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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지 Oct 31. 2019

나는 영화관이 좋다


나는 도합 1년하고도 9개월 정도 멀티플렉스 산업에 종사한 경험이 있다. 그 전까지는 2년 연속 영화관 VIP등급을 유지하고 있었다.

영화관 임직원은 유료로 티켓을 구매하더라도 포인트 적립이 불가능해 자연히 등급도 유지할 수가 없다. 임직원 혜택으로 영화는 열심히 봤지만 실컷 공들여 유지했던 등급을 잃었을 때는 조금 허탈했다.

유니폼과 직원카드. 저의 신상을 위해 이름은 가렸습니다 (~˘˘)~

내가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길어야 5년 남짓이지만 그 기간동안 내 나름대로 영화의 소비자, 그리고 제공자라는 양측의 입장에서 영화 산업의 요모저모를 관찰하는 건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나는 좋아하는 영화가 있으면 꼭 영화관에 가서 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편이다. 특히 요즘에는 VOD나 인터넷 TV, 넷플릭스 등의 등장으로 집에서도 간편하게 영화를 볼 수가 있어 예전처럼 극장 상영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꼭 극장을 고집하는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1. 그날 그날의 티켓파워가 그 다음주의 상영관 개수가 된다.


내가 일하던 곳 중 한 지점은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관객들이 단지 영화만을 위해 그곳에 들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영화관이 바쁜 관객들의 발걸음을 불러세우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잘 팔릴 것 같은 영화를 걸어야한다.


그럼 잘 팔릴 것 같은 영화가 뭔지 도대체 어떻게 아느냐고? 모른다. 미래를 예측하는 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라..


대신 영화관에서는 지난 주에 잘 팔렸던 영화를 건다. 아예 처음 개봉하는 영화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상영 스케줄은 그렇게 짜여진다


상영 스케줄이 짜여진 날짜는 진한 글씨로 활성화된 반면, 스케줄이 아직 나오지 않은 날짜는 옅은 글씨로 비활성화되어있다.


영화관 상영 스케줄은 보통 새 영화가 개봉하는 수요일 또는 목요일을 중심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짜게 된다. 꽤나 짧은 텀이지 않은가? 그때그때 관객들의 실시간 반응을 고려하며 짜야하기 때문이다.


한 영화가 극장에 걸려 있는 기간은 최대 4~5주.
통상 하루 상영가능시간은 오전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약 20시간.
영화관 한 지점당 일반적인 상영관 수는 8개.
한 영화당 상영시간은 약 90분부터 180분까지.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이 한 주에 걸 수 있는 영화의 수에는 제약이 존재한다. 기업의 목표는 수익과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 직원은 기업의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일하는 노동자다. 당연히 스케줄 담당자는 잘 팔리는 영화를 가장 많이 집어넣게 된다. 영화의 상영 스케줄이 많다고 해서 그것이 곧장 흥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많이 걸려있으면 적게 걸려있을 때보다 필연적으로 많이 보게 된다. 누군가에게 보여야만하는 영화 미디어 산업에서 관객의 수는 곧 그 영화의 성공과 직결된다. 노출의 빈도가 즉 수익이 된다는 거다. 반드시는 아니지만 통상적으로 그렇다.


지점별로 담당자도 마케팅도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결국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하나의 큰 사업체에서 뻗어나온 여러 가지들이다. 한 지점에서의 작은 변화가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 관객층의 즉각적인 선호표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화 시장이니만큼 소비자는 티켓 구매율로 자신의 의사를 적극 표출할 수 있다. 나 이 영화 보고 싶으니까 상영관 좀 늘려달라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할인 쿠폰을 덕지덕지 바르는 한이 있더라도 영화관에 가서 티켓을 구매하고 영화를 본다. 그리하면 내가 이 영화의 다음주 상영관 수를 조금이나마 증가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2. 영화에 몰입하게 위해서는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최적화된 공간이 필요하다.


집에 빔 프로젝터, 스피커 같은 홈시어터 장비가 잘 갖춰져 있다면 조금은 영화관에 가는 것을 고민하게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 집에는 그런 기기가 없다. 홈시어터라도 최신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영화관 티켓값과 비슷한 값을 주고 구매를 해야한다.

매체 하나에 극강으로 몰입하는 경험은 단순히 보고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일을 내가 직접 겪은 것 같은 감각을 자아낸다. 3D나 4DX, 아이맥스 같은 특별관이 인기를 얻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 있다.


이처럼 관객의 깊은 몰입을 이끌어내기 위해 영화관은 어두운 상영관과 커다란 스크린, 생생한 스피커를 이용한다. 놀이공원 VR 어트랙션을 탈 때에도 3D 입체안경과 요란한 상황 나레이션을 함께 제공한다. 그만큼 미디어 매체 감상에 있어 시각과 청각의 요소는 매우 중요하다.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의 영화관. 앤트맨과 와스프를 보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영화관의 냄새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갓 튀긴 팝콘의 유혹적인 그 향기. (천 좌석에서 올라오는 퀴퀴한 곰팡내는 오늘은 다루지 않겠습니다.) 오죽하면 팝콘 냄새가 나는 향수도 나왔을까 싶다.


막상 먹다보면 한통을 다 먹기도 전에 물린다. 그럼에도 영화관 앞을 지날 때마다 우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을 흘리며 팝콘을 구매하게 된다. 기껏 영화관까지 왔는데! 하며. 나는 영화관이 지닌 그 모든 총체가 좋다. 비록 본질은 자본주의 하의 수익창출을 위한 기업의 노련한 마케팅 전략이라 해도.





ps. 원래 이 글은 최근 관람한 두 영화 시크릿슈퍼스타82년생 김지영을 소개하고자 시작한 글이었으나 서론이 너무 길어져 다음으로 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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