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벌지 못하는 나의 두번째 직업
나에게는 두 개의 직업이 있다. 하나는 회사원이고 하나는 대학원생이다. 잠깐동안 내가 대학원생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최근 학회 참석건으로 연구실에 연락을 했고 오랜만에 연구실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박사과정 풀타임으로 있었을 무렵 석사로 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박사과정이 되어있었다. 그 말의 의미는.... 내가 그만큼의 시간을 대학원생으로 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 다시 생각났다. 나는 탐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회사에서도 탐구하고 몰입해서 해야하는 일이 종종 있지만 조금 결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대학원생..... 풀타임 대학원생이었을 시기에 온통 머리속에 연구 관련한 생각밖에 없는 타이밍이 온다. 대학원생은 크게 세 가지의 일을 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세가지는 연구, 과제, 학교관련 업무라고 볼 수 있다. 연구야 졸업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일이고, 과제도 내가 돈을 버는 수단이니 게을리 할 수 없었다. 제일 생각없이 할 수 있는 일은 학교 관련 행정업무였던 것 같다. 지금 회사에서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행정업무가 귀찮기는 해도 시간이 제일 빨리가고 뭔가 해치우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풀타임 대학원생으로 나름 20대 중,후반을 보냈는데 그 시절 제일 생각없이 했던 일이 행정처리 업무라니.. 당시 내가 얼마나 피폐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대학원 생활이 나쁘지 만은 않았다.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분야가 뭔지 알게 되었다. 또 제일 크게 깨닳은 사실은 사람이 궁지에 몰리게되면 뭐라도 한다는 것이다. 또 사람이 하는데 안되는 일이 어디있겠는가 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물론 데드라인 안에서 모든 일을 조건에 맞게 해내야 하지만 또 그렇지 못한 순간이 오더라도 다 지나갈 방법은 생기더라는 것을 배웠다. 대학원에서 정말 값진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원 생활은 누구의 탓을 할 수 없고 온전히 나를 갉아먹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왜 나는 그걸 생각하지 못했지? 여기까지 인가보다. 이제 지쳤다. 라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석사시절을 보내고 졸업하는 날 나는 다짐했다. 다시는 대학원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석사를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회사를 다니는데 어느 순간 내가 학위를 핑계로 삼는 다는 것을 알았다. '석사밖에 못했는데.. 내가 뭘 알겠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 그때 있었던 상사가 본인은 박사라고 엄청 자랑스러워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속으로 저 사람도 박사인데 내가 못할게 뭐가 있어. 지금 석사는 있으니까 박사과정만 되면 박사되는거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실에 대한 기억도 미화되었던 것 같다. 뭔가에 몰두해서 밤을 지새우고 토론하고 새로운 것을 알게되고 혼나면서도 칭찬받는 그런 시간이었다고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박사과정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안일하게 박사과정이 되면 박사가 되는 줄 알았지만 박사과정이 되면 박사수료생이 될 뿐 박사는 될 수 없다. 박사가 되려는 노력은 또 다른 문제였던 것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풀타임 생활을 접고 파트타임으로 돌아섰지만 꼭 경제적인 이유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계속 도피하고 있을 뿐. 남들이 보기에는 뭔가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보기 쉬운데 정작 내 내면에는 성장하지 못하는 내가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다시 회사원이 되고 대학원생은 내 두번째 직업이 되었다. 직업이라고 하기엔 그 일로 수입이 생기지 않는데.. 그럼 직업이 아니고 신분? 이라고 해야할까? 아무튼 나에겐 두 개의 신분이 있다.
잊고있엇지만 나는 아직 박사의 꿈을 지우지않았다. 다시 연구실에 접촉했으니 동기부여가 되었다. 졸업. 그것이 나의 30대 중반 삶의 목표로 삼겠다. 명함에 '공학박사'라는 문구를 넣고야 말겠다. 어떤 의견으로는 박사가 되어도 돈벌이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냥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닌거지. 오늘은 뭔가 의욕이 넘치는 날이라서 마음만은 벌써 연구기획 마치고 실험중인 대학원생 같은 느낌이다. 나는 이렇게 한 발 더 나아갔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의 두번째 직업을 다시 인지했으니 풀타임처럼 집중하지는 못해도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대학원생이 되겠다. 아웃풋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나의 삶의 지향점인데 앞으로의 아웃풋은 졸업논문이 될 것이다.
뭐 깔끔하게는 아니더라도 질질 끌어서 완성만 할 수 있다면 된 것 아니겠는가. 사람이 어떻게 모든 일을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겠나. 나는 지지부진해도 결국은 해내는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 그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삶의 루틴을 한번 가져볼까 한다.
1. 매 주 화, 목 퇴근하고 연구실 가기
2. 정기 세미나 참석하기
3. 퇴근 후 집에서라도 대학원생처럼 살기
나는 회사원이자 대학원생이다. 향후 2년 이내 박사학위가 있는 회사원이 될 것이다. 확신한다. 나는 할 수 있다. (어떻게든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