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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muraeyo Aug 30. 2022

그림 같은 순간과 그림 같은 사람들을 보며 설레는 마음

  2007년 여름이었다. 너무 오래 전의 기억이라 연도가 기억나지 않았는데, 다행히 티켓들을 모아둔 스크랩북에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했던 모네의 전시 팸플릿이 남아 있었다. 그때는 남자 친구였던 지금의 남편과 종종 미술관 데이트를 했었다. 둘 다 그림을 좋아해서, 한번 먹고 나면 금방 사라지는 맛있는 음식점을 찾기보다는, 오래 시간을 들여 보는 미술관에서의 시간을 좋아했었다. 벌써 15년도 지난 기억이라 그날 남편과 미술관 외에 어디를 갔는지, 무얼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미술관에서 본 모네의 작품들도 50여 점이 넘어서 기억에 다 남아 있지는 않지만, 모네 그림의 묘한 색감과 느낌은 도대체 어떻게 나온 것일까 궁금해서 그림 한 점 한 점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감상했었다. 전시 중간까지 커다란 캔버스를 가득 메운 빠른 붓 터치들을 하나하나 돋보기로 보듯 천천히 감상하던 나는 계속 자세를 구부리고 있어서인지 허리가 아파서 잠시 감상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뒤돌아 전시관을 둘러보는데, 반대편 벽에 걸려있는 모네의 수련 시리즈 중 하나가 내 시선을 붙들었다. 아, 나는 그때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기분이었다. 드라마에서 흔하게 나오는 슬로 모션의 인위적인 촬영 기법을 참 싫어했는데, 그 순간의 시간은 그렇게 천천히 시간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 이게 모네의 그림이었구나. 방금 전까지 터치 하나하나를 자세히 뜯어보았던 그림이었는데, 맞은편 벽에 서서야 나는 모네의 림을 제대로 감상하게 된 것이다. 나는 왜 의미 없이 터치 하나하나를 신경 쓰느라, 모네의 그림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던 것일까? 그날 그 풍경이 머릿속에 계속 남아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그림 같다’라는 말과 함께 자연스럽게 모네의 그림이 떠오른다.
 
   그로부터 10년쯤 지나서 또 하나의 그림이 나를 붙잡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림책 “오리건의 여행”의 장면이었다. 우연히 알게 된 그림책 서점에서 나를 위해 추천해 준 그림책 “오리건의 여행”. 그때도 7월의 여름이었다. 작은 그림책 서점, 기다란 탁자 앞에 앉아, 일반 그림책보다 훨씬 큰 판형의 그림책을 넘기며 누군가 나를 위해 추천해 준 그림책을 처음 경험했던 날이었다. 그림책 속 듀크와 오리건의 여행을 함께 따라가다, 그림 같은 들판을 헤치고 나가는 가을 들판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서 한창 초록이 진했던 그 여름의 서점 너머 창문 밖 풍경과 함께 두 계절의 시간에 나는 한참 동안 서있었다. 그리고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 눈 오는 길을 멀리 떠나는 듀크의 뒷모습과 눈이 쌓인 하얀 길가에 떨어진 어릿광대의 동그란 빨간 스펀지 장면으로 마지막 그림 책장을 덮으면서 짧은 그 시간 또 한 계절의 시간을 흘러 보냈다. 그 여름, 손님은 나뿐이었던 작은 그림책 서점 안에서 몇 계절의 시간을 지나왔던 것이다. 그 뒤로 ‘오리건의 여행’ 그림책을 보았던 그 여름의 기억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 같은’ 장면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림 같은’이라는 말은 내게는 너무 아름다워서 시간이 멈추는 것 같은 모든 것들에 붙이는 나만의 헌사가 되었다.


  그 뒤로도 여러 전시회에서 만난 그림들과, 새로이 만나는 그림책에서 ‘그림 같은’ 순간들을 계속되었다. 피카소와 마티스의 그림에서, 호주 뉴사우스 웨일즈 주립 미술관에서의 대형 캔버스에 그려진 거대한 그림 한 점과 그 그림 너머 미술관의 통창 뒤로 펼쳐진 푸른 여름, ‘할아버지의 섬’ 그림책 장면에서의 섬의 모습 등, ‘그림 같은’ 장면들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가 그 그림책들을 내게 가져온 ‘그림 같은’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그림책과 함께 내게 오는 사람, 혹은 ‘모네’의 그림처럼 그 순간 나를 멈추며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그림 같은’ 사람들. ‘그림 같은’ 그 사람들 곁에 오래 있고 싶어서, 나도 ‘그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림 같은’ 당신과 
 ‘그림 같은’ 내가 
 ‘그림 같은’ 세상에서
 오래오래 ‘그림 같은’ 삶을 그리고 싶다. 





                                                          당신에게도                               
                                         그림 같은 순간, 그림 같은 사람이 있나요?

                                    그런 순간을 자주 대하고, 그런 사람을 가까이 두는게 

                                                     바로 행복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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