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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윤 Feb 21. 2020

진실한 십자가의 전설

<도시.樂 투어> 이탈리아, 아레초(Arezzo) 4탄


아레초는 작지 않은 도시였고, 구석구석 볼거리들이 숨어있는 알찬 곳이다. 개인적으로는 귀도를 찾고 그 흔적을 마주하는 것이 벅차서 사실 그다음 스케줄은 발길 닿는 대로 '될 대로 돼라'였지만, 그래서인지 아쉬움에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귀도의 생가에서 좁은 골목을 돌아서 기차역 쪽으로 내려가 얼마 가지 않은 곳에 성 프란체스코 성당(Basilica di San Francesco)이 있다.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과 이름이 같은데, 그 이유는 아레초의 성당이 성 프란체스코가 묻혀있는 아시시의 성당(13세기 중엽에 완공)에 이어 프란체스코회에서 지은 형제 성당이기 때문이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


나는 귀도를 찾아 아레초에 왔지만, 대게는 아레초를 방문하는 가장 큰 목적 중에 하나가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 있는 <진실한 십자가의 전설>(The Legend of True Cross)을 보기 위함이 아닐까 한다. 이 작품은 이야기의 여러 장면으로 구성된 연작(narrative cycle)이며 15세기에 활동했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1416/17-1492)의 프레스코화로 초기 르네상스 미술을 잘 보여주고 있다.  


프란체스카는 당대 함께 활동했던 화가들에 비해 다소 늦게 알려진 인물이다. 초창기에 이탈리아 북부 지역인 피렌체(Firenze), 페라라(Ferrara), 리미니(Rimini) 등에서 활동했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완숙기 작품은 아레초에서 발견되며 그중 프레스코 기법의 <진실한 십자가의 전설>이 가장 유명하다고 볼 수 있다. 

<진실한 십자가의 전설>에서 발견된 프란체스카의 자화상

1290년 성 프란체스코 성당이 아레초에 지어지기 시작한 이후, 성당에는 벽화들이 하나둘 그려지기 시작했다. 성당 내부 벽화들의 보존상태가 좋지 않아 아쉽지만, 아레초 출신의 화가인 스피넬로 아레티노(Spinello Aretino, c.1350-1410), 그리고 그의 아들인 파리 디 스피넬로(Parri de Spinello, 1387-1453), 또 다른 아레초 출신의 화가 로렌티노 안드레아(Lorentino d'Andrea, 1430-1506)의 벽화 등 다수가 전해지고 있다.


이 중에서 <진실한 십자가의 전설>은 성당 내부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1447년 경 착수되었다고 전해지는데, 1452년 비치 디 로렌초(Bicci di Lorenzo, 1373–1452)가 사망한 후 프란체스카가 맡게 되었고, 1466년 완성되었다고 한다. 다른 벽화들에 비해 보존상태가 양호했는데, 10년가량의 복원작업을 거쳐 2000년 즈음부터 지금의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 내부


르네상스 시대의 지식인들은 미술, 건축, 음악 등 알려져 있는 분야 외에 대부분 많은 부분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모나리자>와 같은 그림만 그린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듯이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들은 모든 학문은 하나의 길로 통하고 모든 사고는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그에 대한 탐구과정을 예술로 승화시킨 듯하다. 결과만 쫒아가기보다는 그 과정을 즐기고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문화와 예술을 꽃피울 수 있었으리라. 


프란체스카 역시 르네상스 천재 중 하나로 수학적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던 인물인데, 수학자건 어쨌건 회화나 건축에서 구도와 비례는 필수적이지 않은가. <진실한 십자가의 전설>에서 프란체스카는 3개의 벽면을 이용하여 양쪽을 대칭적으로 나누고 내러티브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아래의 구도에서 볼 수 있듯이 내러티브 순서와 그림의 방향에는 크게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한 권의 책처럼 상단에서 시작하여 아래 방향으로 그리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되는 순서였다면 기대에 좀 더 부합했으려나. 

<진실한 십자가의 전설> 구도

창세기에 해당하는 장면은 왼쪽이 아닌 오른쪽 상단에서부터 시작되는데, 결과적으로 다음 순서나 위치가 두서없어 보이는 듯해도 프란체스카는 나름대로 드라마틱하게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란히 놓고 보면, 순서와는 관계없이 그림의 연속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마주 보는 그림들은 각각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양쪽 벽면의 꼭대기는 솟아있고, 아래는 직사각형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장 쪽에는 4명의 에반겔리스트인 성 마테(St. Matthew), 성 마르코(St. Mark), 성 누가(St. Luke), 성 요한(St. John)이 그려져 있다.

십자가와 관련한 각각의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다.  1. 아담의 죽음(Death of Adam)  2. 솔로몬과 시바 여왕(The Adoration of the Holy Wood and meeting of Solomon and the Queen of Sheba)  3. 성 십자가의 장례(The burial of the Sacred Wood)  4. 성 수태고지(The Annunciation to Mary)  5. 콘스탄틴 황제의 꿈(The Vision of Constantine)  6. 콘스탄틴 황제의 승리(The Victory of Constantine)   7. 유다의 고문(The Torture of Judas the Jew)  8. 진실한 십자가의 발견과 증명(The Discovery and Proof of the True Cross)  9. 헤라클레스와 호로의 전쟁(The Battle of Heraclius and Chosroes)  10. 십자가의 찬미(The Exaltation of the Cross)  11. 예언자 예레미아(The Prophet Jeremiah)  12. 예언자 이사야(The Prophet Isaiah)  


<진실한 십자가의 전설> 좌, 우


르네상스의 시대의 벽화나 회화에서도 볼 수 있는 이러한 구조와 내러티브 방식은 이 시대의 음악에 있어서도 나타난다. 물론 회화나 건축, 조각 등 미술의 영역이 영향력을 발휘하여 음악에서 나타난다고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당시 지식인들의 논리의 흐름과 시대적 요구가 예술의 방향을 끌어갔던 것만은 분명하다. 


'도레미'와 함께 귀도를 찾아간 아레초에서, 르네상스의 흔적을 피렌체가 아닌 아레초에서 마음껏 느껴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아레초에는 이밖에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과 피티 궁전을 건축하고 르네상스에 대한 개념을 논했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에 대한 전기를 남긴 조지오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도 만날 수 있다. 이 얘기는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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