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하여 준비된 것은 아니었고 봉사단체의 교육 일정 중 하나로 반드시 참가해야 하는 피정이었다.
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길을 나서 겨우 시간 맞춰 헐레벌떡 도착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온전히 나의 생각, 나의 감각에 집중하도록 준비된 시간이었다. 디테일의 끝판왕인 담당 수녀님의 준비는 메모지 귀퉁이까지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 하루 동안 그냥 나를 얹어놓으면 되는 거였다.
수녀원 곳곳을 산책하고 준비된 차를 마시고 구색 맞춘 간식을 먹고 잘 차려진 점심을 먹고 주어진 성경 구절을 읽고 그저 혼자 머물면 되는 시간이었다. 참가자들은 모두 아름답게 꾸며진 수녀원 내를 산책하기 위해 우르르 밖으로 나갔고 나도 그 무리에 휩쓸려 몇 걸음 걷다가 으스스 추운 날씨에 슬며시 다시 건물 안으로 숨어들었다.
모두 떠나간 교육관 건물 안은 평화로운 정적이 가득했고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은 역시 나의 선택은 탁월했다 할 만큼 흡족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1층을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건물 입구로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곳, 그 앞을 무수히도 오갔을 위치에 경당이 있었다.
조용히 기도하는 작은 방.
갑자기 그 앞에 멈춰 섰다.
붉은 벽돌벽 위에 걸린 단순한 명조체 '경당'이라는 두 글자에 사로잡혔다.
'경당'의 위치를 알리는 데에 무엇이 더 필요하고 무엇이 저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
그동안 해왔던 일들도 그러했고 나의 관심사도 그러하고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와 서체에 유독 관심이 많은 편이다. 글이 사용되는 목적에 따라 아름다운 글꼴로 표현될 때 메시지는 더욱 분명하게 전달되고 시각적 이미지까지 잔상으로 남길 수 있는 것이 서체의 중요성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경당은 나를 내려놓고 생각을 비우고 예수님과 마주 앉아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곳이다.
투박한 벽돌 위에 낱글자로 걸린 '경당' 두 글자.
매우 단순한 명조체에 견고한 느낌을 주는 평 서체. 글자 전체의 비율에서 아주 살짝 가로 비율을 높이는 것을 '평' 세로 비율을 높이는 것을 '장'을 준다고 말하곤 한다. 0.몇의 아주 미세한 변형으로 글자가 주는 느낌은 크게 달라지는데, 보통 '평'은 굳건하고 우직한 느낌을, '장'은 날렵하고 감각적인 느낌을 주곤 한다.
그러니 저기 걸린 '경당' 두 글자는 장소의 성격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시각적 오브제가 되는 것이다.
내 노트북에는 꽤나 많은 서체들이 저장되어 있다.
ppt를 만들거나 카드를 만들 때 주로 사용하게 되는데 강한 느낌을 담고 싶을 때는 에스코어드림체나 배민체를, 말랑말랑한 느낌을 주고 싶을 때는 달콤한 머핀체를 주로 애용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서체는 단연 고딕과 명조체이다. 어떤 서체를 사용할 것인지 고민이 길수록 결론은 이 기본적인 두 서체로 결정되곤 한다. 기본적인 단순함이 갖는 확장성과 전달력의 힘은 그 어떤 화려한 것보다 매번 강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 벽 앞에 한참을 서서 글자를 바라보고 있는데 지나가시던 수녀님이 멈춰 서서 나 한번 벽 한번 계속 돌아보신다. 나는 내 감상의 순간을 중단당하기 싫어서 그냥 벽만 바라보았고 아마도 수녀님은 '뭘 보고 있는 거지?' 싶으셨을 게다.
단순함이 강한 이유는 그 강함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나를 뽐내는 사람들이 거의 모두 허당인 것처럼.
내가 허당인 것처럼.
비록 준비 없이 참가한 피정이었지만 이 시간 나에게 던져진 화두는 '단순함'이었다.
머릿속에 꽉 차있던 수많은 생각들, 고민들, 불안들은 언제나 한 가지의 지시문을 명령하고 있었다.
'더 열심히 해!'
왜 나는 열심히 해야 하지?
분명 힘든데 왜 참고 견디어야 하고 극복해야 하고 이루어야 하지?
나도 실수하고 못할 수도 있잖아.
능력이 안될 수도 있고 모자라서 못할 수도 있고 하기 싫어서 안 할 수도 있잖아.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자 했다. 일하는 것은 물론 노는 것도 취미를 즐기는 것도 여행을 하는 것도 나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고자 했다. 문제는 성과였다. 무엇을 시작하든 머릿속에서는 스텝별 전개방향과 기대성과가 자동으로 촤르륵 펼쳐지다 보니 언제나 시작은 파이팅 넘치지만 그 어디에도 여백이 없어 놀다가도 번아웃을 경험하는 참으로 기이한 자기학대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런 무지막지한 몇 배의 노력은 지금까지 내게 많은 기회를 만들어줬고 나는 거의 이루어왔으며 하고자 마음먹은 일은 거의 해내었다. 한때 '세상에 안 하는 일은 있어도 못할 일은 없다'는 무서운 소리를 겁 없이도 하고 다니던 패기 넘치는 시절도 있었다.
번역일로 드나들던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고 싶어서 '그냥 바쁠 때 아무 일이나 시키세요' 하고 들어가 온갖 일을 해내면서 한 달 만에 정식 명함을 받아 들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패기가 통하던 시절이었다. 비교적 성차별이 없다 생각되는 광고회사에서도 '결혼한 여자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남자 직원보다 야근도 철야도 더 많이 하면서 내 할 소리는 다해야 직성이 풀리던 만만치 않은 워킹맘이었다.
그러나 인생곡선이라는 말은 있어도 인생직선이라는 말은 없듯이 언제나 한 방향을 지속할 수는 없었다. 내가 넘어지지 않으면 가족이 넘어지고, 가족이 넘어지지 않으면 내가 넘어지는 법.
벌어진 일의 원인과 결과, 해결방법은 참 짓궂게도 그 사건 안의 인물들이 어느 형태로든 화해해야 매듭이 지어졌다. 그 과정이 그리 녹녹지 않으니 그렇게 그려진 내 인생의 곡선은 참 힘겹고 아프고 감정의 고농축 상태 그 자체였다.
한번... 두 번... 나는 할 수 있어. 기운을 차리고 다시 맨 밑바닥부터 일어섰다. 가리지 않고 일에 뛰어들면 또 열심히 해냈고 몇 배로 성과를 올렸다. 다시 내가 일하던 위치를 찾아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 어서 보여줘.' '이거 한번 해봐.' '잘 해왔잖아. 너는 할 수 있어.'...
그동안 응원으로 들렸던 말들이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나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이제 60을 꽉 채웠고 지난해 '지금의 쉼은 은퇴다' 선언했다.
앞으로는 절대 머리 쓰는 일을 하지 않겠다 마음먹고 몸 쓰는 일을 또 열심히 했더니 무릎이 고장 난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해야 하는 일의 밸런스는 A형 남자와 B형 여자가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