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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선 May 05. 2023

창작이란 고통의 길

보이지 않는 손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인생 선배와 대화를 나누는 중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창작은 고통인데, 왜 창작하려고 하세요?'

저는 몇 초간 생각을 정리하고 답했습니다.

'그러게요. 창작은 정말로 고통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완성한 작품을 마주할 때 오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에요.'


임신한 여인이 10달간 몸의 수고로움과 출산의 고통을 감내하는 까닭도 사랑하는 아기의 탄생의 기쁨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겠죠. 물론 그 생명과 창작에 대한 사랑의 온도는 비교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사실 저는 답을 온전하게 다 말하지 않았습니다. 성취감도 분명 있지만, 그 작품을 통해 혹시 얻게 될지 모르는 성공을 기대하는 이유도 분명 있으니까요. 그런데 조금 더 멋진 답으로 포장하고 싶어서 욕망 하나를 그림자 취급했습니다. 내가 그림자 취급하니 검게 변한 욕망이 바닥에 붙어 제 발목을 따라다닙니다.

 

모든 동물이 안락한 처소와 풍부한 먹이를 갈망하는데, 좀 더 윤택해지는 생활을 염원하던 욕구를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던 이유는 제가 크리스천이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저는 그 질문으로 창작은 왜 고통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창작자는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어떻게 발전해야 할지,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을 열고 뒤적여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나의 뇌를 헤집으면 당연히 편할 리가 없겠죠. 이때 단번에 손에 잡히는 것은 성에 안 찹니다. 사람들의 반응과 찬사를 얻을 수 있는 작품을 꺼내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건 아냐, 이것도 아냐, 다른 건? 더 좋은 건?'이라고 하며 보이지 않는 손은 우리 뇌의 구석구석을 요란하게 뒤 흔듭니다. 그렇게 두통이 찾아옵니다.


너무 과도하게 자기 자신을 신경 쓰면 우울증에 걸린다고 합니다. 우리 내면을 파헤쳐서 들여다보면 딱히 좋은 것은 잘 나오지 않거든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수치를 마주하고 자기비판과 혐오에 들어갑니다.  


창작은 끊임없이 '나'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발상부터 완성까지 나의 생각과 능력이 요구됩니다. 거기에 더해 더 잘하고 싶다는 욕망은 비판과 검열로 마음을 옥죄게 됩니다.


거듭 파헤치다 보면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결핍을 만나게 됩니다. 반갑지 않은 열등감과 수치심을 때때로 느껴야 하는 숙명이 있는 셈이죠. 그러니 참으로 창작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창작자란 어떠한 방으로자신의 내면을 혹사시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저를 비롯한 창작자를 응원하고 격려합니다. 특히 크리스천 창작자들을 위해 마음을 씁니다. 안 그래도 힘든 십자가 길이 자기 부인인데, 창작으로 내면을 직접 부서 나가야 하니까요. 부서진 그 자리에서 채워지는 것은 절대적인 창조주의 능력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 능력으로 창작의 고통 속 성화의 과정을 얻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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