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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m Dec 17. 2020

부지런과 게으름 사이

꾸준히 달리려면 필요한 것

이제 열 번째 달리기다. 원래 달리기는 지루해서 질색했지만, 앱에서 미션 하듯 뛰니 재미가 붙었다. 오늘은 공원을 빙빙 돌지 않고 작은 숲길도 가보고 가게들을 낀 인도에서도 뛰었다. 발길 닿는 대로 뛰다 보니 마치 내가 포레스트 검프가 된 기분이다. 달리기 동작은 내 의식 밖의 일이 된다. 런총각이 달리라 하면 달리고 걸으라면 걷는데, 별로 힘들지 않고 다리가 절로 움직인다. 런 포레스트 런~


부지런해 보이는 달리기에도 게으름이 함께 한다. 1~2주 차 때는 런총각이 뭘 자꾸 사라는 말을 했다. 좋은 운동복, 러닝화를 장만하면 운동할 마음도 생길 거라는 둥. 다 무시했다. 집에 비슷한 거 하나쯤은 있는데 쓸데없는 소리 하네 하고. 난 아무렇게나 입고 뛴다. 아랫도리는 예의상 트레이닝 바지를 입지만 위에는 잠옷에 패딩이다. 달리기 빼고는 나갈 일이 없어서 씻지도 않은 상태. 기름진 머리를 가리려고 패딩 모자를 덮어쓴다.


몸을 꽁꽁 싸매고 뛰니까 덥다. 추위를 많이 타서 바지 안에 히트텍을 입은 탓도 있다. 인터벌로 네 번째 달리기 할 무렵엔 패딩을 벗어던지고 싶다. 패딩 지퍼를 내리려다가 아차 싶다. 안에는 명찰이 달린 고등학교 체육복이다(그 안은 어디서 받은 반팔 티셔츠). 패딩을 벗는다면 영락없이 만화 속 백수 캐릭터다. 꽉 조인 모자라도 벗고 싶지만 멈칫한다. 지금 이마에 흐르는 땀줄기를 잡아 두는 건 돼지 머리밴드다. 앞머리 흘러내리는 게 성가셔서 집에서 맨날 쓰는 돼지 귀를 그냥 달고 나왔다. 


나름 체면이 있어서 집 갈 때까지 참는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난 내일도 같은 차림으로 더워하며 달릴 것이다. 좀 씻고 옷 제대로 입고 달리기에는 너무 귀.찮.으.니.까. 게으름이 더위와 답답함을 이긴다. 그 덕에 달리기하고 돌아오면 샤워와 빨래가 시급하다. 냄새나는 몸을 봉인 해제하는 것도 나름 쾌감이 있다. 꾸준히 부지런하려면 어느 정도 타협이 필요하다. 나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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