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라 장롱면허 - 여자도 운전 좋아해.
잠자고 있는 장롱 면허를 가진 여성 운전자를 위한 탈출기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베테랑 운전자는 아님을 먼저 밝힌다. 우여곡절 많았던 나의 경험과 운전을 하면서 내가 느꼈던 것을 쓰고 싶었다. 자동차라는 공간은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믿기에 나름 운전 예찬론자이기도 하다. 부디 이 책을 읽으면서 멋진 여성 운전자들이 거리에서 많이 보이기를 희망하면서 썼다. 여기서 오해는 금물! 도로에서 남성 운전자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남성 운전자의 면허도 잠에서 깨어나기를 소망하면서...
대학교 1학년, 아빠의 권유로 1 종 보통 운전면허를 도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1톤 트럭에 올라타서 운전면허 시험을 어떻게 보았는지. 몇 년 전 한 번 도전한 적이 있는데 클러치를 어떻게 밟아야 할지 타이밍도 놓치는 바람에 도로에서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첫 번째 운전면허는 필기는 한 번에 통과. 그리고 나면 운전면허 학원에 있는 시험장에서 T, S, 우회전, 좌회전 그리고 평행주차까지 시험을 보았다. 평행 주차는 잘못해서 점수를 깎이는 것보다 그냥 들어갔다 나오라는 운전학원 선생님의 팁을 잘 활용해서 시험 통과. 도로주행은 어이없게 한 번 떨어졌는데... 선생님이 떨어지는 학생의 예로 든 경우가 나에게 적용되었다. '안전벨트' 매지 않고 출발하다니.... 출발하자마자 몇 미터 안 가서 '멈추세요'라는 말과 함께 첫 번째 도로주행 시험은 끝이 났다. 그래서 두 번째 도로주행 시험만에 내게 1종 보통 면허가 생겼다. 하지만 대중교통의 천국, 서울에 산다는 핑계로 대학생 때 따놓은 1종 보통 운전면허는 장롱면허가 된 지 여러 해가 지났다.
한국에서 운전면허는 따 놓았지만 미국에서 본격적인 운전이 시작되었는데, 동시에 아직도 잊지 못하는 영어 흑역사가가 탄생했다. 필기시험만 합격하면 바로 미국 도로 주행 시험을 본다. 사실 너무 떨리기는 했지만 경찰관이나 제복 입으신 분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너무 근엄하다. 어쨌듯 내 자동차는 출발했고, 감독관의 지시를 받으면서 천천히 나가고 있었다. 드디어 이쯤이면 평행 주차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 운전 감독관이 'pull over, please' 라 말했는데 난 무슨 생각이었는지 남의 집 드라이브 웨이로 들어가 버렸다. (Pull over는 차를 잠시 세우는 것)을 말하는데 말이다. 내가 감독관 이어도 어이가 없었을 듯싶다. 엄격해 보이던 운전 감독관님은 웃으면서 다음에 다시 오라고 하며 돌아가자고 했다.
참고로 미국은 감독관님이 옆에서 길을 다 알려주신다. 쭉 가세요. 우회전, 좌회전, 차선 바꾸세요 등등등. 나 같은 경우에는 옆지기가 미리 코스를 알려주어서 대략 외웠지만 미국에서 시험 보는 분들은 한국과 달리 다 알려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이런 흑역사로 시작한 나의 운전 생활은 벌써 15년(장롱면허기간 빼고)이 되어 가고 있다. 그동안 나의 자동차 공간은 버지니아 울프가 그토록 이야기하던 나만의 방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운전이 좋았나 보다. 머리 아프고 마음 답답한 날도 운전대를 잡았고, 기분 좋은 날은 즐겁게 드라이브를 했으니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심리적인 이유도 있었다. 운전대를 잡을 때면 내가 자동차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즐거웠다. 교통체증 상황은 어쩔 수 없지만 내가 가속 페달을 밟으면 차는 나가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는 멈춘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삶이라는 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도 말하지만 '운전만큼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어'라며 나의 자신감을 내 안에 조금씩 쌓는 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