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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오 Apr 02. 2024

회사에 헌신하지 마세요.  헌신짝 됩니다.

이미 오래전 회사를 관둔 경단녀 아줌마가

 회사를 관둔 지 7년이 되었다. 정확히 한 회사에서 쭉 10년을 채우고 관뒀다.

 내 성격이 그랬다. 묵직하고 융통성 없고 거짓말 못하고 책임감 강하고.

 그 말인즉슥 바꿔 말하면 회사입장에서는 잘만 굴리면 노예로 쓰기에 손색이 없는 조건이었다.

 

 작은 중소기업이었고(말이 중소지 직원이 손에 꼽았습니다) 체계가 없다는 걸 깨닫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첫 직장이었고 다른 회사들은 어떤 시스템으로 운영되는지 알 길이 없었으니까.

 당연히 대기업이야 업무가 세분화돼 있어서 그나마 잡일 수준이 덜하지만, 나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중소기업. 그중에서도 중소소소소소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내가 10년 동안 한 일은 기본 경리직이었다. 말이 경리지 그냥 일당백이었다. 필요하면 중간에 해외 cs업무(영어 이메일 업무)도 봐야 했고 작은 회사에 회장님(사장님 아버지)이 계셨기에 비서 겸직이었으며 그야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필요하면 모든 역할은 다해야 했다.

 10년을 어떻게 버텼을까 생각해 봤는데 중간중간 물론 오너의 당근이 있었으리라. 지나고 보니 회사에서 똑똑한 인재들은 길어야 1년에서 2년을 못 버티고 나갔다.

 그럼 나는 왜 못 나갔을까. 어찌 보면 부족한 자신감에 도전을 두려워했는지도. 오래 익숙해져 버린 업무에 나 자신을 매몰시켜 버렸는지도 모른다.

 

 고인 물의 에피소드 하나 풀자면. 뭐 에피소드 풀자면 이건 시리즈도 나가야 할거 같은데..

 회사일 말고도 나는 사장님의 개인사업 뒤치다꺼리도 다 도맡아 했었다.

 그 수많은 잡다한 일 중에 하나는(어디라고는 못 밝히지만) 대학교 근처 원룸건물을 하나 관리했었다.(심지어 이건 사장님 와이프 명의) 그 건물에 방이 30개 가까이 된 걸로 기억나는데 기본 주요 업무는 들어오는 입주자들 입퇴실 할 때 정산을 했었다. 보증금에서 이사 당일 가스요금, 전기요금 두 개를 빼서 퇴실하는 사람 계좌에 송금하는 일. 거기다가 그 건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나에게 연락이 가게끔 내 연락처는 그 입주자들 모두에게 알려진 번호였다.

 

 결혼하고 신혼 때 새벽 4시에 문자가 울렸다. 내용인즉슨 여기 인터넷이 안 돼요! 블라블라블라...

 한 자취생이 개념 없이 보낸 문자였다. 그것도 그 새벽에 엄청 짜증 섞인 말투로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남편이 아 이 시간에? 여보 회사 권둬..

 그때 남편 말을 듣지 않은 것을 천추의 한이랴.

 그 뒤에도 뭐 노예의 삶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기가 막힌다. 오랜만에 옛 기억에 헛웃음이 나온다. 아니 사장님 그 정도로 돈 많이 주신 거 아니잖아요..

 그 당시 내 번호는 더 이상 내 개인폰이 아니었다. 대부분이 원룸 자취생들 문자로 도배됐었으니까. 하하하.

 그 건물 팔고 나서 어느 날 사장님은 나에게 고생했다며 소정의 수고비를 주셨더랬지. 그것도 일부러 직원들 다 들리게 회의실 문을 반 열고 주셨더랬다. 꽤나 예민한 사장님의 평소 행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때 직원들은 내가 무슨 특혜나 받는 걸로 생각했겠지. 자기네들은 보너스도 안 주는데..

 

 이거 읽는 여러분들. 절대 직원수가 손가락에 꼽는 회사는 가지 마세요.(가족 회사는 더더욱 아니 되오!!)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합니다. 체계가 잡힌 회사에 들어가세요.

 회사가 강남이라고요? 저 역시 어린 시절 회사가 강남인 거에 괜스레 우쭐대며 출퇴근했지만, 회사가 작던 크던 우리나라 일자리가 제일 많은 지역이 강남입니다.

 이상하다고 느껴도 오랜 노예 생활을 하다 보면 그 생활에 익숙해져 나오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헌신해도 아무도 안 알아줘요, 나만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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