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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반니 Dec 28. 2021

세계 최강 무다리

세계 최강 무다리로 희망을 이야기하다.  

"덥지 않으세요? 한 여름에도 반바지 입은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네, 저는 반바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별로 더운지 모르겠어요."



"약사님은 긴치마를 좋아하시나봐요."

"네, 저는 짧은 치마를 안좋아해요. "




 항상 동일한 레파토리의 대화가 이어진다. 이제 습관적으로 대답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늘 속마음은 반대말을 한다.



한 여름에 긴바지 긴치마를 입는데 어떻게 덥지 않을 수가 있겠어?

어떻게 365일 긴치마만 입고 싶겠어? 가끔 짧은 바지, 짧은 치마도 입고 싶지!



 나는 지금부터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나의 비밀을 이곳에 털어놓고자 한다.

 긴 바지, 긴 치마 안에 숨겨진 나의 비밀, 바로 세계최강 무다리에 대해서 말이다.


 어릴 적부터 나를 괴롭혀온 컴플렉스는 작은 키도 작은 눈도 아니었다. 바로 통통한 몸, 그리고 튼실한 종아리였다.


 '꿀벅지'가 핫할 때가 있었다. 그 시절 유이, 소유 등 '꿀벅지'라는 수식어가 붙은 여자연예인들의 인기가 엄청났다. 심지어 허벅지가 굵은 사람들이 성인병에 안 걸리고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꿀종아리'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 어디에도 종아리가 굵어 '꿀종아리'라는 수식어가 붙은 여자연예인은 없었다. 비교적 몸이 통통한 연예인들도 종아리만큼은 일자로 곧게 뻗어있었다. 조금 통통한 연예인을 보며 혹시 '저 사람도 .. ?' 란 희망을 갖곤 했다. 하지만 어김없이 몸 전체가 통통해도 단 한군데. 종아리는 가늘고 길었다. 그때마다 느껴지는 배신감이란. 마치 베스트프렌드가 나에게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알아버렸을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중학교 시절, 나의 다리는 친구들의 놀림감이었다.


 "야! 넌 어떻게 이렇게 다리가 두꺼울 수 있냐? 대박!!!"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나를 놀려대던 친구가 있었다. 


 "넌 얼마나 잘났다고 그래!! 내가 너보다 다리는 두꺼워도 공부도 더 잘하고 친구들한테 인기도 더 많다구!!"

 그럴때마다 속마음으로 그 친구에게 소리쳤다. 


"나한테 왜그러는데 정말... 내가 너한테 뭐 잘못한거라도 있어?"

때론 울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저 함께 웃을 뿐 나는 그 친구에게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요즘도 종아리를 보면 그 친구 얼굴과 목소리가 떠오른다. 그 당시에 나의 종아리는 정말 나에게는 너무 끔찍한 존재였다. 


 그런데 요즈음엔 짠하다. 너도 두껍고 싶어서 두꺼운 게 아닐텐데, 타고나길 두껍게 타고났고 튼실한 몸무게를 벼텨야 했으니 점점 더 두꺼워졌을텐데. 미안한 마음 뿐이다.



 그렇게 나는 성인이 되었다. 물론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달라진 건 없다. 그저 바지와 롱스커트로 가려졌을 뿐 내 다리는 여전히 두껍고 튼실하다. 하지만 그 다리를 보는 나의 시선은 조금 달라졌다. 두꺼운 다리의 덕을 보고있기 때문이다. 


 종아리가 두꺼워서 좋을 게 뭐가 있냐고? 


 스피닝 등과 같은 격렬한 운동을 해도, 10시간이 넘도록 서서 일하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나는 남들보다 좋은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 예전에는 두꺼운 종아리와 체력 사이의 상관관계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여러 건강 관련 논문이나 연구결과를 보면 근육질의 종아리는 분명 건강과 연관이 있다. 심지어 전문가들은 종아리를 '만성 질환의 건강 지표'라고 말하기도 한다. 국제 학술지 '당뇨병 치료'에 실린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의 경우 종아리가 가늘수록 동맥경화의 위험이 컸다. 

 종아리 둘레는 심장 펌프 기능과 대체로 비례한다. 종아리 근육 기능이 좋으면 그만큼 심장 펌프 기능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스피닝을 하루 2타임씩 타도 전혀 문제 없다. 하루 10시간 이상 서서 근무하는데도 컨디션이 좋기만 하다. 


(단, 이것은 근육질 종아리일 때 해당되는 이야기다. 붓기 가득한 종아리는 오히려 건강의 적신호이니 전문가와 상담해 볼것은 권한다.)



 누군가는 이걸 보고 정신승리라고 할 지 모르겠다. 그렇게 바라보는 시선도 이해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내가 두꺼운 종아리를 받아들이고 내 몸을 사랑하는 방식인것을.





 앞으로도 나는 나의 여러 컴플렉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내 나름 그 컴플렉스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다룰 것이다. 


  30년이 넘는 인생을 살아보니 모든 사람들은 종류가 다를 뿐,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모두 자기 나름의 힘든 부분을 안고 산다는 것,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사실이 때론 위로가 된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정말 밝히고 싶지 않은 나의 컴플렉스나 상처를 밖으로 드러내는 순간,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다이어트를 했다. 신체 검사를 앞둔 날에는 저녁을 먹지 않았고 변비약을 먹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동창들은 나를 작고 통통했던 아이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털실, 곰, 공 등과 같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 동창들은 나를 작고 말랐던 아이로 기억한다. 150cm 초반의 키에 몸무게가 40kg도 안되었던 몸으로 대학시절을 보냈다. 

 나에게 다이어트는 평생의 숙제이자 지우고 싶은 과거였다. 타고나길 작고 마르게 태어난 아이로 기억되고 싶었다. '금연 성공한 사람이나 다이어트 성공한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 말라'는 말처럼 다이어트에 성공한, 독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지우고 싶었던 과거를 밖으로 드러냈다. <다이어트+건강 둘을 잡다>는 끔찍했던 나의 다이어트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런데 이렇게 책을 쓰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토록 끔찍하게 느껴졌던 과거가 나를 작가로 만들어준 것이다. 그 과거를 통해 '작가'가 되고 싶다는 나의 버킷리스트가 이루어진 것이다. 




 어렵다.

 억지로 하라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단 한 사람이라도 컴플렉스나 지우고 싶은 과거를 밖으로 드러낼 수 있다면, 그리고 나와 같은 경험을 하길, 기도한다. 그것만으로도 이 글은 가치있다. 

 나의 세계최강무다리가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 있길. 


 

 내가 가진 많고많은 컴플렉스 중에 다음에는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할지,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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