. 때리고. 죽이고. 강탈하고. 이렇게 깨끗하지 못한 것들 속에서도 매일 아침, 새로운 세상이 찾아온다. 그러나 괜찮다. 이것은 '우리'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이야기니까. 이 비겁한 일과 우리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 그러나 <공무도하>를 읽고 이 생각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결코 이 비겁한 일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우리는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너고 있다는 것을.


사실 우리는 많은 사건에 영향을 주고 있다. 때때로 직접적으로 사건을 발생시키기도 하고, 또는 이미 발생된 사건과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면서도,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에 비하면 별것 아니라고 책임을 회피하기도 한다. '비겁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다. 세상에 비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책임과 용기를 늘 다른 사람에게 미뤘다.


<공무도하>에 등장하는 문정수는 비겁한 사람이다. 그는 신문기자지만, 박옥출이 저지르는 부패한 일들에 대해 알아도 기사로 쓰지 않는다. 오로지 백화점 화재 사건만 기사로 쓸 뿐이다. 그가 자신의 직업에 대해 소명의식을 갖고 있었다면 결코 비겁하지 않았을 것이다. 올바른 일들이 선도되도록 대중들에게 알리고, 은폐되는 문제에 대해 고발했을 것이다. 물론 문정수만을 탓하고 싶지 않다. 애초에 박옥출같은 사람이 세상에 없었다면. 또, 문정수같은 사람이 가난하지 않았다면.

ⓒ Photo By Hans, Pixabay


모든 생명에는 생존에 대한 갈망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함부로 윤리를 저버리거나 양심을 팔지 않는다. 욕망보다 소중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의를 저버린 행동을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부른다. 애석하게도 이 소설에는 인간성을 가진 인물을 찾기 어렵다. 빼돌린 보석으로 콩팥을 사는 박옥출부터 그에게 콩팥을 파는 사람까지. 모든 인물들이 비겁하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그 누구도 이 상황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콩팥을 사든. 콩팥을 팔든. 아무도 이 상황에 대해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대부분 인물들이 노목희처럼 비겁한 세상 속에 그저 순응하며 살아갈 뿐이다.


박옥출에게 콩팥을 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콩팥을 팔고 받은 돈으로 무엇을 했을까.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 돈은 또다시 누군가에게 가고, 그리고 그 누군가를 찾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갔을 것이다. 이렇게 모든 인물들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서로 연관되어 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TV에 나오는 어떤 부패한 정치인이나 범죄를 저지른 유명 인사들을 보면서 남일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 소설의 문정수처럼. 또는 노목희처럼. 그 사건과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거나 방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건너고 있는 강은 비겁하다. 모두 강에 빠져 있으면서 누가 더 깊게 빠져있느냐, 얕게 빠져있느냐 서로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그냥 모두 똑같이 강에 빠져있는 것이다. 우리는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으로 강에서 나갈 것을 서로에게 미룬다. 결국 그 강 밖에서 나오라고 소리치는 사람은 미친 사람 취급받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모두 그 강에서 나와야 한다. 이 비겁함의 강이 바다가 되기 전에. 모두 물귀신이 되기 전에. 모두 그 강에서 나와 강에서 나오라고 미친 사람처럼 소리쳐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그 강에서 나올 때쯤 무엇이 진정 미쳤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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