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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nzan May 14. 2020

잔잔부부 신혼여행 #1 노르웨이 "오로라"


1년을 준비했던 결혼식을 무사히 끝낸 어느 일요일, 그저 끝나면 '떡볶이'를 먹을 수 있단 일념 하나로 부랴부랴 집으로 뛰어갔다. 마음껏 먹고, 다음날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하여 일을 했고, 유달리 일이 많아 집으로 일을 가지고 와 끝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저녁이 밤이 되는 것처럼, 유연한 흐름으로 한 주가 흐르기 직전의 토요일,


떠났다. 신혼여행을.




심야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서 밥을 먹고, 면세 물건을 찾아 비행기를 기다렸다. 사실 신혼여행이라면 좀 더 좋은 비행기 좌석, 좀 더 좋은 호텔, 좀 더 좋은 관광, 평소에 사지 못했던 명품들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다. 생에 한 번뿐인 신혼여행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괜찮으니 남편에게 이번 여행지의 선택권을 달라고 했다. 평소에도 함께 여행을 자주 즐겼던 터라 신혼여행만큼은 특별했으면 했다. 신혼여행이라는 이유가 없어지면 그저 평범한 또 하나의 여행인 것이다. <이유>라는 것은 이렇게 중요하다.


그렇게 우리는 <노르웨이>에 도착했다.







핀란드를 거쳐 트롬쇠에 도착한 우리, 착륙하자마자 펑펑 쏟아지는 눈발에 “온 세상이 눈부시게 하얗다”는 상투적 표현 외엔 달리 붙일 수식어가 없었다. 멀미도 수그러드는 것 같았다.







이번 여행에서 나름의 사치라고 표현한다면 트롬쇠의 3박 숙소가 아니었을까. 북유럽의 숙소 금액은 말도 안 되게 비싼 곳들이 많아서 에어비앤비로 예약을 하려 했었다. 하지만 오로라를 위해 온 이 곳의 목적에 충실하고 싶어 미팅 장소 근처의 숙소, 그중에서도 주방이 있는 숙소를 잡은 것이다. 3박에 70만 원, 10평 남짓 되는, 뷰라고는 1도 없는 이 곳을 이 가격에 선택하다니 사실 이마저도 근처 호텔 중 가장 합리적인 곳이라니 물가를 짐작케 한다.







아침 일찍, 어제 근처 작은 마트에서 사둔 고등어 통조림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식후 생강차도 빠짐없이 마시며 여유를 부린다. 사실 여유란 게 별거 없다. 그저 창 밖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일.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생강차와 경치가 좋다.






Prestvannet 호수



쌓인 눈길을 헤쳐나가는 게 배로 힘들고, 무서웠지만 힘을 내서 출발했다. 파리에서도 하루 3만보를 걸어 다녔던 우리,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았던 여행지. 힘들고 가혹한 여행일지라도 나중에 남는 추억은 훨씬 더 멋있어지니까, 그걸 아는 우리는 귀찮음과 힘듦을 이겨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많은 것들을 눈에 담고, 소복이 쌓인 눈 위를 어린애들 마냥 구르고 다녔다.


아주 춥고 눈발이 휘날리는 곳에서 핫초코를 마실 때는 정말 행복했다. 행복이 온몸으로 퍼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경치를 앞에 두고 눈을 감고 음미하는 사치도 아주 잠시 누렸다.







1인당 75녹크를 주고 구매할 수 있는 북극 도달권, 이런 '증'에 집착하는 인간에게 이런 마케팅은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없을 듯하다. 북극에 도달했다는 어떤 뿌듯함을 돈으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아깝지 않게, 우쭐한 마음으로 살 수 있었다.







가끔씩 남편이 이런 영상을 만들어주곤 한다. 재미없고 고리타분한 일상도 제 3자가 실감 나는 영상으로 보여주면 그렇게 새롭다. 여행지에서의 생생한 영상이라니, 흐릿해지는 추억에 생명을 불어넣어준다.


오고 가는 따뜻한 시선 속에 커피 마시는 템포를 맞추며 쉼 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우리가 결혼을 했다는 사실, 이 여행은 <신혼여행>이라는 사실, 오늘 밤, 꿈꿔왔던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설렘, 이런 사실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했다.







상상이 안 될 만큼 아름다운 날이 1년에 몇 번 있다는데 그 한 번을 노르웨이에서 만났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별빛이 이어져 커다란 빛이 되어 쏟아지던 밤,


우리는 오로라를 발견했다.


신비로운 색이었다. 느릿하게 흘러가는 오로라는 현실감 없이 그저 예쁘고 맑았다. 아득한 기분으로 황홀함을 느꼈다.








-

꿈만 같았다.


꿈을 꿀 때는 모든 일이 즐겁고, 기운 차 보인다.

노르웨이에 있을 동안 나는 늘 그런 기분에 설렜다.


부디, 그날을 소중히 여기며 차분히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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