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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선 Dec 20. 2021

언제라도 STOP 할 수 있어?

사무엘상 15장 22절

비전 지향적인 사람에게는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특히 그 일이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정체성과 연결된다면 일의 중요성은 더 증가한다. 화가에게 그림이, 작가에게 글이, 사진가에게 사진이, 운동인에게는 자신의 운동 종목 등, 직업이 곧 나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이때의 일은 단순히 돈벌이의 수단을 뛰어넘는다. 인생의 비전을 주는 삶의 목표로서 정체성의 중심이 된다. 이러한 비전은 꼭 예술이나 운동 종목 안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 없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성실히 임하는지에 따라, 누구나 비전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일에 열정과 사랑이 있는 사람의 반짝이는 두 눈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의욕이 넘쳐흐르는 에너지를 받다 보면 주위까지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다. 비전적인 사람들에게는 꿈과 함께 성숙된 인생의 아우라가 있다. 모진 풍파를 이겨내며 맡겨진 자리를 숭고하게 지켜낸 이들, 한편으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서 전문가가 된 이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고 때때로 경이롭게 여기기도 한다. 


현시대는 자기 홍보가 넘쳐나는 사회다.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넘쳐난다. 개인 사업, 프리랜서, 예술인, 전문적인 취미 활동까지, 내 이름을 걸고 주체적인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 안에는 내 존재가 더 드러나길 원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내 이름이 세상의 성공 프레임 안에서 인정받고 명예를 얻고 싶어 진다. 비전 지향적인 사람들은 누구보다 꿈을 꾸고 성실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달콤한 유혹이 종종 찾아온다. 꿈꾸는 크리스천들은 이 세상과의 유혹에서 싸워 마음의 중심을 지켜야 한다. 이유와 핑계가 뭐든, 세상적인 성공만을 향한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면 죄의 삯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이 광야에서 승리하신 3가지 시험을 기억해야 한다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4장 6절-8절]






꿈을 꾸는 크리스천들은 일이 우상이 되지 않도록 심히 경계하고 분별해야 한다. 일을 사랑하다 나를 더 사랑하게 되기 쉽다.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다 보면, 일은 비전이란 보기 좋은 이름을 덧 씌운 거대한 우상이 된다. 그 일이 잘 돼야 우상의 자리에 앉은 내가 세상의 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유혹에 빠진 이들은 예수님이 명하신 생명과 사랑보다 일 그 자체가 우선이 되고 만다. 


비전과 우상을 분별하는 것이 20대 초반에 무척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막 성인이 되었을 무렵은 하고 싶은 일이 많을 시기라, 스스로의 인생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기 쉽다. 동화의 주인공처럼 결국은 성공할 것이라고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치기도 하다. 크리스천 청년들은 이때 교회에서 듣는 '내려놓음'에 관한 설교들이 달갑지 않다. 어렸을 때 누구나 한다는 약속, '나중에 어른이 되면, 돈 많이 벌어서 부모님 효도(세계여행)시켜드릴게요.' 같은 말로 기도한다. 


"하나님, 제가 성공해서 헌금도 많이 하고 전도도 많이 할게요. 그러니 이 비전이 이뤄지게 해 주세요."


또 설교에 듣던 말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고, 나에 대한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잘 묵상한다. 꿈의 달콤함에 취한 비전 지향적인 크리스천들은 자신이 받은 비전이 매우 특별하다고 믿는다. 타인은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정말일까? 정말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라면 우리는 누구보다 더 낮아져야 함이 마땅하다. 생명과 사랑을 위해 고난의 길을 걸은 예수님 따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성공이 아닌 한 영혼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줄 수도 있어야 한다. 아마 대부분은 그 정도는 어렵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함부로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라는 용어를 남발하지 않아야겠다. 


나는 요셉처럼 어려서부터 꿈꾸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또 주체적으로 일을 찾아서 하는 성향이었고, 계획적으로 일을 잘하곤 했다. 장래에 대한 비전도 강했기 때문에 꿈과 일은 우상이 되기 쉬웠다. 돌아보면 비전이라고 착각하고 일 중심으로 살았던 시기가 있었다. 하나님이 내게 특별한 비전을 주셨다고 오만한 욕심을 좋아 보이는 믿음으로 포장하던 때였다. 갓 성인이 되었을 무렵 전문적이거나 특별한 직업이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결국 세상적인 성공욕이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하면, 그 부와 명예는 다 내 것'이라는 인식이 무의식 속에 강하게 싹트고 있던 것이었다. 마음에 자리 잡은 꿈의 우상이 세상의 왕관을 내 머리에 씌우고 싶어 끝없이 욕심을 주입하고 있었다. 


일과 꿈 안에 놓인 우상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비전이라는 명목으로 교묘하게 숨겨져 있거나, 자기 합리화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작은 죄의 불씨를 놓치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교만의 불이 나를 삼키게 된다. 내가 이 비전이 우상 됨을 분별해낸 것은 욕심을 인정하면서부터였다. 재물 욕구, 인정 욕구, 명예 욕구 등 세상이 주입시킨 성공을 향한 욕심이었다. 나는 이 우상들을 제거하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갔다. 마음 중심에 내가 왕 노릇 하지 않길 원했다. 하지만 '내가 주인 되지 않는 중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실제로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라면 일어나 바닥에 앉으면 된다. 눈에 보이는 행실이라면 고치면 된다. 그러나 마음의 중심을 예수님께 내어 드리는 일은 보이는 행동이 아니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주인이라고 시인해도, 그 생각만으로는 착각의 늪에 빠질 우려가 있다. 그때 주님이 지혜로운 한 문장을 떠올리게 해 주셨다.


"지금 붙잡고 있는 그 일과 꿈, 내가 명하면 당장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니?"


이 질문에 처음 떠오른 답은 '아니요'였다. 나는 내가 하는 일들이 너무 좋고 소중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아주 곤란할 것 같았다. 가능한 지금 하는 일이 잘 되는 방향으로 타협이나 설득을 하는 쪽을 택할 것 같았다. 이런 마음이 순간적으로 빠르게 지나치나 내 중심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그러자 나는 깊은 회개로 마음을 돌이킬 수 있었다. 그 후 주님이 주인 되시는 일과 꿈, 그 방향과 방법에 대해 깊은 묵상을 통해 조금씩 인도되어 갈 수 있었다. 비전으로 둔갑하는 교묘한 우상을 솎아내는 지혜의 문장을 숙지한다. 나는 지금도 때때로 나에게 질문해본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지금 하는 일 멈출 수 있어?"

"YES!" 


이제는 기쁨으로 언제든 '네'라고 답변할 수 있는 순종을 잃지 않는다. 나는 진심으로 주님이 말씀하시면 모든 것을 멈출 수 있다. 현재는 출판사의 대표고, 사역을 이끌고, 책도 쓰고, 강의도 하고 있다. 나의 업을 진심으로 좋아하며 즐겁게 할 수 있도록 하신 은혜 속에 있다. 하지만 주님이 만약 모든 것을 멈추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라고 하신다 해도 '네'라고 할 순종의 결단이 있다. 내 삶은 나의 것이 아님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나의 주인 되신 예수님이 나를 가장 잘 아시고,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리란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내가 잡고 있는 직업과 일이 가장 중요하지 않게 된다. 오직 주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만 남겨져 있다. 그리하여 세상에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고 싶다. 물론 사랑의 하나님은 비인격적으로 자녀에게 명령하지 않으시리라. 아브라함에게 그에게 가장 소중했던 아들을 산 제물로 바치기를 명했을 때, 하나님은 아들의 피값이 필요함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순종을 보고 싶어 하셨던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이 내려놓음을 말씀하신다면, 상황이 어떻든 나의 고백은 언제나 순종을 결단함이 옳다. 그럴 때 내 마음에 자라나는 비전이라는 일과 꿈의 우상의 싹을 제거할 수 있다. 


당신에게도 어느 순간 꿈이 앞서고 있다면 한번 조용히 질문해보라.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꿈, 바로 멈출 수 있어?"


"Yes or No?"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사무엘상 15장 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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