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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nzan Aug 27. 2020

몇 년 친구라는 타이틀


학창 시절, 선택된 반 안에서 선택적인 친구관계를 해오던 행위

그 관계들은 서로의 같은 목표 아래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불행이었고, 행운이었다.



실제로 초등학교 6학년에 만난 나의 소중한 친구와 연락을 끊은 적이 있었다. 그 친구와 행복했던 추억은 6학년, 단 1년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 1년 동안 자매처럼 붙어 다녔던 터라 많은 추억을 공유했고, 끈끈했다. 그 1년으로 30살이 다되도록 유지되어 온 것이다. 어릴 때의 정서적 교감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물론 그 친구와 나는 초-중-고를 함께 다녔지만 어느새 다른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는 그 친구와의 사이는 물리적 거리와 함께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관계라는 게 그렇다. 두 사람이 동일한 방식으로 우정을 위해 애쓰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었다. 한데 나는'정'이라는 것에 16년 넘게 나보다 더 애틋하게 그녀를 생각하며 관계를 유지해왔다. 혼자서.


그도 그럴 것이 나와는 성향이 정 반대였다. 어떻게 친구가 됐을까 싶을 정도로 서로에게 하던 말이 있었다. "사회에서 만났으면 너 상대도 안 했어, 알아?" 웃으며 건넬 정도였으니. 단순한 예로, 나는 밖을 나가는 걸 좋아했고, 그녀는 집에 있는 걸 좋아했다. 나는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리며 조심스레 관계를 유지하던 사람이었다면 그녀는 똑 부러지게 상황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혹은 사과를 받으며, 칼 같이 뒤돌아서는 성향이었다.


또 하나 있다면, 서로가 서로의 인생에서 가장 굴곡 시기에 함께 있어주지 못했다. 나는 창원에, 그 친구는 서울에, 우리는 물리적 거리를 감당하지 못했다. 그저 매일 하는 전화 통화를 통해 차분히 듣는 게 전부였다. 그게 우리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가끔 그 친구의 목소리가 어둡다 느껴질 때면 2주 정도 머무르다 오곤 했다. 그게 전부였다.


그러면서 내가 쏟아붓는 애정만큼 기대를 했다. 싸움이 잦았고, 관계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유욕일까, 집착일까 관계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던 나는 마음을 정리했고, 용기 내 연락했을 때쯤 크나큰 충격에 휩싸였다. 내 친구는 많이 아팠다. 내가 알던 그 친구는 없었다. 정신병이었다. 함께 했던 수많은 이야기와 웃음, 눈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도저히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서웠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이 친구는 내 아픈 손가락이구나. 내가 너무 좋아했구나.


시리도록 추운 겨울이었다. 저 멀리서 머리를 질끈 묶고, 앙상한 뼈만 남은 채 내가 아닌 먼 곳을 응시하며 그녀가 걸어왔다. 눈이 뿌예졌다. 이를 꽉 깨물며 참았다. 연신 웃어대며 잘 지냈냐, 나는 잘 지냈다 형식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침묵이 흘렀다. 내가 너를 무서워하면 너는 아예 마음을 닫아 버릴까 봐 우리에게 전부였던 초등학교 6학년, 그 1년에 대해서 이야길 시작했다. 무심하게 생각했던 그 1년의 힘은 위대했다. 덕분에 밝게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 혼자서 죽도록 병과 싸웠겠지. 치료를 열심히 받았을 거고,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렸을 거고, 좀처럼 끊지 못하는 커피에 편안한 잠 한숨 잤을까. 지금은 괜찮다고, 다시 좋아질 수 있다고 주문을 되뇌며 나는 그 친구의 곁을 지켰다. 때로는 다른 모습에 상처를 받기도, 때로는 정신 차리라며 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그렇게 그녀는 다시 세상과 마주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내가 알던 그녀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유쾌했고, 밝아졌다. 그러나 나는 온전치 못했다. 내게 전해졌던 너의 부정적인 말들과 감정, 에너지들을 내려놓으려 나 자신과 싸웠던 그 모든 시간을 너는 헤아릴 수 있을까. 그렇게 친구 모르게 연신 눈물을 닦아대던 날들이 얼마인지 2번은 없겠지, 너라면 이겨낼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니까, 하지만 다음은 그녀가 아닌 내가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속 깊이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낮에 걸려온 갑작스러운 전화였다. 나만 알 수 있는 특유의 말투와 목소리의 온도가 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유난히 스트레스받던 최근의 일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는 남편에게 상의를 했고, 남편은 내게 말했다. 더 이상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으며, 그만 놓아줘야 할 때라며 냉정하게 말했다. 나를 잘 아는 그는, 내가 그녀를 버렸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할 나를 예상했으리라. 이에 그 감정을 버릴 수 있는 길까지 만들어줬다. 이제는 혼자가 아님을. 내가 고민하는 부분은 남편인 그가 함께 고민을 해야 하고, 답 없는 이 상황을 한번 더 지켜보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모든 연락을 끊었다.


그녀가 없다는 사실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슬펐다. 하지만 그 슬픔의 시기를 지나자 깨달았다. 후회 없이 친구를 사랑했기에 남은 미련이 없었다. 너를 포용할 수 있는 나의 그릇은 거기까지였나 보다. 조건 없이 순수한 나이에 만나 가까워진 우리. 무슨 일을 하든, 수입이 어떻든, 다르게 놓인 상황에서도 함께 있는 시간만큼은 웃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했던 무수히 많은 날들. 


부디 그녀가 가진 풍경의 정원을 잘 가꿔 나갔으면 좋겠다.

내 인생의 불행이자 행운이었던 나의 단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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