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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태제 Oct 30. 2022

어이없는 기관, 원자력연구원 취재기  

탐사취재로 드러난 원자력연구원의 어이없는 핵폐기물 관리 실태 

이번에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하면서 만난 가장 어이없는 사람들, 가장 어이없는 기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바로 한국원자력연구원이다.      

대전 유성구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원자력 분야의 유일한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다. 그곳에는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을 주로 하는 실험용 원자로 ‘하나로’가 있고, 핵연료 성능 개선을 위한 여러 연구시설들이 있다. 위험하고 보안상 중요한 시설이라 첩첩이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요새 같은 곳이다. 2017년 1월에 인터뷰를 위해 처음 그곳을 방문했을 때 홍보실 직원의 차량에 탑승해서 안으로 들어가보니, 여러 개의 장벽들이 실험시설이 있는 건물들과 외부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우리는 차량으로 몇 개의 장벽을 통과하고 차에서 내려 다시 육중한 철제 보안문을 통과한 후에야 실험시설이 있는 건물로 접근할 수 있었다. 원자력연구원에 대한 첫 인상은 ‘철옹성’이었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을 만들면서 나는 원자력연구원 내부로 네 차례 들어갔다. 2017년 1월, 원자력연구원 안에 고준위핵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 1,699봉이 보관되어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처음 들어갔었고, 두 달 후에 그 사용후핵연료를 이용해서 진행하고 있는 핵재처리 실험의 실상을 취재하기 위해 들어갔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일 년 후였는데, 방사성폐기물 불법 배출 사건과 원자력연구원 내부에 보관하고 있던 방사성물질의 도난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들어갔다. 철옹성 같은 원자력연구원에서 방사성폐기물이 무단으로 반출되고 도난사건까지 벌어졌다는 것은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2년여 동안 그곳을 집중 취재하면서, 그런 사건들이 벌어진 진짜 원인을 알 수 있었고, 그것이 핵산업계 혹은 원자력계의 고질적인 병폐로부터 비롯된 일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야기는 2017년 1월의 첫 방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나와 촬영감독은 홍보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연구원 깊숙한 곳의 보안시설로 들어갔다. 방사선구역 표시가 되어 있는 출입문을 지나 안으로 한참 들어가니 거대한 수조를 내려다볼 수 있는 시설이 나왔다. 책임연구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수조 안을 들여다봤다. 그곳에 사용후핵연료들이 들어 있었다. 

우리나라 핵발전소 중 약 85%를 차지하는 경수로의 핵연료봉은 지름이 약 1센티미터에  높이는 4미터나 되는 아주 얇고 긴 봉이다. 지르코늄이라는 피복재 안에 우라늄 연료가 가득 들어있는데, 이것이 핵발전소의 원자로 안에서 핵분열을 일으키고 나면 세슘, 스트론튬, 요오드, 플루토늄 등 아주 강력한 방사성 물질이 생겨나고 매우 뜨거운 상태가 된다. 이를 사용후핵연료라 하는데, 근처에 생명체가 있으면 즉사할 정도로 위험한 물질이라 열을 식히고 방사선을 차단할 수 있도록 수조의 물 속에서 담가둔다. 

그 사용후핵연료들이 다발 단위로 수조 안의 철제 프레임에 꽂혀 있었다. 새어나오는 방사선 때문인 듯, 수조 안의 물은 묘한 느낌의 푸른 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책임연구원은 옆에 있는 또 다른 수조를 가리켰다. 그곳의 물 속에는 거대한 원통 모양의 구조물이 세워져 있었다. 바로 사용후핵연료를 핵발전소에서 이곳으로 운반해올 때 담아왔던 운반용기였다. ‘캐스크’라고 부르는 것인데, 한 눈에 봐도 육중한 덮개와 두터운 외피로 만들어진 튼튼한 금속 용기였다. 이 캐스크에 담아서 전남 영광, 부산 고리, 경북 울진의 핵발전소로부터 사용후핵연료 1,699봉을 십여 년에 걸쳐 이곳 원자력연구원으로 운반해온 것이었다.     


사실, 우리는 사전 취재와 조사를 통해 이 사용후핵연료들을 운반해오는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에서 원자력연구원에 들어갔다.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하나는 운반용기인 캐스크의 안전성 시험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운반차량의 총 무게가 이동하는 고속 도로 중 교량의 하중을 초과했다는 것이었다. 이는 국회 쪽에서 나온 자료를 바탕으로 크로스체크를 통해 어느 정도 확인된 사항이었다. 안전성 시험을 제대로 하지 않은 운반용기로 이동 도로의 하중을 초과하는 무게를 싣고 달려왔다면 법 규정을 지키지 않은 위험한 행위를 한 것이었다. 이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극도로 위험한 물질을 다루는 연구기관이 안전불감증에 사로잡혀 있다면 심각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해당 사업책임자들은 인터뷰에서 운반용기의 안전성 시험을 거치지 않고 사용해왔음을 인정했다. 운반용기의 안전성 시험을 하도록 법령으로 규정해놓고 있는데, 이는 사용후핵연료를 운반하는 차량의 교통사고 등으로 인해 운반용기가 극한 상황에 놓일 때에도 방사능 유출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구체적으로는 9미터 높이에서 운반용기가 추락하는 경우, 1m 높이의 쇠막대 위에 운반용기가 떨어지는 경우, 운반용기가 섭씨 800도의 열에 30분간 노출되는 경우, 운반용기가 물 속에서 8시간동안 침수되어 있는 경우 등 4 가지 상황에서 방사능 유출이 없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원자력연구원은 이 안전성 시험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안전성을 검증받은 것이어서 상관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리고, 운반용기를 한 개 밖에 제작하지 않았는데 안전성 실험을 하다 형태가 변형되면 사용할 수 없으니까 실험을 할 수 없었다는 어이없는 답변을 내놓으면서 멋쩍게 웃었다. 그런데, 이 대목이 많은 시청자들을 분노하게 했다. 원자력연구원의 안전불감증을 질타하고, 어떻게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냐고 거세게 비판하는 댓글들이 수도 없이 달렸다. 

더욱 어이없었던 것은 사용후핵연료를 운반해온 차량 무게가 운반 경로 위의 교량이 감당할 수 있는 하중을 초과했는데도 모르고 계속 운행해왔다는 것이다. 이미 2014년 국정감사 기간에 경부고속도로 노선상에 설계하중이 32톤밖에 되지 않는 교량이 상당수 있다는 사실이 보도된 바 있는데, 사용후핵연료 운반용기 무게를 포함하여 총 43톤 무게의 운반 차량이 십여 년간 경부고속도로를 질주해왔던 것이다. 관계기관에 확인해보니, 운반용기를 싣고 부산에서 대전까지 오는 동안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교량을 최소 20개 이상 지나온 것으로 드러났다. 원자력연구원의 담당 책임자는 자신들이 직접 현장 확인을 다 해서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증거를 들이대자 고속도로가 그런 줄 미처 몰랐다고 말을 흐렸다. 그리고는 앞으로 경부고속도로가 아니라 광주 쪽으로 우회해서 운반하는 경로를 찾아보겠다고 말을 돌렸다. 도통 신뢰가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원자력연구원은 언제나 위험한 핵물질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통제하고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러나, 실상은 늘 그들의 말과 어긋나 있었다. 원자력연구원은 사용후핵연료를 이용하여 핵연료 성능개선을 위한 연구를 하고, ‘듀픽’ ‘파이로프로세싱’ 등 핵연료 재처리 공법들을 연구해왔다. 이들 연구는 핵연료봉을 뜯어서 분말로 만들거나 가공하는 과정을 거치지 때문에 강한 방사능을 띤 물질들이 밖으로 흘러나온다. 그 중에는 공기 중으로 퍼지거나 물에 섞여 외부로 확산됨으로써 방사능 피폭의 주된 원인이 되는 세슘, 요오드, 크립톤, 스트론튬 등이 있다. 

요오드는 갑상선암의 발병 원인이 되는 물질이고, 세슘과 스트론튬은 백혈병, 골육종, 심장병 등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 당시에도 요오드, 세슘, 스트론튬이 공기와 물로 퍼져 주민들과 인근 자연환경에 서식하는 많은 생명체들을 피폭시켰다. 그러다보니, 이들 방사성 물질이 실험실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인터뷰를 할 때나,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할 때마다 원자력연구원 측은 이들 방사성물질을 특수필터로 99.9999% 흡수해버리기 때문에 연구원 밖으로는 전혀 나가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세슘 20만 베크렐을 외부로 방출한 것으로 드러나자, 뒤늦게 그 양이 기준치 이하라며 문제될 것 없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그들의 해명이 무색하게 어이 없는 일들은 계속 벌어졌다. 원자력연구원 내부에서 방사능으로 오염된 흙을 야산에 몰래 매립하기도 하고, 방사능 오염구역에서 배출된 금속 폐기물들을 고물상에 팔아넘기기까지 했다. 규정상 금지되어 있는 방사성물질 소각행위도 공공연히 이루어졌다. 방사성 물질을 소각하면 대기 중으로 방사성 물질이 확산될 위험이 있는데도 말이다. 이 모든 사실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018년도에 원자력연구원에 벌금을 부과하고 형사고발을 함으로써 외부로 알려졌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2020년에는 세슘이 물에 섞인 채로 우수관을 통해 방출되어 인근 주민들과 어린이들의 쉼터이자 생태체험장인 관평천까지 오염시킨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다. 이렇게 알고 했건 모르고 했건 원자력연구원은 호언장담과는 정반대로 방사성폐기물을 외부로 수없이 방출해왔다. 그 중 가장 황당했던 사건은 2018년에 외부로 드러난 방사성물질 도난사건이었다.     


2018년 초, 내부 사정에 정통한 취재원으로부터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비밀리에 원자력연구원을 조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전 취재를 진행해보니, 서울 공릉동에 있던 실험용 원자로 ‘트리가마크III’를 해체하면서 발생한 납 34톤, 그리고 원자력연구원 내부 시설에서 사용되었던 구리 전선 5톤과 순금 패킹 259.2그램이 없어진 사건이었다. 없어진 납과 구리, 금은 모두 방사능 구역에 있던 것들이어서 방사성 물질로 오염되어 있는 금속들이었다. 이렇게 방사능으로 오염된 금속들이 시중에 유통되고 재활용 재료로 사용된다면 시민들이 피폭당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었다. 납땜의 원료로 쓰는 납, 전선이나 동전의 재료로 사용되는 구리, 금반지나 금이빨의 재료로 쓰이는 금 등, 그 사용처를 상상해보면 머리칼이 쭈뼛 설 정도로 심각한 일이었다. 

알고 보니 이 도난 사건은 2006년부터 몇 년에 걸쳐 발생한 것이었고, 원자력연구원에서 내부 조사가 진행되었다가 진상을 규명하지 못하고 덮었던 사건이었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몇 개월에 걸쳐서 조사를 한 결과 이 도난 사건은 사실로 드러났다.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요새처럼 몇 겹의 장벽으로 외부와 차단되어 있는 원자력연구원 안에 있던 방사성 금속들이 어떻게 외부로 빠져나갔을까였다. 적은 양도 아니고, 도합 40톤 가까이 되는 엄청난 양인데, 이걸 어떻게 몰래 빼돌릴 수 있었을까? 원자력연구원의 구조를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내부자의 소행 혹은 내부자의 공모가 있었을 것이라 단언했다. 

취재 결과, 이들 물량의 반출 기록은 전혀 없었고, 당연히 사라진 금속들이 어느 정도의 방사선량을 갖고 있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2009년에 사라진 구리를 다시 찾아오려고 했으나 이미 유통업체에 매각되어버려서 포기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원자력연구원의 내부자료에 기록되어 있는, 사라진 금속들이 사용되었던 시설의 방사선량을 바탕으로 이 금속들이 가진 방사선량의 정도를 가늠해보았을 때는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아무런 기록이 없이 사라졌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빼돌리는데 내부자가 가담했거나, 방사성 물질에 대한 관리의식 자체가 너무나 희미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누가 왜 빼돌린 것인지를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공은 검찰에 넘겨졌다.      


명색이 원자력 분야 유일한 국가연구기관인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보여준 행태는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안전의식과 책임감이라고는 찾을 길 없는 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마도 그들은 “내가 최고의 전문가인데 내가 판단해서 하면 되지 누가 우리를 감시하고 규제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게 해 온 결과가 방사성 폐기물 무단 유출과 매각, 불법 매립, 시민들 몰래 사용후핵연료를 반입해오고 위험한 실험을 진행해온 것들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대전 시민들은 원자력연구원 폐쇄를 부르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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