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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Apr 11. 2021

가출일기

스물 여섯 살 먹고 엄마랑 싸워서요







나가래서 나왔다. 졸업 막학기, 내 용돈이나 버는 알바를 하고 있고 엄마한테 생활비나 용돈은 커녕 중고가의 선물조차 한 번 한적 없으며 삼시세끼 엄마 밥먹고 엄마 집에서 용돈이 다 떨어지면 엄마 카드도 쓰면서 살고 있었지만 자존심만은 당당했다. 스물 여섯 살이나 먹은 다 큰 딸래미를 때릴 것처럼 툭툭 치고 밀고 나가라고 하는 권력이 너무 비위상하고 짜증났다. 싸움의 시작은 언제나처럼 별 것 아니었지만 싸움이 심화되면 항상 나오는 엄마의 "나가!"를 꺾어뜨리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 들고 다니는 짐이 든 가방에 한두 물건을 더 집어넣고 청바지에 가죽 자켓을 입고, 

오렌지색 스카프를 매고

나는 집을 나왔다!


일교차가 큰 간절기다. 낮보다 기온이 뚝 떨어져 너무 추웠지만 화가 나서 몸에서 김이 날 지경이었다. 동네 벤치에 앉아 담배를 뻑뻑 피웠다. 엄마랑 싸우기 전, 침대에 누워 간식과 함께 영화 한 편을 보는 행복한 저녁시간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요량으로 바닐라라떼를 테이크아웃해 집에 들어갔었다. 아껴먹으며 모시고 집 들어오던 신나던 발걸음이 생각나 속이 상했다. 한입한입 얼마나 맛있던지... 나는 남은 커피를 대충 쪽쪽 빨아들이고는 버려버렸다. 


서울에 가려고 일단 지하철을 탔다. 본가는 경기도 군포, 나는 스무 살이 되고부터 쭉 집을 나와 자취생활을 했었다. 어떠한 이유로 다시 본가에 들어온 지 5달 째다. 집을 나오니 비로소 쪼들려살며 혼자 외롭기도 행복하기도 하면서 삶을 영위하던 생활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매일 타는 지하철이 새로운 기분이 든다... 6년 동안 본가에 들어오고 싶었던 적이 몇 있었다. 휴학하고 시험준비를 할 때, 그 준비가 길어지면서, 그냥 외로워서, 엄마가 보고 싶어서, 복학하고 감염병 사태로 인해 대학에서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게 되어 굳이 서울에 머무를 필요가 없어졌을 때도... 

그 모든 기회에 엄마의 반대로 본가에 들어오지 못했다. 엄마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내심 매우 서운했다. 내 합가를 반대하면서 가끔가끔 얼굴 볼 때 어쩌다 싸우면 나오는 그 "나가" 가 얼마나 서러웠는지 모른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분명해. 어린아이 같은 치기가 올라오며 속이 울컥울컥했다. 


남자친구에게 연락해 일단 오늘밤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남자친구는 사랑스럽게도 고기를 구워 도시락을 싸왔다. 담요도 가져와 주어서 나는 진정 가출청년답게 담요를 두르고 한강변에 신문지를 펴놓고 앉아 캔맥주를 마시며 <부질없는 세상사> 와 <부모의 숭고한 사랑은 좆까세요> 에 대해 열변을 토해냈다. 그는 내 속을 다 받아주는 듯 하면서도 내 논리에 동의할 수 없다며 따박따박 진공 반박했다. 가출까지 했는데도 그러려니 해주지 않는 똥고집. 

똥고집이 근처 호텔을 예약해서 술이 잔뜩 취한 채 용산구청 근처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돈 아껴야 되는 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착해보니 웬 관광호텔인데다가, 7-80년대 부잣집 느낌이 나는 인테리어에, 정감 잔뜩 가는 낡은 곳이었다. 어둡고 칙칙한 모텔 가기가 싫었는데 갑자기 놀러 온 느낌이 들어 신이 났다. 게다가 다음 날 오후 6시 체크아웃이랜다. 웬 트윈 베드 룸을 예약했길래, 두 침대를 밀어붙여 합쳐 큰 침대로 만들고 침대에서 뒹굴뒹굴 낄낄 놀다가 잠이 들었다...


중간중간 핸드폰을 확인했다. 엄마한테 연락이 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아빠는 내 편이니까 내가 집 나간 걸 알면 엄마한테 뭐라고 잔소리 해 주지 않을까? 동생도 연락 한 통 없다. 배신자. 재밌는 하루인데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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