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2장 27-28절
성경에서 좋아하는 이야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야곱'이 우선순위에 들어간다. 나에게 있어 야곱 이야기는 단지 좋아함을 넘어서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고난의 시간들 가운데 야곱을 많이 묵상하게 하셨고, 그 장면 장면들을 통해 기도의 응답을 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 야곱은 워낙 인간적인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나기로 유명하다. 그런 탓에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야곱을 통해 동질감을 느끼며 마음 한편의 위로를 받기도 한다. 야곱은 자신의 존재를 찾기 위한 갈망이 컸다고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형의 발 뒤꿈치를, 장자권을, 아내를 얻기 위해, 형에서 살아남기 위해, 계속해서 인생의 고난을 겪으며 갈급함 속에 허덕였다. 그 연약했던 마음에 담겨있던 욕심, 질투, 절망, 두려움을 지나 결국에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으로 이른다. 마침내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게 되는 변화로 야곱 같은 인생을 사는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새 힘을 얻는다.
브니엘에서 하나님의 사람과 씨름하는 장면은 야곱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지 앓을까. 어렸을 때는 왜 길에서 만난 사람(하나님의 천사)을 기어코 이기려 했던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야곱은 참 고집이 어마어마하게 센 사람이구나' 하고 혀를 찰 뿐이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야곱이 밤새워 씨름해야만 했던 이유, 그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만큼 야곱은 두려웠던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보내줄 수 없을 정도로 구원(생명)을 향한 갈망이 컸다. 누군가 나를 죽이려고 좇아 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얼마나 공포일까? 얼마나 생명에 대한 간절함이 생길까. 나를 살려 줄 수 있는 존재에 대해 끝까지 매달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그 두려움이 강할수록 절박함이 더 커져갔다. 이런 상황에서 야곱은 언제나 포기하기보다 씨름하는 자였다. 절망 속에 빨려 들어가 낙담하기보다, 간절함을 오기로 승화시켜 씨름하는 사람이었다. 구원을 향한 간절함이 하나님께 닿았다. 야곱은 마침내 축복을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과 씨름하다가 허벅지 관절을 다치게 되어 야곱은 그다음 날 절음 발이 가 된다. 세상적으로 보면 그는 더 절망에 빠져야 마땅하다. 그토록 두려워하는 형을 피해 쏜살같이 달아날 수도 없는 몸이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야곱은 오히려 형을 향해 나아갔다. 이전의 두려움이 아닌 사랑으로 용서를 구했다. 야곱이 씨름했던 그 밤, 그는 변화됐다. 바로 전능자의 동행함을 신뢰함으로.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창세기 32장 24-25절]
나 역시 그랬다. 나는 야곱 같은 사람이었다. 나의 삶과 존재의 대한 깊은 갈망과 욕심이 있어왔다. 그래서 인생의 깊은 수렁 가운데 늘 갈급함이 있었다. 나의 존재가 구원받길 갈망했다. 이러한 갈망은 고난 가운데 넘어질지라도 결국 주님께 매달림이 언제나 결론이었다. 야곱이 브니엘에서 천사와 씨름한 것 같이 말이다.
야곱의 이야기가 나에게 조금 더 특별한 이유는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야곱의 말씀으로 묵상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북샤인 출판사를 시작하라는 마음을 주셨을 때도 그랬다. 28살, 이직을 위해 잠시 퇴사한 때였다. 처음에는 그 부르심이 너무 부담스러워 계속해서 외면했다. 물론 내 사업이야 언젠가 하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그게 그때 당시는 아닌 것 같다고 스스로 판단했다. 나이도 어렸고, 제대로 된 출판사 경력도 없었다. 그래서 출판사에 먼저 취직한 후 천천히 배우며 준비해볼 요령으로 하나님께 타협하려고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스펙도, 모아둔 돈도, 경력도 없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월급을 받지 못하게 되는 불안감이 너무 큽니다. 조금 더 준비하고 시작하면 안 될까요?"
하지만 ‘지금 시작하라’는 부르심의 마음은 계속해서 사라지지 않고 강하게 울렸다. 약 3개월 동안 나는 이 문제로 고민하고 기도했다. 사실 기도라기보단 하나님과 협상해보고자 했던 일방적인 오기였다. 내가 계속 머뭇거리며 두려워 하자 마침내 확고하게 말씀하시는 단계까지 찾아왔다. 그때쯤 한 주에 예배를 드리러 교회를 나가는 일정이 많아진 시기가 있었다. 1주일간 3번의 예배를 드렸는데, 신기하게 모두 같은 본문 말씀과 설교를 들었다.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도 모두 달랐고, 교회에서 해당 본문을 정해놓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 본문은 바로 야곱이 집에서 도망쳐 길바닥에서 잠을 청할 때 하나님이 찾아와 주신 언약의 말씀이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창세기 28:15]
반복됐된 설교를 들을 때마다 하나님이 내게 똑같이 말씀하시는 것을 느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겠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않고, 너의 모든 생활을 책임지겠다. 너를 인도하는 것은 전능하신 나 여호와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
3번째 같은 설교와 말씀을 듣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무릎 끊고 결단할 수밖에 없었다. 더는 외면할 핑계를 찾을 오기를 부리지 않았다. 나는 그날 야곱과 동일한 서원을 했고, 하나님도 내게 동일한 언약을 주셨다.
또 개인적으로 큰 고난의 사건으로 인해 집을 도망처 나와서 기도원과 교회에서 지내는 시간들이 있었다. 그때도 목사님이 상담을 해주시며 야곱의 도망과 회복의 관한 얘기를 나눴다. 내가 길바닥 위에 있을지라도, 갈 곳 없는 신세일지라도, 나와 함께 하시는 동행하시는 주님을 묵상하게 하셨다. 이 외에도 얼마나 많은 브니엘의 씨름이 있어왔던지 모른다. 나는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고 그만큼 절박했다. 때로는 가슴 깊이 쌓인 원망을 토로하기도 하고, 절망 가운데 울분을 토하기도 하면서, 실오라기 만한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인생의 문제를 두고 주님께 갈구하기도 했다. 그때의 씨름하는 그 자리는 고통스러웠을지라도 지나고 보니 더욱 주님을 알아갈 수 있었던 은혜의 시간임을 고백하게 된다. 씨름하다 절음 발이가 될지언정 하나님과 동행이 더 완전하다는 믿음을 얻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인생의 수렁마다 브니엘에 이른다. 그곳에서 밤새 주님을 구하고 씨름하다 보면 인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것들이 하나, 둘 깎여 나가게 하신다. 그 브니엘에서의 씨름했던 날들,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질 그 동행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마음이 있어왔다. 내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하며, 야곱같이 연약한 나를 어떻게 인도해내고 계시는지 그 브니엘의 일기를 차곡차곡 남겨보려고 한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 대답하였다.
"야곱입니다."
그 사람이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과도 겨루어 이겼고, 사람과도 거루어 이겼으니,
이제 네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창세기 32장 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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