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동빈 Jul 05. 2021

<젊은 ADHD의 슬픔>을 읽고

ADHD의 기쁨과 슬픔


    정지음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20년 말 브런치 북 수상 배너에서였다. 임상심리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지라, 여러 수상작들 중에서도 ADHD라는 정신병리에 대해 다룬 <젊은 ADHD의 슬픔>이라는 제목의 브런치 북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심리학을 업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심리학을 다룬 글을 읽는 것을 즐기지는 않아 "오 제목이 신박하군!"하고 그냥 넘어갔던 것 같다.


    그리고 2021년 2월 설 연휴 즈음, 우연히 '클럽하우스'라는 음성 매체 플랫폼에서 정지음 작가와 대화할 기회가 생겼는데, 어찌나 이야기를 재밌게 하는지 동이 트기 직전까지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듣기만 했는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이후 꽤 자주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대화를 나눌 때마다 복근이 생길 정도로 웃었던 나는 이렇게 웃긴 말을 쓰는 사람은 얼마나 재미있는 글을 쓸지 궁금증이 생겨 브런치에 등록된 글들을 읽기 시작했다.


    브런치 북에 실린 글들은 내 예상과는 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마냥 유쾌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물론 중간중간 유쾌한 부분들도 많이 나오긴 한다), ADHD라는 질환으로 인해 타인과 세상,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벌이며 고군분투하고 때로는 울고 웃었던 지금의 정지음이 되기까지의 과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저작권의 문제만 없다면 이 글들을 <ADHD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을 붙여 책으로 내도 괜찮겠다고 혼자 생각해봤다.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그의 삶에 대한 자기 성찰적 태도였다. 유쾌한 자기 비하로 가득하지만 그 사이에는 자기 자신과 타인의 성향을 면밀히 관찰하고 자신이 가진 질환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을 보상하기 위한 온갖 책략이 가득하다. 이런 성찰은 심리학자인 나 조차도 잘 해내고 있지 못한 부분이라 부러우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러한 점에서 그녀의 글을 이삼일만에 호로록 읽어버리고 열렬한 팬이 되어버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이 브런치북은 최근 민음사에서 <젊은 ADHD의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전에 읽은 글들이 매끄럽게 다듬어지고 새로운 글들도 많이 추가되었다. 기존의 글보다 유쾌한 날 것의 표현들이 조금씩 빠져 책 제목에 더욱 걸맞게 조금 더 슬퍼진 느낌도 들었지만, 그만큼 깊이와 의미가 더해진 것 같다.


    책의 말미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나는 무궁무진하고, 어떤 면에선 무고하다고.
무미건조한 일상은 무사함의 증명인 거라고.
단지 상상력 하나로 머릿속에 무성영화 상영관을 차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무수히 많은 날을 살며
그래도 무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무용함과 무용은 한 끗 차이라
하릴없이 삐걱대는 나날도 전부 춤이었다고 말이다.


    이 글을 읽고 박막례 할머니가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왜 남한테 장단을 맞추려고 하나. 북 치고 장구치고 니 하고 싶은 대로 치다 보면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추는 거여.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어 보이지만, 젊은 ADHD인 정지음이 앞으로도 자기만의 이따금 슬프지만 대체로 유쾌한 자신만의 장단에 춤을 추며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과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를 써볼까>를 읽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