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는 바람직한 행동을 담는 글이다.
내가 공기업 취직을 처음 시작했을 때, 가장 어려운 건 자기소개서였다. 과거 기억도 잘 나지 않고 인생을 평탄하게 살았던 내게 역경 극복, 도전, 성취를 물어보는 순간 자체가 고역이었다.
그러나 그중에서 정말 싫었던 점은 자기소개서 쓰는 시간이 지난날의 후회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왜 더 열심히 살지 않았을까.. 뭐라도 해볼 걸 그랬나.. 노트북 앞에서 후회하며 자존감만 깎였다. 그렇게 2박 3일 고생해서 자기소개서 쓰면 서류 탈락하고, 나는 휴일 없이 일주일 내내 자기소개서에 갇혀 살아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소개서는 특별한 행동이 아니라 정석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것임을 깨닫게 됐다. 그렇다면 정석적인 행동을 담은 자기소개서는 무엇인지 설명해보려 한다.
공기업 자기소개서를 잘 쓰려면 상황 중심으로 쓰지 말고 행동 중심으로 작성해야 한다.
자기소개서를 어려워하거나 미숙해하는 사람 대부분은 상황을 중심으로 작성한다. 길게 볼 것 없이 다음과 같이 비교해보자. 내가 1년을 두고 발전시킨 자기소개서다.
서울 000 대학생 홍보대사의 한 미션 프로젝트 팀장을 맡으면서 공감하는 법을 실천했습니다. 서울 소재 대학교의 친환경 지도를 그리는 미션에서 저는 전체적인 방향을 계획하고, 디자인의 밑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다른 팀원들이 합의했던 밑그림을 한 동료가 마음대로 3D 도형이 담긴 지도로 바꾸고 작업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의 입장을 먼저 들어보기로 했고 그가 평면이 밋밋하다 생각해 3D 지도로 바꿨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다른 팀원들과 협력하는 데 수월함과 지도의 가독성을 이유로 기존 밑그림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초안의 밋밋함과 3D 지도를 만들었던 그의 노력을 인정했습니다. 그리하여서 그가 프로젝트에 의욕을 잃지 않고 시너지를 더해주길 바랐습니다. 실제로 합의사항에 공감하게 된 그는 적극적으로 프로젝트에 임하여 모두가 만족스럽게 지도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000에 입사하여 구성원들과 협력하고 갈등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프로젝트 마감 1주일 전에 디자인을 맡은 팀원 A가 합의를 어기고 디자인한 일이 있었습니다. 원래 합의한 대로 바꿔달라 요청해도 A는 태도를 고수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A의 의견을 경청해 경험이 많은 자신의 뜻대로 디자인하지 못하면 손해라 생각함을 알게 됐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팀원 의견을 수렴해 지도 문제점을 객관화하고 과거 수상사례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가독성이 중요하다는 근거로 A를 설득했고 A가 원하던 대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가 원하는 색 배합을 쓰자 제안했습니다. 결국 A도 원만하게 합의에 동참했고, 시너지를 낸 결과 최우수상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00 입사 후 부서 이해관계자와 예산과 목표관리로 의견상 충돌이 발생해도 당사자 간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공동목표로 상대를 설득하겠습니다.
위 두 자기소개서를 비교해보자.
행동 중심 자기소개서는 상황을 최소한으로 설명하고 내 행동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에 비해 상황 중심 자기소개서는 나는 내가 얼마나 힘든 상황을 이겨냈는지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해야 한다. 정작 채점관들은 내가 그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관심조차 없는데!
내가 상황 중심 자기소개서를 쓸 때, 구체적인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내가 맡은 업무들, 프로젝트 주제 등등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렇게 배경에서 3~4 문장 정도 할애하니 성과랑 결론을 제외하면 내가 행동한 부분은 500자 기준으로 겨우 1 문장 나온다.(뒤에 나오는 내용은 의미 없는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그러니 사실상 채점관들은 그 1 문장으로 나를 평가해야 하고, 결국 나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반면에 행동 중심 자기소개서는 상황 설명을 최소한으로 하고 행동을 최대한 설명하는 것이다. 위 자기소개서를 비교했을 때, "A라는 사람의 의견을 경청했다"에서 "팀원 의견 수렴", "과거 수상사례 분석", "A에게 색 배합 제안"과 같이 행동이 더 늘어났다. 대신에 어디 단체에서 어떤 임무를 맡았는지, 그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관해서는 없애거나 최소한으로 줄였다. 이렇게 상황이 아니라 내 행동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채점관에게도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사실 나도 처음에는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으면 채점관이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별거 없는 고민이었다. 채점관들 눈에 우리 상황은 다 거기서 거기다.(그분들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시다) 결국 행동이 얼마나 잘 드러나냐를 갖고 채점하기 때문에 상황 설명에는 그렇게 공들이지 않아도 된다.
자기소개서의 또 다른 딜레마다. 사실 행동 중심으로 써야 하는 걸 알게 되더라도 내가 행동 중심으로 자기소개서를 쓸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우리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 세세하게 잘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우리가 게으르거나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상황 중심 자기소개서를 쓰게 되는 거랑 연관돼있는데 우리는 의외로 우리 행동보다는 주변 상황을 더 잘 기억하기 때문이다.
우리 행동이 머릿속에 기억나려면 그 행동을 해야겠다는 계획이나 의지를 갖고 분명하게 실행돼야 한다.(간단히 말해 우리가 우산을 두고 왔으면 어디에 두고 왔는지 정확하게 기억해내기 어려운 거랑 똑같다)
이런 행동은 한 사건에서 기껏해야 1~2개 정도고 대부분의 우리 행동은 별생각 없이 행해진다. 그러다 보니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기억을 되짚어도 쉽게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이걸 극복하고 싶다면 우선 특별한 행동에 대한 집착은 버리는 게 좋다. 취준생의 행동 중에는 사실 특별할 게 없다. 그건 면접관이나 채점관들도 다 안다. 그렇다면 자기소개서에서는 일반적이지만 그 상황에서는 정답에 가까웠던 행동을 구체적으로 써주는 편이 차라리 낫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면 내가 했다는 확신이 없더라도 우선 무난하지만 바람직한 행동들로 자기소개서를 구체적으로 꾸며주자.
그렇다면 그 바람직한 행동들을 어디서 구해야 할까?
정답은 가까운 데 있다. 바로 우리 책장에 꽂힌 NCS 기본서들이다.
NCS는 직무역량 향상을 위한 직장생활 교과서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바람직한 직장 행동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으며, 이런 내용들이 자기소개서에 들어가면 정말 좋은 내용이 된다.
경청할 때는 의견이 다르더라도 일단 수용한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고려해 잘못은 확실하게 지적한다.
상대방을 설득할 때는 일방적으로 강요하기보다는 이익을 공유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프로젝트 마감 1주일 전에 디자인을 맡은 팀원 A가 합의를 어기고 디자인한 일이 있었습니다. 원래 합의한 대로 바꿔달라 요청해도 A는 태도를 고수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A의 의견을 경청해(의견이 달라도 일단 경청) 경험이 많은 자신의 뜻대로 디자인하지 못하면 손해라 생각함을 알게 됐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팀원 의견을 수렴해 지도 문제점을 객관화하고(잘못의 확실한 지적) 과거 수상사례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가독성이 중요하다는 근거로 A를 설득했고 A가 원하던 대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가 원하는 색 배합을 쓰자 제안했습니다.(공동의 이익 강조) 결국 A도 원만하게 합의에 동참했고, 시너지를 낸 결과 최우수상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00 입사 후 부서 이해관계자와 예산과 목표관리로 의견상 충돌이 발생해도 당사자 간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공동목표로 상대를 설득하겠습니다.
이렇게 NCS 기본서를 활용하면 행동 중심 자기소개서를 편하게 쓸 수 있다. 더군다나 공기업에서는 NCS 기반 채용이 이루어져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NCS 행동표준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를 자기소개서에서 내가 체화하고 있음을 어필한다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게다가 내용 자체가 해당 직무 상황에서는 정말 필요한 행동들에 가깝기 때문에 행동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도 크게 위화감을 주지 않는다.
많은 취준생들이 사랑하는 유튜브, <인싸 담당자>에서는 취직을 다음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 나는 다른 어떤 정의보다도 명확하고 본질을 관통한다고 생각한다.
"취직은 과거의 행적을 바탕으로 미래 성과를 예측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과거의 어떤 힘든 상황에 닥쳤을 때, 어떤 행동으로 이를 극복했다고 강조한다면 그걸 읽는 사람은 앞으로 다른 어려운 상황에도 비슷한 기술이나 성격을 발휘해 극복할 것이라 유추하게 된다. 그리고 그 유추가 이뤄지는 단계가 자기소개서다.
그러니 자기소개서를 쓸 때는 행동을 중심으로 써서 내가 미래에 유사한 상황에서 성과를 낼 사람이라는 사실을 어필하자. 이 사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열악한 상황에서도 취준에 한 발짝 가까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자기소개서는 상황이 아니라 행동을 중심으로 작성하자.
행동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NCS 기본서 내용을 되도록 참고하자.
우리 행동은 채점관 눈에 별로 특별하지 않다. 특별한 행동에 대한 집착은 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