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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오 Apr 05. 2024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출산의 고통

엄마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첫째를 출산하고 내가 느낀 감정은 아이를 낳았다는 벅찬 경이로움 다음으로는, 세상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으잉? 뭔 소리냐고?

 12시간의 진통 끝에 아이를 품에 안았지만 난 진통을 겪으면서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이래도 내가 안 죽는다고? 이게 말이 되는 고통인가?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인가? 죽을 듯이 아프다고만 표현하기에는.. 언어로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총을 맞는 고통과 먹는다고 하던데 총 맞으면 이 정도 고통인 건가.

  나는 아이를 낳고도 24시간 정도는 잠도 잘 수가 없었다. 산통에 대한 후유증으로 잠을 자면 계속 악몽만 꾸고 잠에 들지 못했다. 그 진통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아이를 분명 낳았지만 가시질 않았다. 누군가는 낳자마자 꿀잠에 들었다고도 하고 바로 걷는다고도 하고.. 잠은 잘 수도 있겠지만 걷는다는 건 내 기준에 거짓말이다. 자연분만을 했지만 당일은 화장실 가서 소변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냥 내 하체가 없는 느낌이었으니까.

 사회는 철저하게 이 고통에 대해 아주 디테일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고통을 겪은 여자들조차 '아기를 보면 신기하게 잊혀요'라고 말한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나도 4년 터울로 둘째를 낳았으니까..


 5년 전 두 번째 출산을 끝으로 이제 내 인생에 더 이상의 임신과 출산은 없다고 다짐했다. 둘째는 7개월부터 임신소양증이라는 난생처음 겪는 가려움증의 고통을 선사했다. 희한하게 새벽 2시면 어김없이 눈이 떠져 온몸을 벅벅 긁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얼음팩을 대고, 알로에도 발라보고, 맘카페에 임신소양증을 눈알이 빠지게 매일같이 검색했지만 뾰족한 대안은 없었다. 그렇게 두 달의 시간을 밤마다 울면서 꾸역꾸역 버티고 나니, 담당 선생님은 유도분만을 결정하셨다. 엄마도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말이다. 근데 여기서 또 한 번의 반전이 일어난다. 아이만 낳으면 그 고통 싹 사라질 줄 알았지. 이게 웬걸. 그 고통스러운 소양증은 출산 후에도 어느 정도 지속되었다. 내 몸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모기 물렸을 때 빼고는 살면서 딱히 가려움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둘째가 6살이 된 지금도 가끔 가려움증이 오는 시기가 있다. 이걸 고치려고 비싼 한약도 먹어보고 대학병원 피부과에서 알레르기 검사도 다 해봤지만,  난 알레르기 관련해서는 지극히 건강한 인간이었다.

 

둘째 낳고 남편이 찍어준 사진. 가슴에 얹어주자 신기하게 울음을 뚝 그친 아이. 내 목에는 소양증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신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고통만 허락한다고 했던가? 임신과 출산은 내 기준으로는 인간이, 그것도 연약하기 짝이 없는 여자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물론 잊히기 마련이다. 신은 인간에게 망각이라는 선물을 동시에 줬으니까. 그러니 둘째도 낳고 셋째도 낳는 거 아니겠는가.

 나 역시 시간이 약이라고, 이제 그 고통이 어느 정도였는지 감도 없고 기억에서도 흐물흐물 사라져 갔다.

 그리고 맘카페에서 흔하게 나오는 '둘째는 사랑'이라는 말을 키우면서 더 알게 되었다. 너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니 이 말을 속으로 만 번은 넘게 되뇌었을 것이다. 이제 머리 좀 컸다고 슬슬 반항하는 첫째를 대신해서 애교로 내 속을 풀어주는 둘째가 있어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어가고 있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출산은? 글쎄올시다... 이 생애 한 번으로 족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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