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그 이름만으로 설레는 곳. 세 번째 쇼핑 이야기. Part 2
빈티지 쇼핑의 세계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
뉴욕에서 인턴을 하던 시절 같이 일하던 동생들은 틈이 나면 샘플세일을 다니고 빈티지샵을 다니던 나를 보고, 장난 삼아 “언니는 쇼핑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아요”라곤 했다.
그렇다고 내가 쇼핑중독이거나 과소비를 하는 건 아니다(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난 합리적인 smart shopper라고 자부한다. 물론 옷, 액세서리, 구두, 가방 등 모두가 나의 관심대상이라는 것이 문제이긴 할 듯. 하지만 이런 아이템들 중 어느 것 하나 포기하기 어려운 걸? 아름다운 것은 그 자체로 기쁨을 주니까.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술값이 아깝지 않다고 하는데 난 술이 아닌 내 몸에 걸치는 옷값이 아깝지 않을 뿐이라고 항변해보련다. 개인의 취향 문제이니.
어쨌든 뉴욕에 가기 전에도 flea market이나 바자회 같은 곳에서 구경하고 소소하게 쇼핑하는 걸 좋아했는데, 역시 뉴욕은 쇼핑의 천국이라는 말을 증명하듯 쇼핑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계기가 되었다. 빈티지샵이 나의 쇼핑 스킬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준 일등 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터. 이렇게 빈티지샵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사람들이 빈티지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빈티지는 결국 secondhand(중고품)라서일까. 일부는 왜 남이 쓰던 물건을 쓰냐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자연스럽게도 빈티지샵이 많지 않다. 최근 들어 빈티지샵이나 사이트들이 조금씩 늘어나고는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직 다양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
빈티지 쇼핑은 단지 남이 쓰던 물건을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패턴, 색감의 옷이나 가방을 보물 찾기처럼 발견해서 소장하는 의미, 또 fast fashion이 환경오염을 부채질하고 있는 요즘 시대에 리사이클에 동참하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빈티지샵을 다니다 보면 정말 빈티지라고 불릴 만한 소장가치 있는 아이템이 가득한 빈티지샵도 있고, 그냥 중고샵이라고 볼 빈티지샵도 있는 것 같다. 사실 중고명품점은 우리나라에도 꽤 있지만 단순히 누군가 위탁한 명품가방을 판매하는 곳에 그친다. 반면 뉴욕의 명품 위탁품을 파는 빈티지샵들은 각자의 색깔이 있고, 상품의 구성, 직원들의 태도 등에서 그 컨셉이나 분위기가 모두 다르다. 즉 나에겐 빈티지샵과 중고명품샵은 엄연히 다른 곳이다.
뉴욕에는 구글 지도로 빈티지란 단어만 검색해도 많은 샵들이 뜬다. 몇 년간 뉴욕의 빈티지샵이란 곳은 다 찾아다녀본 결과, 알짜배기는 몇 군데로 추려졌다.
첫 번째 주자는 바로 Tokio 7이다. 이스트 빌리지 쪽에 있고, 예전에 소개한 카페 아브라쏘 바로 옆에 있는 곳이다. 주인은 일본인 아저씨이고 스태프들은 거의 일본인 여자들인 곳. 이곳도 당연히 위탁 중고품을 파는 곳인데, 겐조, 마르니 같은 명품 브랜드의 옷부터 이자벨 마랑, 띠어리, 랙앤본, 이큅먼트 같은 브랜드의 옷까지 매우 다양하게 볼 수 있다. 특히 이자벨 마랑 옷이 꽤 많은 편인데, 위탁 고객 중 어떤 사람이 마랑 옷을 매우 좋아하는 것 같다. 아쉬운 건 명품 브랜드 옷은 너무 사이즈가 큰 옷 위주로 있는 점.
옷 외에 가방이나 선글라스, 스카프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가방보다는 옷이 선택의 폭이 큰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 멋진 가방을 찾을 수 있는 건 당연히 복불복인 빈티지샵의 특성 때문일 것 같다.
2018년 여름휴가에 틈을 내어 5번째로 뉴욕을 찾았을 때 폴 스미스의 남자용 서류가방을 데려올 수밖에 없었던 건, 레몬 컬러의 바디에 브라운 컬러의 손잡이와 테두리를 가진 스페인산 가죽으로 만든 부들부들한 핸드메이드 가방이 100불이었기 때문이었다. 약간의 사용감이 있을 뿐 거의 새 것 같았는데 컬러 때문인지 파이널 세일 중이었다.
서류가방의 쉐입을 가졌지만 전형적인 딱딱한 느낌의 서류가방이 아니어서 여행용으로 쓰면 딱! 이겠다 싶었고, 원래는 2000불 정도 하는 데다 레몬 컬러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기에. 레몬 컬러의 남자 슈트케이스라니, 역시 폴 스미스인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결제를 하던 중 우연히 옆에 서있던 (옷을 위탁하러 온) 남자는 가방 컬러가 너무 예쁘다고 나의 쇼핑을 거들어(?) 주었다.
토키오 7 매장은 정리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재킷 섹션, 블라우스 섹션, 니트웨어 섹션, 원피스 섹션 이렇게 나뉘어 있고 남자 옷도 꽤 있는 편이다. 매장 크기가 아주 큰 편은 아니지만 예쁜 아이템들이 많다. 다만 구두는 너무 중고라 살 만한 건 항상 거의 없는 편.
탈의실은 3칸 정도 있고 열쇠로 잠겨져 있는데, 입어볼 옷을 고른 다음 스탭에게 옷을 입어보고 싶다고 하면 탈의실 문을 열어준다. 기억으로는 한 번에 6벌까지만 입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옷을 여러 벌 들고 있으면 옷 개수를 세면서 스탭이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그리고 토키오 7의 단점이라면 (여자 스태프들은 친절하지만) 주인인 일본 아저씨는 무뚝뚝하고 별로 친절하지 않다는 점.
이런 빈티지샵을 가면 어느 옷가게나 마찬가지겠지만, 행거에 걸린 옷을 촥촥 보면서 또 옷을 들어 보면서 공중에 뿌려지는 먼지 때문에 기관지가 예민한 사람은 재채기가 나오게 된다.
한번 샵에 들어가면 1-2시간은 기본이라서 옷을 고르다 보면 재채기를 적어도 한 두 번씩 하게 되는데, 한 번은 내가 에취~하고 재채기를 하니 저쪽에서 옷을 고르던 어떤 아주머니가 Bless you라고 해줬던 일도 있었다. 가끔 길을 걸어가면서 재채기를 하면, 지나가던 사람도 Bless you라고 해줘서 재밌었는데. 이런 작은 습관의 차이가 여행의 묘미겠지?
excuse me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습관의 결과겠지만, 아주머니의 한마디에 왠지 기분이 좋아져 thanks로 화답했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랑 비슷한 일이 최근에도 있었다.
(2019년 봄, 이직의 틈을 타 갔던 오스트리아 여행 중 머물렀던 에어비앤비의 호스트는 중년의 아주머니 쉘리였는데 정말 매우 매우 활달하셨다. 첫날 저녁부터 함께 수다를 떨고 나니 문득 이상할 정도로 호스트가 영어를 너무나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인들은 영어를 워낙 잘하지만, 오스트리아에서 독일어 악센트가 전혀 없는 영어! tv도 독일어가 아닌 영어로 보기까지 해서 물어보니, 쉘리는 한 20년 전에 오스트리아로 이민 온 미국인이었다.
유럽인과는 뭔가 다른 미국인스러운 활달함 때문에 저녁때마다 거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 방에 들어와서 휴식을 취하곤 했는데, 한 번은 쉘리가 거실에서 영화를 보다가 재채기를 크게 했다. 나도 모르게 bless you를 외쳤는데, 그 한마디에 쉘리가 빵 터졌던 기억이 난다.)
빈티지샵 쇼핑은 마냥 성공하긴 어렵다. 복불복인 것. 하지만 득템을 못했어도 아쉽지만 뭔가 재미가 있다. 보물찾기라고 생각해보면, 보물은 항상 찾을 수 없는거니깐. 수시로 재채기를 일으킬 수 있는 쇼핑이지만 난 앞으로도 보물찾기 하듯 하는 빈티지샵 쇼핑을 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다음 빈티지샵은 어디로 할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