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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비 Nov 15. 2018

오직 둘만,

바르셀로나, 처음 보는 남녀의 낯선 하객이 되다.

 

 장바구니를 든 동네 사람보다 카메라를 둘러멘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바르셀로나 보케리아(Boqueria)시장 한복판에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은 커플이 등장했다. 한창 시장 구경에 들떠 여기저기 흩어졌던 시선이 순식간에 한 곳으로 모였다. 평소에는 엄두도 내지 않는 옷들로 한껏 멋을 부린 관광객들도 커플의 드레스코드를 차마 감당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La Boqueria, Barcelona ⓒbyhuman




 “여러분 우리 결혼해요!”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의 근황이 대충 짐작됐지만, 여전히 곳곳에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여름 달궈진 백사장에서 정장 차림의 피서객을 만난 것 마냥 어색하고 당황스러운 시선이 쏟아졌다. 제 아무리 8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유럽 최대 시장이라지만 웨딩화보에 담을만한 우아한 장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덕분에 시장 곳곳에 스며든 어색하고 오묘한 감정들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갔다. 하루 방문객만 30만 명이 넘는 도떼기시장에 용감하게 몸을 던진 신혼부부는 불편한 시선은 아랑곳 않고 시장을 뛰어다녔다. 곧 엄마에게 등짝을 맞을 것 같이 불안한 천방지축 아이처럼.

 혼전 신혼여행이라도 온 걸까. 부위별로 토막 난 생선, 커다란 돼지 뒷다리(하몽)가 한 번뿐인 웨딩화보의 값싼 배경이 됐다. 눈치보다 걸음이 빠른 아이들이 렌즈 속으로 계속 뛰어들었고, 관광객의 발길도 쉴 틈이 없다.

 지나치게 평범해 여전히 정체불명인 두 사람은 정작 방해꾼들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사진사에게 ‘치즈와 브이’를 강요할 권한조차 주지 않고 작정한 듯 시장바닥을 휩쓸고 다녔다. 보케리아시장의 명물 ‘1유로 과일주스’가 그들의 유일한 촬영 소품이었다.


La Boqueria, Barcelona ⓒbyhuman


La Boqueria, Barcelona ⓒbyhuman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고 싶었어요!”

La Boqueria, Barcelona ⓒbyhuman


 웨딩화보라고 하기엔 격을 깨도 너무 깼다. 몇 차례 자리를 옮겨 구도를 바꾸긴 했지만, 그럴싸한 연출은커녕 그 흔한 반사판 하나 없었다. 견디지 못하고 던진 질문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고 싶었다’는 말이 툭하고 돌아왔다.

 

 신부의 웨딩드레스에 시선이 멈췄다. 원래는 말끔했을 새하얀 드레스가 끌릴 대로 끌려 검게 변해 있었다. 머릿속에 세탁비부터 떠올랐다.  

  화들짝 놀란 사람들이 바닥을 가리키며 신부에게 오지랖을 떨었지만 정작 당사자는 힐끔 쳐다볼 뿐이었다. 예비부부답게 남자의 검정 구두에도 흙탕물이 잔뜩 튀었다. 보조까지 들러붙어 드레스를 성심껏 모시는(?) 일반 웨딩화보 촬영장과는 달리 찬밥 신세였다.

 여자는 드레스를 신경 쓰는 대신 더 자주 남자를 바라봤다. 웨딩드레스에 흙먼지가 더할수록 두 사람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번갈아 담았다.


 한 번 본 적 없는 생경한 모습에 넋을 빼앗긴 사람들이 겨우 정신을 차렸다. 어디서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박수소리가 한달음에 퍼졌다. 강제 초대된 하객(?)들은 멀리 집에서부터 품어온 여행자의 설렘과 이곳에서 갓 모은 행복의 기운을 두 사람에게 아낌없이 나눠줬다. 여기저기 축하의 소리가 들려왔다. 재주가 좋은 청년은 휘파람을 길게 늘어뜨렸고 스페인어에 서툰 외국 사람들은 양손을 들어 엄지를 치켜세웠다. 태어난 곳이 모두 다른 하객들은 제각기 자신만의 언어와 방식으로 예비부부에게 축하 메시지를 전달했다. 방법은 달랐지만 마음은 같았다. 모두가 난생처음 마주한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했다. 둘을 둘러싼 풍경은 필요 이상으로 평범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특별했고 차려입지 않은 하객들에게선 사람 냄새가 물씬 났다.  

 

 꼭 이곳이 아니어도 좋을 뻔했다.

 둘은 그저 더 많은 사람 앞에서 서로를 담고 싶었던 거다.

 한동안 걸음을 멈추고 ‘모르는 남녀’의 로맨스를 축하했다. 웬만해선 걸음을 멈추지 않는 관광객들을 이토록 오래 잡아둔 일반인이 또 있었을까.


두 사람의 시선을 쫓았다. 일면식도 없는 낯선 하객들의 오두방정에 주변을 살필 만도 한데 여전히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둘 말곤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1유로 과일주스와 생선 비린내, 국적불명의 수다소리, 젤리 가게 앞에 주저앉은 아이의 찡그린 표정. 특별할 것 없는 보통날을 적어도 두 사람은 두고두고 곱씹겠지. 기념일에 억지로 꺼내보는 빛바랜 추억이 아닌 서로의 눈 코 귀에 담겨 매 순간 떠오르는 찬란한 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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