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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나무 Apr 08. 2024

친절한 사람들로 가득하다면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교실과 학교의 분위기를 만드는 존재이다

교장으로 역할을 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 시간만큼 매일 학교라는 공간에 머물며 각자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서로의 공간을 조금씩 허용하며 자연스럽게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학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공간에 드나드는 사람이 공간의 표정을 만든다. 공간의 내용을 만든다. 사람에 따라 학교도 교실도 달라진다. 고정적인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유동적인 사람이다.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거울 효과'라는 말도 있다.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학교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학교 구성원 모두는 교실과 학교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존재이다. 어리고 여리고 변화무쌍한, 말랑말랑하여 주무르는 대로 모양이 만들어지는 초등 어린이들이 배우고 성장하는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은 이런 무시무시한(?) 생각을 의도적으로 되짚으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행히 우리 학교에는 친절한 사람들이 가득하다.


교감선생님은 나보다 여섯 해 선배이시다. 성품이 온화하시다. 한참 후배인 교장이 불편할 수 있을 텐데 각자의 역할을 현명하게 인식하고 지혜롭게 행동하신다. 학교에서 교장과 교감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학교의 소소한 일에서부터 중대한 일에 이르기까지 자주 소통하고 의논하여 의사결정을 분명하고 신속하게 하면 함께 일하는 교직원들이 편안하다. 나는 3월 교직원 첫 모임에서 업무 추진이나 민원 발생 등 의논이 필요한 경우 먼저 교감선생님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간혹 선생님들 중에는 바로 최고 결정권자를 교장으로 여겨 교감선생님과 의논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하다 보면 교장과 교감 사이에 신뢰가 깨질 수 있다. 교장과 교감의 파트너십은 학교 경영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장은 교감을 신뢰하고 위임의 묘미를 살려 학교 경영 중간 관리자로서의 권위를 가질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한다. 우리는 종종 '교장은 교감을 잘 만나야 한다' 또는 교감의 가장 큰 복은 '교장복'이 다며 농담처럼 말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관계가 좋으면 일은 술술 풀리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교장과 교감이라는 역할은 다르지만 그 이전에 '사람'이다. 학교의 최고 경영자인 교장은 '관계'에 대한 민감성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모범이 되고자 마음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다. 서로의 입장에서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하고, 존중하며, 때로는 인생의 선후배로 진정성 있게 이야기 나누며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선배이신 교감선생님은 어떤 날은 커피도 내려 주시고, 어떤 날은 에코백에 살짝 넣어온 한라봉을 건네주시고, 어머님이 농사지으신 시금치도 챙겨주신다. 일과 삶을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하고 서로 의지하고 지지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은 학교 경영의 큰 힘이다.


우리 학교 돌봄 전담사는 아이가 셋이다. 요리 솜씨가 좋다. 아이들 간식을 넉넉하게 준비하여 가끔 학교에 가져와서 교무실 식구들을 기쁘게 만든다. 그럴 때면 우리는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짓고 한입씩 나누면서 하하 호호 아침을 밝게 시작한다. 아이 셋을 키우며 아이들 몫을 챙기기도 벅찰 텐데 그 마음 씀씀이와 넉넉함이 놀랍다. 3월에 돌봄 관련 일로 이야기 나눌 때도 긍정적인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요즘 '늘봄' 문제로 학교 안팎이 시끄럽고 돌봄 전담사들은 업무가 과중된다며 교육청 앞에서 시위를 하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정부는 올 하반기부터 모든 학교에 늘봄을 시행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하여 '방과 후 연계형 돌봄'과 '아침 돌봄', '저녁 돌봄'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을 때 우리 학교는 결손 가정이나 가정에서 케어가 되지 않는 아이들이 많다며 당연히 적극적으로 일을 할 거라고 하셨다. 생각해 보겠다며 당장의 답변을 회피할 수도 있는데 내심 놀라웠다. 게다가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나열하며 더 잘 챙겨보겠다고 말해주어 고마웠다.


영양사선생님은 쉰셋이다. 위생모와 마스크에 가려진 얼굴이지만 선한 눈매와 손놀림 몸놀림에서 영양교사로서의 전문성과 책임감이 묻어나는 분이다. 소규모학교의 장점을 살려 급식 메뉴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이신다. 반찬이 깔끔하고 맛도 좋다. 게다가 보기도 좋다. 나는 종종 "급식이 참 맛있어요. 감사합니다 "  하며 인사를 건넨다. 선생님은 배식이 끝나면 아이들 사이를 오가며 음식이 부족한지 살피고 더 필요한 아이들에게 직접 챙겨도 주신다. 매일 한결같이 정성스럽게 200명이 넘는 학교 식구들의 점심을 챙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배식하는 손길에 정성을 같이 담는 것. 그것은 사람을 우선으로 삼는 마음이 아니고서야 어려운 일이다.


당직주무관님은 여든이시다. 학교가 외곽에 위치해 있다 보니 당직을 지원하는 사람이 없어서 연세가 많지만 건강하시고 본인이 일하기를 희망하셔서 채용이 되었다고 했다. 어르신은 3월 내내 아침마다 교장실 히터를 틀어서 공기를 따뜻하게 데워주시고 공기청정기 스위치도 켜서 내가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마음을 써주셨다. 내가 "사랑합니다" 인사하면 주름진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띠신다. "편안히 주무셨어요? 불편한 점은 없으셨어요?"하고 여쭈면 "예, 교장선생님, 없습니다" 하며 깍듯하게 높임말을 쓰신다. 내가 송구스러워진다. "덕분에 학교가 밤을 무사히 잘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한다.


시설주무관님은 기간제이시다. 여러 학교 행정실에서 기간제로 근무하신 경험이 많은 분이다. 소규모 학교나 외곽에 위치한 학교는 시설주무관이 정식으로 배치되지 않아 기간제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표정과 말씨, 태도에 정중함이 배어있는 분이다. 학교를 둘러보다가 고장 난 곳이나 아이들 안전에 위험이 될만한 요소를 발견해서 말하면 즉각 조치를 취한다. 며칠 전에는 학교 시설 관리 대장에 오류가 많다며 새롭게 정리하겠다고 시간 외 근무를 하셨다. 전임자의 잘못을 모른 척 넘어갈 수도 있으련만 바르게 잡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다. 학교가(우리의 일터가) 친절한 사람들로 가득하다면 우리는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도 덜 두려울 것이다.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일을 어떻게 대하는지 좋은 본보기가 되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가치 있는 선물을 안겨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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