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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윤 Apr 09. 2023

생 샤펠, 그 음악적 아름다움

<도시.樂 투어> 프랑스, 파리(Paris) 3탄


일단, 한번 가보세요


나에게는 파리에 갈 때마다 꼭 들르게 되는 곳이 있다. 파리의 수많은 관광지 중에서 그곳은, 맑은 하늘과 함께 자유로운 느낌을 온몸으로 받을 수 있는 에펠탑도 아니고, 쭉뻗은 샹젤리제 거리의 끝자락에서 북적이는 개선문도 아니고, 파리의 중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도 아니다. 바로, 생 샤펠(Sainte-Chapelle)이다.


실제로 생 샤펠은 에펠탑, 샹젤리제, 개선문, 노트르담 대성당과는 달리 시테 섬에서 내부로 찾아들어가야 하는 곳이기에 외부에서 느낄 수 없는 색다름이 있다.


생 샤펠에 대한 첫인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어마어마한 스테인드 글라스와 고딕 스타일, 그야말로 화려함의 절정을 뽐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슬람 문화에 영향을 받은 스테인드 글라스로 꽉꽉 채워져 있는 이곳은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과 강도에 따라서 공간의 분위기를 오묘하게 이끌어낸다. 




생 샤펠, 무엇을 하는 곳인고?


루이 9세(1215-1290)는 1226년 11살에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신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가시관(Crown of Thorns), 참 십자가(The True Cross)와 성창 조각(The Holy Lance)을 포함한 유물들을 보관하기 위해 예배당이 필요했고 이로 인해 자신이 사는 왕궁 안에  예배당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2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구조에서 위층은 왕이 거주하는 공간과 연결되어 있다. 


시공이 시작된 날짜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지만, 당시에 이 공사를 위해 4만 리브르(지금으로 하면 약 100억 원이 넘지 않았을까)를 지출했다고 하며, 1248년 완공되어, 1837년 건축가인 펠릭스 뒤방(Felix-Jacques Duban, 1798-1870)과 장 밥티스트 앙투안 라수스(Jean-Baptiste-Antonine Lassus, 1807-1857), 외젠 비올렛 르 뒥(Eugène Viollet-le-Duc)이 복원하기 시작하여, 2008년에서 2014년까지 보수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생 샤펠은 루이 9세의 유물 보관소이자 프랑스 왕실의 예배당으로, 예배를 위한 종교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극강의 화려함을 뽐내고 있는 강력한 프랑스 군주의 과시이다. 15개의 거대한 창문에서 보이는 스테인드 글라스는 인류 구속(救贖)을 위한 그리스도의 수난과 희생을 보여주며 동시에 그리스도가 보장하는 왕권의 정당성을 강조할 수 있는 장면이 선택되었다. 즉, 루이 9세는 스스로를 그리스도교의 수호자로 여기며 자신의 강력함과 그에 대한 정당성을 내보이고자 했던 것이다.


Sainte-Chapelle


생 샤펠은 프랑스혁명 이후 방치되어 왔고, 오랜 기간에 걸쳐 없어진 수많은 패널들은 미국과 유럽 등지의 박물관에서 발견된다. 19세기 중반에서야 루이 샤를 오귀스트 슈타인하일(Louis-Charles-Auguste Steinheil, 1814-1885)의 복원을 통해 시각적으로 일관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바깥쪽 장미 문양은 화려하게 재작 업되었지만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Sainte-Chapelle, photo by musicnpen




생 샤펠, 그 음악적 아름다움


종교적 의미나 루이 9세의 강력한 왕권의 정당성, 이러한 부분과 별개로 이곳에서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음악의 다양한 요소들과 연결해 보면 미학적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다채로운 빛깔은 음 하나하나에서 빛나는 '장식'으로, 그리고 그 공간이 보여주는 조화는 소리들의 '울림'으로 연결해 볼 수 있다. 


조성음악이 자리 잡기 전, 음악이 보다 구조화되고 이성적으로 이해되기 전, 정말이지 아주아주 오래전에 음악은 음이 나열된 하나의 성부(단성)라는 선율이 있었다. 이후 이를 아름답게 꾸며 장식해 나가는 변화도 조금씩 생겨나갔는데 이러한 음악적 장식은 종교적 의미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당시 종교적 영역 안에서의 예술이 화려한 장식을 가질 수 있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후 소리의 울림을 통해 점점 어울리는 음들을 찾아가고 이를 바탕으로 기존 선율에 또 다른 선율을 얹어가며 하나의 성부가 아닌 여러 개의 성부를 가진 음악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이 다성음악이다. 장식된 소리들의 조합이 각 성부에서 진행되며 소리 내는 울림과 그 진행이 구조를 갖추게 되고, 이후 훗날 '조성'이라는 음악적 체계로 발전하는 초석이 된다. (단 번에 발전했을 것 같지만, 언제나 그렇듯 새로움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생 샤펠 공간에서처럼 중심을 잡아주는 기둥은 음악에서 마디 혹은 박자로도 이해될 수 있으며, 이곳의 공간이 보여주는 화려함은 음악에서 한껏 장식되어 빛나는 소리라 할 수 있다. 각각의 스테인드 글라스도 부분적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의미가 있지만 공간에서 전체적인 조화가 더 중요하듯 음악에서도 역시 꾸며짐 속에서 조화를 찾아가는 음악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이 공간에서 느껴지는 많은 것들이 당시의 음악과 매우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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