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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Jun 16. 2024

수면 위 제육볶음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아흔세 번째

대부분의 직장인에게, 특히 직장인에게 호불호가 없는 점심 메뉴가 있다. 돼지고기를 매콤하지만 살짝 달콤한 양념에 볶은 다음 깨를 뿌려주면 완성되는 제육볶음이다. 주로 시원한 콩나물 국과 같이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예전 회사 사람들도 이 메뉴를 즐겨 찾곤 했다. 물론 입주위가 망가지고 치아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는 확인해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젊었을 때는 선호할 수가 없었다. 꼰대들이나 좋아하는 음식 정도랄까 하고 생각했었다. 어느덧 나는 꼰대의 나이도 훨씬 지나 치아사이에 낀 고춧가루 정도는 봐줄 사람도 없으니 신경도 쓰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어차피 하루종일 입을 다물고 있으니 더 그렇다.  


저녁에 먹는 고기 요리에는 비할 바 못되지만 점심에 반찬으로는 만족스러운 제육볶음. 그런데 이제 회사 주변에 제육볶음을 하는 식당들이 많지 않다. 주로 오래돼 보이는 한식당에서 제육볶음을 하는데 이런 식당들이 하나둘씩 없어지고 프랜차이즈나 카페가 들어서고 있다. 많은 공간들이 신식공간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제육볶음집들은 사라져 간다. 간혹 고깃집에서 점심에 제육볶음을 하는 집이 있긴 한데 제맛이 안 난다. 제육은 후라이팬에 잘 볶아서 고추기름처럼 보이는 기름이 묻어나야 하는데 고깃집 제육볶음은 볶는다기 보다는 철판에 굽는 요리에 가깝다. 제육구이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구나 한식당처럼 푸짐하게 나오지도 않으며 불판하나에 몇 인분이지 모를 양이 나오는데 구우면서 여러 사람이 같이 먹다 보면 내 양도 모르겠고 다른 사람 것도 신경 써서 남겨야 하고 영 불편하다. 나처럼 타인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사람에게는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남 눈치를 봐야 하는 요리인 것이다. 그런고로 내가 점심에 제육을 선택해서 먹는 일은 거의 없었다.


며칠 전에 업무 때문에 있어 강남에 갔는데 밥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신식아파트 근처에 어울리지 않는 오래된 상가의 지하층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간단한 음식을 먹고 싶은데 대부분이 알 수 없는 프랜차이즈와 개성 넘치는 가게들이다 보니 선 뜻 들어가지 못하고 지하까지 밀려 들어가게 되었다. 아무 데나 가자고 투덜대는 동행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지하상가의 식당이 맛있던 적은 없지만 동료와 나는 너무 지쳐 아무 상가나 들어간 거고 그나마 거기서 사람이 좀 있어 보이는 가게를 찾아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아직 안된 이른 시간이었는데 테이블이 꽉 차서 잠시 서서 기다려야 했다. 아주머니 두 분이 운영하는 백반집이었는데 메뉴를 보니 제윢볶음이 있었다. 여기다 싶어 나는 제육볶음을 주문했다. 몇 가지 밑반찬들과 된장국과 같이 아주 잘 볶아진 제육볶음이 나왔는데 특이하게 일인분씩 접시에 덜어져 나왔다. 보통 제육볶음 이인 분 주세하면 조금 큰 접시에 2인분을 한꺼번에 담아 나오는데 여기는 각각의 접시에 제육이 나오다니 너무 놀라웠다. 일단 냄새도 백점만점인 데다가 불맛이 나지만 맵지는 않고 고기는 부드럽게 잘 볶아져 있어서 밥반찬으로 제격이었다. 역시 사람이 많은 식당은 이유가 있다.


동료와 너무 만족스럽게(사실 동료는 모르겠다. 옷에 기름이 튀어서 화를 냈다) 밥을 먹고 나오는데 지하층의 반은 문이 닫혀있고 가게문을 연 다른  식당들은 손님이 거의 없는 게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나온 식당만이 딴 세상인양 사람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사오십의 사람들이었다. 이 식당도 이 손님들이 안오기 시작하면 문을 닫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남의 아파트 지하상가치고는 추레한 이곳의 분위기가 더욱 그런 생각을 부추겼다.


노포라고 불리며 젊은 사람들이 줄 서서 먹는 오래된 식당들이 많다. 얼마 전까지도 둘 다 내가 자주 갔던 식당인데 갑자기 어떤 곳은 줄을 서고 어떤 곳은 파리를 날린다. 난 그 이유를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고 사람 많은 게 싫은 나는 그냥 파리를 날리는 식당을 찾아간다. 그러면서 사람이 없는 식당에 가면 왠지 모르게 안쓰럽고 측은해지면서 마음이 불편하다. 내 식당도 아니고 우리 모두 영생을 누릴 것도 아닌데 심각해지지 말자 마음먹어도 어쩔 수 없이 수면아래로 잠시 가라앉게 된다.


요즘은 단 한 가지에만 집중한다.


"수면 위로 올라가자"


 코만이라도 수면 위로 내놓을 수 있도록 노력하자. 아침에 이불을 개고, 산책을 하고 나만을 위해 커피를 내리고 음악을 튼다. 남이 좋다는 무엇인가를 따라가려 하지 않는다. 오래되고 낡고 이제 없어질 것이라 해도 상관없다. 슬퍼하거나 아쉬워해도 좋다. 수면아래로 가지만 않으면 된다. 오늘은 제육볶음 덕분에 수면 위로 바로 코를 내밀게 되었다. 몸에서 고춧가루 볶은 냄새가 났지만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수면 위로 날 올려주는 모든 것의 냄새를 난 사랑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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