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위에 덩그러니 놓여진 상자는
매일 밤 허영과 낭만을 잡아먹으며
다음날 새로운 상자를 만들어냈다
정신을 차린 후에는 발에 치일 만큼
온 땅에는 수많은 상자들로 뒤덮였다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까라는 호기심도 갖기 전
유명인들은 상자를 열어보라고 미소를 지었고
지인의 지인의 지인은 손쉽게 낙원을 찾았다고 자랑했다
사막의 신기루가 판도라들을 흔들 때
비나 구름은 흥미롭게 지켜볼 뿐이었다
결국 상자들이 하나둘씩 열리고
판도라들을 기다리는 것은
그 어떤 오아시스로도 헤아릴 수 없는 절망이었다
그러자 좌절하는 판도라에게
상자를 열기 전으로 돌려준다고
또 다른 상자가 메시지를 보냈다
결국 이 지겨운 갈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판도라는 낙타들이 무심히 달리는 긴 다리로 향한다
이것 말고는 답이 없어
너의 가족을 생각해보라고
알아 그래서 이곳에 온 거야
온몸이 젖은 판도라들에게 남은 것은
멍청하니까 당한 거지
너만 힘든 거 아니에요
세상 멍청하고 영혼 없는 조롱뿐
오늘도 여전히 새로운 상자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2022.11.14 황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