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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Aug 20. 2021

대졸, 그 흔한 자격이 나에게도

이토록 초라한 자유





드디어 대학 졸업을 했다. 동기들보다 늦게 졸업한 탓, 코로나 탓에 남들 다 남기는 학사모 쓰고 학교 건물 앞에서 멋들어지게 찍어남기는 졸업 사진은 없었다. #드디어 #졸업 #고마워 #서경 #사랑해 #시원섭섭


제주 여행 중에 학위수여일이었다. 대충 이날로 대졸 자격이 주어진다는 말이다. 메일도, 문자도 없었다. 학생 포탈에 들어가 봤더니 메뉴가 텅 비어 있었다. 그동안 빽빽하던 각종 강의시간표, 휴학 및 복학신청, 장학금 신청란 등등의 메뉴가 싹 사라지고 오로지 성적확인란과, 증명서 발급란 뿐....


나 졸업한 거 맞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졸업일정 안내 게시물에 졸업자 명단 엑셀파일이 첨부되어 있었다. 

수많은 졸업자 명단 중 나를 확인할 수 있는 한 줄을 확인했다. 201510091 이*운.

나는 졸업된(?) 거였다. 


숙소 정원 평상에 앉아 내 이름 세글자를 확인하며 담배를 피우는 데, 졸졸이(하도 졸졸 따라다녀서 붙여준 이름)가 달려와 벗어둔 쪼리 한 짝을 물고 달아났다. 안돼!!! 외치니 흘깃 눈치를 보지만, 그 발걸음 속도가 조금 줄었을 뿐, 낑낑이(하도 낑낑거려서 붙여준 이름.)에게 달려가 함께 내 쪼리를 물어뜯고 논다. 순식간에 내 쪼리는 두 동강 났다. 어린 진돗개들의 아구 힘을 무시하면 안 된다. 졸업 세레모니를 받은 것 같다. 졸업 하면 떠오를 추억을 선사해 주다니.. 고마워. 잠시 쪼리 추모식이 있겠습니다. 저 쪼리는 작년 여름, 친구 믿음과 함께한 부산여행 중, 우연히 발견한 팝업스토어에서 만나...


그 흔한 대졸 신분은 당연하지만 특별하게 주어지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을 때만큼 허무하게, 그러나 그보다도 조용하게, 아무도 몰래 처리되었다. 마침 이틀 전 모 회사 인턴에 탈락했다는 안내 연락을 받은 터였다. 내 졸업을 이토록 초라하게 느껴지게 만든 내 자신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진다.


이제 앞으로는 내 길이다. 이토록 초라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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