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듈러 아키텍쳐, 모듈형 구조에 관하여.
object module은 모듈성을 극대화하는 의류 제품을 설계한다. 그 예로, object module이 첫 번째로 시도하는 모듈형 디자인인 snapXsnap은 플랫폼이 되는 티셔츠의 몸판에 사용자가 취향의 액세서리를 스냅단추로 연결해 연출할 수 있도록 한다. 디자인 과정의 일부를 사용자에게 바통터치하는 것이다. 사용자는 서로 다른 액세서리를 이용해 하나의 티셔츠로 여러 가지 연출을 할 수 있다. 모듈형 제품 구조의 장점을 반영하고자 노력한 부분이다. 더불어 사용자가 티셔츠에 대한 자신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Guilt-free
fashion 원칙에 비추어 의류 제품의 심리적 내구성emotional durability을 연장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다소 딱딱하고 기계적인 이야기를 해보면. 제품의 구조는 통상적으로 일체형구조(integrated architecture)와 모듈형구조(modular architecture)로 나누어진다. 이 구조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딱딱 이것은 모듈이고 저것은 일체이다는 식보다는 개념적인 이야기에 가깝다. 최종 완성품이라는 제품도 다른 제품과 융합이 일어나면(convergence), 그 상위 개념의 시각에서는 모듈이 되는 식이다. 따라서 기업이 제품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완제품과 모듈과 구성부속품의 각 레벨을 정의내리고 통제하게 된다.
어느 제품군에서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모듈형 제품 구조를 비즈니스 모델로 승화시킨 시조격 사례라 할 수 있는 비디오 게임을 예로 들어 이야기해보자. 오락실에서 볼 수 있는 게임기계처럼 기기 내에 게임 소프트웨어가 내장되어 있어 1기계 n게임이 고정적으로 매칭되는 경우가 일체형구조에 해당한다. ‘지정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이 기계 객체가 수행하는 기능이다. 반면에 80년대에 닌텐도를 비롯한 게임사가 가정용 게임기기와 게임용 소프트웨어를 분리해 판매한 것은 모듈형 구조의 제품이다. 게임팩 하나 하나는 각기 다른 게임을 플레이하는 기능을 가진 모듈이다. 모듈을 여러 개 구입하면 닌텐도 게임기가 수행할 수 있는 기능(각기 다른 게임을 플레이하는)이 늘어난다. 가정용 비디오 게임 시장이 확장되는 데에는 이 같은 모듈형 구조가 핵심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적은 돈으로 모듈만 추가 구입하면 여러 개의 기능을 즐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세대로 넘어오면서 등장한 앱마켓은 모듈형 구조의 또 다른 확장을 가져왔다. 바로 독립 개발자들이 어플리케이션(앱)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직접 판매할 수 있는 마켓 생태계가 형성된 것이다. 우선 스마트폰과 앱의 결합 방식을 플랫폼과 모듈의 시각에 맞추어 요약해 보면. 스마트폰 판매자는 통화를 하고, 번호를 저장하거나, 인터넷에 연결하고, 사진을 찍는 등의 기본 기능을 탑재한 플랫폼, 즉 스마트폰을 판매한다. 이 플랫폼에는 제 3의 개발자가 개발한 어플리케이션application,app을 메모리에 설치하고 실행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이처럼 스마트폰 플랫폼과 결합 가능한 앱은 각각 다른 기능을 제공하는 모듈에 해당한다. 소비자가 스마트폰 플랫폼에 자신이 선택한 앱 모듈을 설치하는 과정은 곧, 자신의 마음대로 제품을 디자인하여 완성하는 과정에 해당한다. 일종의 제품 개인화가 일어나는 지점이다. 이상의 과정에는 1. 스마트폰을 제조, 판매하는 기업, 2. 앱을 개발하여 앱 마켓에서 판매하는 개발자, 3. 스마트폰과 앱을 구매해 사용하는 소비자 등의 세 주체가 참여한다.
이렇게 플랫폼을 중심으로 모듈이 거래되는 시장을 이면시장이라 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면시장에서 참여자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플랫폼과 시장환경을 제공하는 역할, 모듈을 제공하는 역할, 그리고 플랫폼과 모듈의 조합을 결정하는 역할. 각각의 역할이 구분됨으로써 보다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의 다양한 필요를 충족하는 제품 구성이 가능해진다는 데에 이면시장의 장점이 있다. 플랫폼 제공자 입장에서는 시장이 활설화 될수록 플랫폼 판매가 늘 뿐 아니라 모듈 거래 수수료를 통해 시장환경을 제공한 대가를 얻을 수 있다. 모듈 개발자는 적은 자본으로 모듈을 개발하여 플랫폼 사용자 기반을 자신의 잠재 고객으로 유치할 수 있다. 사용자는 일괄적인 기능을 제공하는 단일 완성품 대신 자신이 필요로 하는 기능의 모듈을 직접 선택함으로써 제품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한편, 원하지 않는 기능에 대한 비용은 지불하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
여지껏 개방된 이면시장은 모듈 생산(개발)이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살펴본 사례의 게임 팩이나 앱 프로그램, 우리가 사용하는 윈도우 같은 OS시장 등. 아무래도 생산설비와 비용이 적게들어 (대개는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컴퓨터와 데이터베이스 정도의) 다수의 소자본 개발자가 참여하기에 이로운 환경이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활성화 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공유경제 개념의 부상과 더불어 데스크탑 제조업을 이끄는 3D 프린터, CNC 기계(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 machine), 레이저 커터, 디지털 프린터 등의 기술이 대중화 되면서 하드웨어 제품의 모듈화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지고 있다. 누구나 쉽게 데스크탑 제조 툴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하드웨어 모듈 개발 비용이 낮아지고 개발한 모듈을 판매하고자 하는 개발자도 생기리란 예상을 하는 것이다.
물론 하드웨어 제품의 이면시장이 유효한 수준으로 활성화되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는 제품을 시장에 delivery하기까지 소프트웨어와 달리 물리적 제약과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생산 설비의 local network가 형성되고 원재료의 조달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져 다수의 개발자가 모듈 개발에 드는 비용의 부담을 낮출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소비자가 선택한 모듈을 구매하고 생산, 배송되는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어야 한다. 제품 개인화는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의 보다 극단적인 모델이므로 제품(플랫폼과 모듈을 포함한)을 제공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 효율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려 사업성을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의 대량생산 기술 및 시스템으로는 사실상 해결 불가능한 문제로 제조업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제품의 구조를 모듈 단위로 운영하는 것의 또 한 가지 차별점은 소스의 선택적 개방에서 찾을 수 있다. 플랫폼 제공자는 외부 개발자가 개발한 모듈이 플랫폼 상에 결합되기 위해 필요한 기본 구성 요소에 대한 정보와 설계를 개방한다. 외부의 개발자는 이를 토대로 모듈을 설계한다. 선택적 개방이라고 부연하는 데에는 1. 개방의 범위를 제한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2. 필요에 따라 소스를 유료로 개방하여 비용을 지불한 사람에게만 제한적으로 개방할 수 있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오픈 소스' 용어를 사용할 때에 반드시 무료 개방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보다 정확하게 구분하기 위해 무료로 개방되는 소스는 별도로 프리 소스(free source)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소스'는 무엇인가. 소스에 포함 가능한 범주는 사실상 하드웨어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해당된다. 우선 모듈을 나누는 기준은 그것이 수행하는 기능의 분절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대부분의 하드웨어는 펌웨어firmware라 구분되는 소프트웨어에 의해 기능을 제어하도록 설계된다. 따라서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데에는 많은 경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이 필요하다. 모듈의 소스에는 소프트웨어 코드와 하드웨어 설계도면이 모두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관점에서 소스의 종류를 나열해 보면 프로그램 코드, 설계도면, 부품의 구성도(BOM, Bill Of Materials), 화학 솔루션의 포뮬러, 디자인 파일 등이 포함된다.
소스를 개방한다는 표현 역시 의미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먼저 떠오를 생각은 '기업 기밀 유출'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맞다. 다만 개방한다는 것은 기업 기밀의 '자발적' 유출 행동을 가리킨다. 그 이유나 타당성에 관한 이야기는 당장 하지는 않겠다(관심 있는 분은 '오픈소스 하드웨어' 글을 참조해 주십사). 여기서는 제품 측면에서 소스를 자발적으로 개방하는 것의 의미만 집고 넘어가려 한다. 소스는 제품의 계획을 최종 생산물로 만드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모든 정보를 의미한다. 실제 물리적 구성 물질을 포함할 수도 있겠지만, 좁게는 온라인을 통해 배포 가능한 것들을 의미한다. 이 소스가 있으면 누구들 비슷한 컨셉의 물건을 만들 수 있다. 누구나 물건을 만들 수 있도록 정보가 개방된다는 것은 즉, 제품의 디자인 과정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바로 여기에 오픈 소스의 철학적 근거와 가치 창출 기회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하드웨어에서 앱 마켓과 같은 이면시장의 성공 사례는 아직 없지만, 유사한 맥락에서 다양한 커뮤니티가 사용자 간에 개별 모듈의 소스를 공유하며 공동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커뮤니티 활동 중에 반응이 좋은 모듈이나 완제품을 따로 창업해 성공한 사례 또한 찾아볼 수 있다. 3DR*2)은 DIY Drones*3)라는 커뮤니티에 뿌리를 둔 드론 개발사이다. RepRap 프로젝트*4) 역시 오픈소스 3D 프린터 개발 프로젝트로 여러 3d 프린터 개발사의 창업에 모토가 되었다. 역으로 완제품이 아닌 모듈 소스를 오픈해 다양한 하드웨어의 개발을 돕는 arduino*5)와 같은 커뮤니티 프로젝트도 있다. 이처럼 오픈 소스를 활용한 모듈 개발 방식의 성공에는 커뮤니티, 또는 이면시장과 같은 환경이 필수적이다. 이 같은 환경에서는 누구나 쉽게 접근하여 개발 과정이나 제품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유 생태계가 활성회되면 다양한 아이디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빠르게 시도되고 테스트를 거쳐 개선, 심화되면서 발전한다.
object module이 모듈형 제품 구조를 채택하면서 가장 고민하는 것은 바로 커뮤니티의 활성화이다. 패션 제품은 착용자의 취향이 즉각적으로 드러나며 비교적 적은 노력과 비용으로 자기표현이 가능한 수단이다. 따라서 그 어떤 제품보다도 제품 개인화에 대한 소구가 높은 제품 카테고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제조사 입장에서 개별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비용의 상승으로 작용하기 십상이다. object module의 snapXsnap(스냅 바이 스냅)은 모듈형 제품 구조를 채택함으로써 제품의 부분 개인화를 달성하고 제조 비용의 상승을 최소화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SNS 채널을 활용해 사용자 간에 snapXsnap을 활용한 다양한 디자인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 아이디어의 공유 및 검색은 #snapXsnap, #omoreverse, #스냅스냅, #오모거꾸로비디오 등의 해쉬태그로 가능하다.
동일 해쉬태그를 사용함으로써 사용자 간에 동질성을 느끼고 서로 다른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발전시켜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으면 한다. 그리고 동질 커뮤니티를 통해 보다 쉽게 자신의 개성을 타인에게 노출시킬 수 있는 환경에서 디자인 다양성이 누적되기를 바란다. 이에 그치지 않고 object module은 개별 사용자가 커뮤니티 디자이너로서 활동할 수 있는 이면시장이 형성되도록 기회를 지속적으로 탐색할 것이다. 그런 날을 고대하며... 우리 다 같이 해쉬태그 검색 해 보아요?
*1) PLATFORM PLANNING FRAMEWORK FOR OPEN SOURCE HARDWARE DEVELOPMENT WITH CASE STUDY OF PROJECT ARA. 김지연. 서울대학교 공학석사 논문. 2016.
*2) 3dr.com
*3) diydrones.com
*4) reprap.org
*5) arduino.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