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완벽한 타인>을 혼자 밤에 틀어놓고 낄낄거리며 봤다. 왓챠에 평을 남기러 들어갔더니 서너해 전 친구들이 남긴 혹평이 눈에 띄었다. 소수자성을 희화화했다는 지적. 일리 있고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지금의 내가 불편함 없이 '시나리오 너무 잘썼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뭘 희화화할 것도 없이 사회에서 본 현실 그자체를 표현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하고 아저씨 아줌마들과 부대끼며 날것의 욕망을 마주하다보니 불편함의 역치가 확실히 높아졌다. 분명 일을 간절히 원할 때는 '예민함을 벼리겠다'고 다짐했지만 날이 무뎌지지 않고선 상처받느라 일을 못한다. 당황스럽게 훅 들어오는 말도 큰 소리로 성질부리는 말도 능청스럽게 피해가는 능력만 길러가는 듯하다. 화자의 의도가 뻔히 보이는데 굳이 감정적으로 대응할 겨를이 안난다.
예컨대 쏟아져 들어오는 자료를 데스크가 쳐내지 않고 다 처리하게 만드는 상황에 나조차도 어이가 없는데, 뭐 하냐는 선배 물음에 대답을 제대로 못하자 "하아아아아아" 들리는 한숨 소리가 그저 아무렇지도 않다. 그러고 "부장은 쓸데없는 것만 시킨다"며 이어지는 볼멘소리에도 주눅이 들기보다는 '그럼 뭐가 중요한지 제발 알려주세요'라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이내 '저도 모르면서 하는 소리지'하고 다시 하던 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이해와 단념이 반복되고 전반적인 태도로 자리잡으면 어떤 사람이 될까 싶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상처가 곪아터지고 굳어서 피고름딱지맨이 됐다고 말하는데, 그 딱지들도 희미해졌을 땐 대체 어떤 사람이 돼있을까 궁금해진다. 그 전에 새로운 기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다면 내가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