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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만복 Aug 26. 2022

늘 진실과 거짓은 한 바구니에 담겨있다

12명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1957)

<12명의 성난 사람들>을 통해 바라본 진실의 이중성



본 내용에 앞서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어떤 남자가 칼에 찔려 사망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유력한 용의자는 놀랍게도 그의 아들. 소년의 나이는 이제 겨우 18살이다. 푹푹 내리쬐는 여름날, 선풍기도 고장 나 찜통 같은 좁은 방에 12명의 배심원들이 모였다. 그들은 이 배심에 대해 각자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이 사건을 흥미로워했고, 반대로 어떤 사람은 야구게임이나 무더위로 인해 배심을 서둘러 마무리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마침내 첫 투표가 시작된다. 유죄 11표, 무죄 1표. 쉽게 결정 날 것 같았던 이 배심은 1개의 무죄 표로 인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한다. 그리고 의견을 나누고, 투표를 거듭할수록 처음과는 다르게 사건의 새로운 면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배심원들이 생각했던 진실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처음에 유죄 표를 던졌던 사람들도 하나 둘, 무죄를 주장하는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 12명의 사람들이 내리는 배심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지금 존속살해에 대한 배심을 진행하고 있다. 그들의 배심에 따라 소년은 무죄나 유죄 선고를 받을 것이다. 이 배심은 오후에 시작할 야구게임이나 푹푹 내리쬐는 더위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결과론적으로 그들이 모이자마자 형식적으로 던졌던 그 1표는 마땅히 책임감이 없었다. 그들은 오로지 만장일치를 위해 새로운 의견을 냈고, 그 의견으로 인해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실이란 어느 달변가나 새로운 증거로 인해 언제든지 바뀔 수 있음을 대변한다.


우리는 수많은 선택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각자의 가치관을 통해 결정된다. 하지만 그 가치관은 어떤 상황이나 누군가의 의견으로 인해 다른 결과로 유인될 수 있다. 따라서 주관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거나 주어진 단서로만 진실을 찾으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자칫 이 선택과 결정이 자신이나 혹은 누군가의 고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진실을 찾아야 할까. 바로 견제다. 현재의 진실이 착각일 수도 있다는 견제. 높은 지위나 명예에 따라 결정된 진실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며, 타인의 의견과 새로운 사실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도출된 결과에 대해서도 모순을 찾고 그 진위성을 탐색해야 한다. 무척이나 번거롭지만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진실은 아니더라도 진실에 다가서는 첫 번째 걸음이 될 것이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의 배심은 결국 모든 사람들이 무죄 표를 던짐으로써 만장일치로 마무리 짓는다. 어쩌면 '유죄일뻔한' 사건이 정의롭게 무죄로 바뀌었다며 흥미로울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흥미가 아니라 공포다. 만약 유죄에서 무죄로 바뀌었던 그들의 가치관이 또 다른 달변가나 증거에 의해서 바뀐다면. 또 소년이 정말 무죄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 끊임없이 대립하는 진실과 거짓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또, 내가 스스럼없이 믿고 있던 가치관에는 정말 모순점이 없는지,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고 있지 않은지. 진실이 갖는 이중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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