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베트남 사무실이 오픈한 지 5년이 되었다. 2017년 8월 1일에 근무를 시작했고, 법인 등록이 완료된 게 8월 5일. 그래서 8월 5일을 기념일로 하고 있다.
한국에서 회사 설립 기념일은 큰 행사가 아니었던 것 같다. 하루 쉬는 회사도 있고, 조촐한 기념식을 하는 정도였던 것 같은데 나도 많은 회사를 경험하지 않아 잘 모르겠다.
우리는 보통 연말 행사 - 구정을 기준으로 하므로 보통 1월에 연말 행사를 한다.- 와 회사 설립 기념일 행사를 크게 치르는데, 우리 회사에서는 규모가 어느 정도 커진 이후로는 호텔 연회장에서 행사를 치르고 있다.
호텔 루프탑 풀파티?
지난 구정 연휴 전에는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 연말 행사를 못했고, 대신 구정 후에 신년 행사를 했었다. 4성급 호텔의 경우 가격대가 합리적이기 때문에 100명 미만 행사를 치르기에 좋다. 연말 행사 때 여직원들은 한껏 꾸미고 드레스 입고 오느라 늦게 나타나기 일쑤이고, 남자 직원들도 평소의 후줄근한 티셔츠를 벗어던지고 나름 차려입고 나타난다. 아이가 있는 직원들은 아이를 데리고 오기도 하고, 결혼을 앞둔 직원들은 연인과 함께 오기도 한다.
그에 비해 회사 설립 기념일에는 매번 단체티를 맞춰 입고 있다. 그래서 좀 더 가볍고 편한 분위기가 된다.
또 다른 특징은 퇴사자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퇴사자가 회사 행사에 나타나기 쉽지 않은데 베트남 퇴사자들은 회사 행사나 회식자리에 자주 나타난다. 물론 그것도 본인의 성격과 기존 직원들과의 관계에 달려있을 테니 매번 오는 친구들만 온다.
베트남 행사에서 노래가 빠지긴 어려운데, 우리 회사는 직원들이 준비한 노래 한곡으로 행사를 시작한다.
각잡고 준비할 경우 이런 공연도...
행사에 따라 장기자랑을 하는 경우도 있고, 행사 뒤에 노래방 기계를 틀어놓는 경우도 있다. 돈이 많으면 전문 가수나 밴드, 뮤지컬 배우들을 섭외하는 경우도 있다.
그다음 순서는 보통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는 영상 시청, 대표님 훈화 말씀, 이런저런 시상식, 그다음 밥을 먹고, 몇 가지 게임을 한 뒤, 행운권 추첨 순서가 있었다. 물론 우리 회사 기준이고 다른 회사들은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행운권 추첨
행운권 추첨에는 가정에서 쓸만한 소형 가전 위주로 상품을 구성하는데 당첨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이런 행사 때는 전 직원이 모이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에 10분 정도 회사 실적이나 비전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회사 실적 공유
모두 다 회사에 관심이 많고, 배고픈 시간인데도 경청해서 들어준다.
일반적인 베트남식 연회장은 10명이 한 테이블에 앉고 코스로 음식이 나온다. 음식 가격도 테이블 단위로 계산한다. 즉, 한 테이블에 10명이 앉던 5명이 앉던 같은 양의 음식이 나오고 같은 가격이 책정된다. 연회장 정책에 따라 물과 음료 정도는 공짜인 경우도 있고, 맥주까지 공짜로 주는 경우도 있다. 저 위에 있는 테이블 사진처럼 원형 테이블에 중국집처럼 돌아가는 선반이 달려있다.
행사가 끝나고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2차를 가기도 하지만 공식적인 절차는 아니다.
행사 전으로 돌아가 준비 과정을 살펴보자.
HR 팀과 상의하여 행사 한 달 전에 날짜를 확정한다. 회사 설립 기념일 행사는 성수기가 아니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연말 행사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회사가 같은 시기에 행사를 하기 때문에 연회장 예약이 폭주한다.
일정이 정해지면 각종 연회장이나 호텔을 리서치해서 견적을 받는다. 호찌민 시내에는 결혼식장 같은 연회 전문 홀들도 많고 연회 시설을 갖춘 호텔들도 많다. 회사 규모가 작다면 식당 한층을 쓰거나 룸 하나를 빌려서 행사를 진행할 수도 있다.
1주년때의 조촐한 모습
행사 견적에는 식비, 마이크/스피커/빔프로젝터 사용료, 백드롭 인쇄비용, 사진사, 케이크, 샴페인 등 각종 항목의 비용이 따로 계산될 경우도 있고, 합쳐서 계산될 경우도 있어서 직접 비교가 쉽지 않다. 맥주값도 상당히 나오기 때문에 맥주 한 병에 얼마씩 받는지도 체크해봐야 한다.
외부 손님들을 초청할 경우에는 초청 명단도 작성해야 한다. 회사 성격에 따라 고객사나 협력사 대표들을 초청하는 경우도 많은데 예약 인원에 포함해야 하므로 연회장 계약 전에 어느 정도 픽스해둔다.
연회장 예약 시에는 50% 정도를 선금으로 보내고 나머지 금액은 행사 당일에 초과 금액까지 계산해서 카드로 결제한다. 베트남은 계약서 문화이므로 이런 연회장 계약 시에도 계약서를 작성하는 절차가 있다.
그 이후에는 HR팀에서 세부 프로그램들을 짜고 각종 예산 계획을 작성해서 올린다. 경품 구매, 상패 제작, 티셔츠 제작, 의상 대여 등. MC를 부르거나 따로 사진사를 고용할 경우에는 업체 선정과 계약 과정이 추가된다.
티셔츠 제작은 마치 한국에서 행사 때마다 기념 수건을 제작하는 것처럼 티셔츠 한가운데에 5주년 기념 굿즈라는 티를 팍팍 내는 디자인으로 한다. 미리 직원들에게 본인의 사이즈를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적도록 하는데, 올해는 티셔츠 제작 업체에서 사이즈별 샘플을 받아와서 사이즈 체크가 수월했다. 베트남 사이즈는 워낙 작아서 나 같은 경우 한국 사이즈 2XL, 미국 사이즈 XL을 입는데 베트남 티셔츠 기준으로는 5XL을 주문한다. 베트남 직원들은 이런 티셔츠도 자주 입고 다니므로 아깝지는 않지만 티셔츠 제작 비용이 한국보다 높은 편이다.
대표는 따로 PT 나 스피치 준비를 해야 되는데 나는 보통 당일치기로 하는 편이다. 만약 통역이 필요할 경우 미리 스크립트를 작성하거나 동시통역이 가능한 직원을 대동해야 한다. 물론 대표가 베트남어로 말할 수 있다면 최고겠지만.
올해는 한국 사무실에서 영상 축전을 보내주셔서 영상에서 스크립트 따고, 영어 번역 후, 베트남 직원이 베트남어로 번역한 다음, 사회자에게 실시간 더빙을 시켰다.
한국 회사 직원들은 회사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더 이상 즐기는 문화는 아닌 것 같다. 특히 업무시간 후 저녁시간을 할애해서 위와 같은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은 여간 간 큰 회사가 아니고서야 진행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 베트남은 이런 회사 행사를 순수하게 자기 일처럼 즐기는 편이다. 안 하고 넘어가면 난리가 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거리두기로 인해 외부에서 단체 행사를 할 수 없어서 사무실에서 마스크 쓰고 진행했던 3주년, 셧다운으로 인해 온라인으로 모였던 4주년 기념행사에서도 어쨌든 모두 모여 회사 생일을 축하하는걸 중요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아무래도 행사의 형식보다는 이런 마음들이 모여 함께 기뻐하고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