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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yva Nov 01. 2019

낭만에 대하여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하고 싶은 말 하려 했던 말 이대로 다 남겨 두고서
혹시나 기대도 포기하려 하오 그대 부디 잘 지내시오
기나긴 그대 침묵을 이별로 받아 두겠소
행여 이맘 다칠까 근심은 접어두오
오오 사랑한 사람이여 더 이상 못 보아도
사실 그대 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왔음에 감사하오
좋은 사람 만나오 사는 동안 날 잊고 사시오
진정 행복하길 바라겠소 이 맘만 가져 가오”

김광진의 '편지'다. 이 유명한 노래의 가사는 실제로 김광진의 부인이 다른 남자에게 받은 편지의 내용으로, 다른 남자는 부인에게 이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둘은 이별했다. 연애의 시작과 끝이 편지였던 시절. 굳이 낭만을 운운하지 않아도 일상에 낭만을 주고받았던, 일상에 편지가 가득했던 시절. 한 남자의 마지막 말이 이렇게 낭만적인 노래로 남았다.
 
지금의 우리는 편지 세대가 아니다. 편지 한 장으로 마지막을 대신했던 그 시절과는 달리 지금을 사는 우리의 마지막은 이처럼 깔끔하기 힘들다. 자주 바뀌는 프로필 사진, 어쩌다 발견하는 sns에서의 근황 등 세월 따라 변하는 당신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오기 너무 쉽다. 마지막 기억에 자꾸 다른 게 덧대어지면서 그 마지막의 애틋함이 애틋하게 남아있기 어렵겠다. 낭만은 또 어떻고.

초등학교 때 아빠가 몇 달간 창원에 가 계셨던 적이 있는데 그때 아빠는 자주 편지를 보내왔다. 보고 싶다면서 겨울이 오면 청둥오리를 보러 내려오라는 말로 끝맺은 아빠의 편지를 읽으면서 어떤 그리움의 감정을 진하게 겪은 것 같다. 아빠 손글씨로 아빠만 할 수 있는 말로 쓰인 편지를 읽으면서 마음이 이상하게 일렁였다. 지금도 그때의 편지를 읽으면 여전히 마음이 일렁이는데 그러니까 이런 거. 편지에 그때의 진심을 담아 그대로 얼려두는 것. 그래서 편지를 볼 때마다 그때의 마음을 두 손에 들고 그때의 생각을 두 눈으로 읽어 내려가면서 그때의 우리를 그대로 마주하는 거. 편지가 제일 잘하는 이런 거. 이런 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거 같다. 나한텐 이런 게 낭만이라.


전화로 듣는 보고 싶다는 말도 좋지만 편지에 꾹꾹 눌러쓴 '지금 니가 보고 싶어'라는 글씨가 주는 낭만이 더 진하다. 잃어버린 것이라 해도 다시 못 올 것이라 해도 추억을 추억 그대로 그때의 온도 그대로 간직한 편지가 있다면. 그렇게 몇 통의 편지를 가슴에 품고 사는 것도 참 낭만적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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