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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만복 Aug 24. 2022

'우리'라는 단어 속에 숨겨진 폭력성

반두비(Bandhobi, 2009)

이방인과 <반두비> 사이의 거리


내 고향은 경기도 안산. 편안할 안(安), 뫼 산(山)이라는 지명은 모든 것을 따스히 품을 듯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곳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아마도 이따금씩 뉴스에 등장하는 '외국인 범죄' 때문일 것이다. 안산에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살고 있다. 제2의 차이나타운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에서 태어난 나는 이주노동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특히 내가 살던 원곡동에서는 아침이면 그들이 줄을 지어 공장으로 출근하는 모습을, 저녁이 되면 다시 줄을 지어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때문에 낮에는 거리가 휑하니 한산했다. 이런 곳에서 친구로 지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이주노동자 2세들뿐이었다. 그들과 함께 술래잡기, 곤충채집 등을 하면서 단 한 번도 그들이 나와 다르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한 두 살 먹게 되면서 아침에 출근했던 그들은 사실 이주노동자들이고, 나와 함께 놀던 친구들은 그들의 자녀인 이주노동자 2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무엇이 그들을 이방인으로, 이방인의 자녀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을까?


<반두비>를 보면서 '우리'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쓰는 이 아름다운 단어에는 어쩌면 폭력성이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국내에서 일어나는 잔혹한 범죄들 중 대다수는 분명 한국인이 저지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왜 그럴까? 바로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그들이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수도 없이 다른 나라의 침략에 맞서 싸웠다. 공격보다 늘 방어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 의식이 지금까지 계승되어 온 걸까. 우리는 늘 영어와 외국상품에 대해 동경하지만 외국인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일자리를 뺏어서 청년실업률이 심화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속히 '3D업종'이라고 불리는 고된 노동의 현장에서 근무한다. 만약 그들이 지금까지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누가 나서서 그 일을 했었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편한 환경의 근무가 있다면, 반대로 고된 환경의 근무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그 일에 대해 멸칭을 붙여가며 기피했을까. 정말로 그들은 청년들의 일자리를 뺏는 약탈자인가. 아니면 청년들이 기피하는 일을 대신했던 해결사인가. 또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부당한 대우와 갑질을 했던 사람은 누구였나. 정작 청년실업률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고, 그저 이주노동자라는 엉뚱한 곳으로 책임을 돌릴 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올바른 일과 올바르지 않은 일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늘 올바른 일에 앞서고 있고, 올바르지 않은 일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어떤 일이 올바른지, 그른지에 대해서 중립적으로 생각하기 쉽지 않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자유지만 만약 타당한 이유와 근거를 찾지 못했다면, 어쩌면 그것은 이유 없는 폭력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때때로 다른 나라에서 받았던 인종차별을 떠올려보자. 우리가 차별을 당해도 될 만큼 타당한 이유와 근거가 정말 있었을까. 만약 이주노동자를 향한 우리의 편견이 합리적이라면 그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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