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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끈 Aug 07. 2022

담담하지만 끈끈한 우리  - <긴긴밤>

[더도덜도없이적당한리뷰] book 2 : 루리 - <긴긴밤>


 가끔 아동소설을 읽게 되면 마음이 참 몽글몽글해진다. 이쯤 살아보니 사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은 가치들을 쉽고도 따뜻하게 전달해준다. 2020년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있지만, 사실 서재에 읽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서 언니가 적극적으로 권유하지 않았다면 집지 않았을 책이다. 1시간을 투자했더니 하루 종일 따끈한 물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기분좋은 충만함이 들었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이질적인 집단에서 키워지다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떠나게 되는 설정은 10여년 전 봤던 <마당을 나온 암탉>의 초록을 떠올리게 한다. 난 원작동화는 읽지 못했고 애니메이션으로만 보게 되었는데, 초록이가 잎싹의 품을 떠나 높이 날아오를 때의 감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생명 존중, 다름에 대한 인정, 한계를 극복하려는 도전 정신, 연대 의식 등 여러 가치들을 담아내고 있지만, 가장 큰 중심 줄기는 모성애였다고 생각한다. 잎싹이 나그네의 알을 품게 되고 사랑과 헌신으로 초록이를 키워낸 후 아들의 독립을 응원하는 어머니로서의 삶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를 이야기는 내내 보여주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의 마지막까지도 그러한 맥락 안에 있는 것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눈이 보이는 코끼리와 살을 맞대고 걸으면 되고, 다리가 불편하면 다리가 튼튼한 코끼리에게 기대서 걸으면 돼. 같이 있으면 그런 건 큰 문제가 아니야. 코가 자라지 않는 것도 별문제는 아니지. 코가 긴 코끼리는 많으니까. 우리 옆에 있으면 돼. 그게 순리야." (p.12)


 이야기의 첫 부분, 코뿔소 노든은 코끼리 고아원에서 코끼리들과 함께 자란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코와 귀는 자라지 않고 뿔만 돋아날 뿐이었는데, 그곳의 코끼리들은 이를 전혀 신경쓰지 않고 노든을 따뜻하게 대해준다. 성장한 노든이 바깥세상으로 떠나는 것을 망설일 때 그곳의 코끼리들은 그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일을 따뜻하게 격려한다. 이미 너는 훌륭한 코끼리이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은 거라고. 세월이 한참 지난 후 노든은 이 말을 자신의 삶을 지탱해 준 어린 펭귄에게 그대로 들려준다.


 "너는 펭귄이잖아. 펭귄은 바다를 찾아가야 돼."

 "그럼 나 그냥 코뿔소로 살게요. 노든이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니까 내가 같이 흰바위코뿔소가 되어 주면 되잖아요."

 "그거 참 고마운 말인데."

 "내 부리를 봐요. 꼭 코뿔같이 생겼잖아요. 그리고 나는 코뿔소가 키웠으니까. 펭귄이 되는 것보다는 코뿔소가 되는 게 더 쉬워요."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p.115)


 <긴긴밤>은 부성애보다는 '연대'에 조금 더 방점이 찍혀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 속 '우리'는 비장하거나 요란스럽지 않다. 단지 그들은 힘겨운 길을 함께 걸으면서, 기나긴 밤을 함께 지새우면서 버텨낼 뿐이다. 난 그 담담함이 좋았다. 노든의 가장 눈부신 날들은 분명 가족과 함께 보냈던 순간들이겠지만, 노든의 삶을 지탱하게 해 준 건 그 찰나의 기억이 아니라 지금 노든 곁에 있는 앙가부, 치쿠, 그리고 어린 펭귄이었다.


 난 이 책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 로드무비같다고 생각했다. 그 여정이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든 나쁜 기억으로 남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목적지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하느냐이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를 존중하는 동행을 원한다.   

 

출처 : 문학동네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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